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환동해의 가치에 새롭게 눈떠야 한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잘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반도국가입니다. 한반도의 동쪽 바다인 동해는 남으로 대한해협과 동중국해를 지나 태평양으로 나아 갈 수 있고, 북으로는 캄차카 반도 및 쿠릴열도, 북태평양으로 통하는 중요한 해역입니다. 동해를 둘러싸고 직접 바다에 연접하고 있는 국가로는 러시아, 북한, 한국, 일본이 있으며, 그 외선에는 중국과 대만, 미국이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미국도 광의로 보면 환동해권 국가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환동해 지역은 오랫동안 동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공동의 기억이 존재합니다. 동해는 이 7개국과 모두 직간접으로 맞닿아 있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점에서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첫째, 지정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마주치는 접점 공간입니다. 20세기 초 러일전쟁 시 러시아와 일본 간에 벌어진 ‘동해해전’ 그리고 일제의 한반도 및 대륙침략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북방세력이 남하하고, 남방세력이 신속히 북진하려면 해양으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로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역내 대륙국가와 해양국가들 간의 각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지요.
둘째, 군사적으로도 유사시 대북 반격 및 일본 견제가 수행될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동해는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즉 한반도 유사시에 해상으로 북한의 후방을 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이는 현재 북한의 지상군과 장사정포 대다수가 휴전선에 배치돼 있는 상황에서 육상으로 밀고 올라가는 것 보다 해상작전이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일본이 독도에 대한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해군 출동의 최단거리라는 점에서 동해는 해공군의 주요 작전공간이 될 것입니다.
셋째, 경제적 보고입니다. 동해 해역에는 어족 자원이 풍부함은 물론이고, 각종 해양생물이 다채롭게 분포돼 있으며, 하이드레이트(Hydrates), 천연가스와 유전 등 각종 해저 광물자원도 대량으로 매장돼 있습니다. 또한 동해는 조력, 풍력 등의 에너지원으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어업, 무역통상, 자원수송, 인적 왕래에도 중요한 해상 무역로이자 수송로입니다.
넷째, 러시아, 북한, 일본, 한국의 환동해 연안 도시들 간에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연계되면 각각의 결함을 보완하고, 장점을 취할 수 있어 전체 경제 규모를 키울 수 있을뿐만 아니라 문화적 시너지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발전 및 성장 가능성을 지닌 지역입니다. 예컨대 러시아(나훗까, 크라스키노, 핫싼, 블라디보스토크, 자루노비치, 슬라뱐카), 북한(선봉, 나진, 청진, 김책, 흥남, 원산), 남한(간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울진, 영덕, 포항, 울릉도, 울산), 일본(삿포로, 하코다테, 니이가타, 쯔루가, 마이즈루, 돗토리, 마쯔에, 오키, 이즈모, 시모노세키, 쯔시마, 후쿠오카, 나가사키, 가고시마)에 즐비해 있는 항구들을 통한 경제와 문화의 수출입을 활성화시키면 거대한 ‘환동해공동체’가 탄생될 것입니다.
다섯째, 환동해 지역은 신화, 설화, 구전 등이 다양한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어 시와, 문학, 역사, 언어, 민속, 음악, 미술 등 인문학적 상상력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이 바다에는 삶의 애환과 환희가 있는가 하면, 전쟁과 평화가 빚어내는 이별과 해우, 로망과 비애, 동경과 설레임 등 인간의 희노애락이 얽힌 삶의 현장과 과거의 기억이 공존하고 있는 무궁무진한 인문학적 콘텐츠의 보고다. 동해바다의 역동성, 이 바다가 주는 서사성과 서정성이 상호 결합하면 너끈히 환동해문화권(the Pan East Sea culture)을 형성하고도 남는 곳이다.
국내 지역적 관점으로 눈을 돌려도 동해는 그 중요성이 남해와 황해 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는 지역입니다. 이 가운데 포항은 한국 해양 생명선의 주요 연결 고리이기도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환동해 지역의 중심도시이자 한반도 유사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기점이 될 군사거점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포항은 인구가 50만 명이 넘으며, 서울시보다 배나 더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항공, 철도, 수륙 교통의 요지로서 한국 철강산업의 메카인 점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환동해 지역은 여러 가지 국내외 요인들이 연동돼 얽혀 있음으로 인해 역내 지역간 상생 기미가 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국제적으로 동해가 동북아 각국의 세력 확대를 위한 각축장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점입니다. 그 배경은 지금까지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차지했던 일본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중국이 G2로 등장함으로써 아시아, 특히 동북아지역이 주요 충돌 잠재 지역이 된 것입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빌미나 혹은 명분이 되고 있는데, 여기에 촉발된 일본의 군비증강도 상황을 더욱 가열화 시키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지정적으로 대륙과 해양 두 세력의 충돌지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역내 각국이 해양으로 세력과 영향력을 뻗쳐 나가기 위해 동해를 주요 간선통로 내지 거점으로 삼아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경제적, 군사적 역량을 증강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먼저 미국은 유럽세력이 퇴조함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에 들어와 세계전략에서 유럽을 최우선시 해왔던 전통을 수정하듯 아시아, 태평양으로 세력을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으며, 근년 동해로 미 항공모함을 통항시키고 있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2011년 11월 7일 오바마(Obama)가 미 대통령으로 재선되고, 11월 8일 중국에서 시진핑(習近平, Xi Jinping)이 중국공산당 주석직을 승계함에 따라 중미 양국은 외양으론 ‘OX(Obama-Xi Jinping)시대’, ‘C2(협력하는 미국과 중국)시대’를 맞은 듯이 보이지만 두 강대국 사이에는 남중국해의 주권귀속문제, 동중국해 도서 분쟁, 무역역조, 위안화 환율, 인권, 티베트, 대만 문제 등 충돌할 수 있는 잠재적 불안요인이 늘 상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 전략축의 아시아 태평양 이동(pivot to Asia)에 맞서 중국 수뇌부는 내심 태평양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해군력 증강계획을 세우고, 항공모함을 건조한 이유도 이를 위한 원해작전을 위한 것인데, 다분히 미국에 대한 대응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지정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최단거리로 태평양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는 동중국해뿐이며, 그 연장선에 동해가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동중국해는 미국 항공모함 전단과 일본의 센카쿠 열도(일본 해상자위대 포함) 등에 봉쇄돼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이 작금 동해로 나오려고 한 까닭은 이 같은 지정적 관계를 고려해 미국이 주축이 된 미국-일본-한국의 봉쇄에서 벗어나려는 돌파구 마련이라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동중국해 이외에 중국이 직접 동해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두만강 하구가 유일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소련과 북한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청조가 1860년 11월 러시아에게 전략적 요지인 이 지역을 할양해주면서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상실했으며, 그 후 내륙의 성(吉林省)이 되고 말았던 것이죠. 