중국군 유해송환, 한중관계의 새 이정표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지난 주 중국군 유해 437구가 마침내 그리던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갔다. 작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한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두 나라 최고 지도자간에 이뤄진 이 결실은 한중관계에서 한 시대를 매듭짓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아무도 찾는 이 없이 반세기 이상 외로이 ‘북한군 중국군 묘지’에 누워 있던 유해가 이번에 완전히 귀환된 것은 인도주의의 실천이자 인정미의 발현이다. 한국전쟁이 끝나도 중국군 유해는 중국에 모셔지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적군이라도 묘지를 조성해 존중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정에 따라 전쟁 후 전국에 산재한 중국군 유해를 찾아 1996년 7월부터 파주시 적성면에 일명 ‘적군 묘지’를 조성하고 안장했다. 고향땅이라도 바라보라고 묘지를 북쪽을 향하도록 조성하는 인정어린 배려도 베풀었다.
3년 전 이곳을 찾은 필자가 봐도 정성이 깃든 것임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문화적으로 인정미를 중요시하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마음으로 잇는 끈이다.
여군 통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천뤄비(陳若必·82·여)은 작년 이곳을 찾아 “(중국군이) 이렇게 안장돼 있다니 한국국민에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또 “6·25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전쟁이었다”며 “한국이 빨리 통일돼 평화를 이루길 바란다”고 했다. 유해 송환으로 이번엔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에 고맙다는 의견과 함께 한국인의 의식수준이 높다는 찬양까지 나왔으니 더 많은 인심을 얻은 셈이다.
유해가 고국산하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한중수교를 맺은 후에도 20여년이나 더 걸렸다. 두 나라는 한 때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적이었지만 1992년에 수교를 맺었다. 현재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까지 발전해 있다. 하지만 중국군 유해가 귀환하지 못하고 전장터에 묻혀있는 이상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화해를 이뤘다고 할 순 없었다. 그만큼 동북아의 냉전해체가 더뎠다는 의미다. 세계가 탈냉전시대에 들어갔었지만 한반도는 예외였다.
유해송환은 적대적 역사가 완전히 종식되고 마음 한 구석에 남은 앙금을 말끔히 털어버렸음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새로운 한중관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중국정부가 향후 중국군의 한국전쟁 개입에 대해 분명한 사과를 표명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한중 수교시 이 부분은 쟁점이 됐지만 양측이 더 이상 문제시 하지 않고 애매하게 처리한 바 있다. 중국정부 기관이 발행하는 일부 공간서 가운데는 지금도 여전히 김일성이 전쟁을 도발한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라고 쓴 서적이 없지 않다.
6․25가 북한의 남침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돼있는 러시아 사료들이 공개됨에 따라 이미 많은 중국학자들이 북한의 침략임을 말하기 시작했다. 중국정부도 전향적이 됐으면 좋겠다. 역사는 사실대로 기록돼야 한다. 역사사실은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바꿔선 안 된다는 자신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이번 협력을 계기로 앞으로 두 나라 사이에 경제, 문화, 외교를 넘어 걸음마단계의 안보, 군사 면에서도 상호교류가 심화되길 희망한다. 경제, 문화교류가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고, 외교와 안보분야에서도 두 최고지도자의 각별한 우의와 배려로 이전 보다 상당히 진전돼 있다. 하지만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에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믿게 만들기엔 부족한 실정이다. 유해송환이 북한개방 유도 역할에 박차를 가하는 쪽으로 중국의 대북정책 틀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 과욕일까?
위 글은 2014년 4월 4일자『경북매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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