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의 말과 웃음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인간만이 지닌 말과 웃음은 동물과 구분 짓는 주요 종차다. 말은 호모 로퀜스(Homo loquens)적 존재인 인간에게 의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다. 웃음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웃음의 기능과 긍정적 효용에 대해선 재언이 필요 없다.
하지만 말도 웃음도 다수가 공감해야 하고 시의에 맞아야 한다. 조선후기 강박(姜樸) 선생은 심사숙고해서 적절한 말을 생각해냈다고 하더라도 때가 아닌 상황에서 말해버리면 망언이 된다고 했다.(思而雖得, 言之有時, 匪時則妄). 적시성 없는 말들의 횡행은 사회를 혼돈에 휩싸이게 한다. 하물며 생각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불쑥 내뱉는 말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말은 하기에 따라 순기능적 소통수단이 되거나 긍정의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듣는 이에게 독화살로 꽂힐 수 있어 씻지 못할 상처가 되고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도 한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지만, 원수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웃음도 웃어야 할 때 웃어야 한다. 웃는 자신은 엔돌핀이 돌고 정신건강에 좋을진 모르지만 재난을 당한 가족에게 연방 뜻 모를 웃음을 헤실헤실 웃으면 그것은 상처에 뿌리는 소금이 된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결국 해임됐다. 상식이하의 말과 웃음으로 여러 차례 국민여론의 지탄을 받아오던 터였다. “국민의 질타가 많다”는 지적에 “말한 게 별로 없는데...”라고 하더니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것에 대해선 자신의 “인기 덕분”이라고 했다. 거의 개그맨 수준이다.
긴장해야 할 국회 답변에서도 연신 웃음을 보였던 그의 처신은 시도 때도 없이 웃는 실성한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 人災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주무장관이 보일 자세는 아니었다.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발언을 경고한 대통령의 주의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이고 2차 피해자는 지역어민들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다. GS칼텍스가 일차적 피해자고 가해자는 없다면 책임은 누가 지란 말인가? 사고를 당한 자도 피해자고 사고를 낸 자도 피해자라는 그의 궤변대로라면 세상에는 가해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을 분노하게 하는 무신경한 말을 생각 없이 내뱉는 이런 언사는 물리적 폭력이상의 언어폭력이다. 대통령의 경고가 있은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에 또 다시 일을 냈다는 건 장관에게 요구되는 정무적 판단은 물론, 상식까지 의심케 만든다. 이는 개인의 舌禍문제로 끝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일파만파의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행정부처의 장이 문제해결은커녕 오히려 문제를 만들면 통수권자에게 정치적 부담만 가중시킨다.
논란이 많았던 장관 인사청문회 때부터 그의 어법에서 장관직 수행자질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늦게라도 더 이상의 정부 신뢰 저하를 막고, 국민의 또 다른 울화를 미연에 막게 된 점에서 다행이다. 하지만 일국의 장관 언행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점은 과제로 남는다.
아파트 부녀회장도 말에 믿음이 없으면 주민들이 따르지 않는다. 하물며 고위 공직자인 장관 정도라면 전문성은 물론, 말에 신뢰감과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발언이 이해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또 정치적으로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직각적으로 판단되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국민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고객을 대할 때와 같이 진지하고 친절해야 한다. 그의 태도가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말과 웃음에 품위가 없고 눈, 귀, 마음에 신경계가 작동되지 않는 이는 고위 공직자로 기용돼선 안 된다. 후속 인사에선 상식적 판단과 진중한 언어를 구사하는 균형 잡힌 장관을 보고 싶다.
위 글은 2014년 2월 13일자『경북매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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