중국이 북한 동해안 나진, 선봉항의 조차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태평양 연안으로 남하해온 오랜 역사와 기억을 지닌 러시아도 향후 동해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러시아는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된 뒤로 미국에 대응할 힘을 상실한 상황에서 대외 팽창을 추구하기 보다는 국내에 주안점을 두고 내실을 기하는 숨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고르바초프가 태평양 국가라고 선언(블르디보스토크)한 이래 늘 동해에 대한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머잖아 러시아도 동해로 내려올 때가 도래할 것입니다.
동해 건너 우리와 대면하고 있는 일본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일본은 러일전쟁 전후시기부터 동해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동해를 자국의 내해로 삼고자 한 바 있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인데, 독도가 유사시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점령대상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일본이 ‘동해’ 명칭을 인정하지 않고 세계에 ‘일본해’(Sea of Japan)라고 홍보하고 있는 저의를 읽을 수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가능합니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중국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 몽골도 동해안으로 나오려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한 말씀 사족을 달면, 한반도 면적의 7배나 되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몽골과 우리는 혈연적 친연성도 밀접하지만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현실적인 국가전략 면에서도 상호 협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무엇보다 ‘햇볕정책’으로 물꼬가 터진 남북관계가 다시금 경색됨에 따라 관광, 무역 등의 인적 왕래와 물적 교류가 끊어진지 오래돼 국가 차원의 경제교류는 언감생심입니다. 그 하부 차원에서 동해도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왕성했던 경제적, 물적, 인적 교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의를 요할 것은 북한의 자원들이 상당 부분 중국으로 유출되고 있는 점이라는 사실입니다. 북한과의 교류가 단절된 수년 사이에 중국이 발 빠르게 남북 사이에 이완된 틈을 비집고 북한정권과의 교류를 확대해 식량, 유류 등 북한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지원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북한 내 도로와 항만 등의 사회 간접자본(SOC)의 인프라 설비권과 자원개발권을 챙겨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 현실을 주목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함에도 수년 째 그대로 방치한 상태입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지난 대통령선거 후보 가운데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후보가 나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또한 북한과의 교류단절은 관광과 무역이 이뤄지지 않아 강원도 북단 지역의 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지역의 도시도 대동소이하겠지만, 동해안 지역도시들은 수도권에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과도하게 편중돼 있음에 따라 지방의 경제,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가 답보 상태에 있거나 오히려 갈수록 상황이 악화 혹은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전국의 여타 지역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유사한 문제점들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농어촌 소득 격감 및 상위 20% 농가와 하위 20% 농가의 소득격차 양극화(2011년 12.3배), 도시위주의 개발에 따른 농어촌 마을의 공동체 붕괴, 비정규직의 양산, 소득양극화, 계층양극화, 영세상인의 상권 피침탈, 대기업 위주의 정책에 따른 중소기업의 경영난, 노약자, 장애인,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질 악화, 방치된 환경오염, 극심한 경쟁위주의 교육풍토 등을 꼽을 수 있겠지요. 결국 비정하리만치 살인적인 경쟁으로 인한 자살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대안 모색 없이 내버려진 황량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는 게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동해가 국제적으로 연안 각국들의 보이지 않는 각축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 그리고 한편에선 단절된 남북교류 성장동력의 상실이 서로 인과적으로 얽혀 있는 모순된 상황을 더 이상 지속시켜선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지방의 발전 역시 과거처럼 중앙정부에만 기대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즉 단순히 중앙정부에 지원과 도움을 기다려야 할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입니다. 각 지방은 그 주인인 지역민이 먼저 스스로 문제를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답보상태의 영역이 있다면 활로를 개척하고, 결핍 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새로이 창출해냄으로써 지역민 모두가 평균적으로 살 살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역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2014년 3월 31일자『미디어포항방송』에 게재된 글입니다.
'앎의 공유 > 주요 언론 게재 글 내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군 유해송환, 한중관계의 새 이정표 (0) | 2014.04.04 |
---|---|
통일의 일반론, 통일은 줄탁동기(啐啄同期)여야 한다 (0) | 2014.04.04 |
국가가 매춘업자가 된 일본의 또 다른 과거사 (0) | 2014.03.24 |
독도문제, 韓日 전문가 끝장토론이 해법 (0) | 2014.02.20 |
장관의 말과 웃음 (0) | 2014.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