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참전과 파견

雲靜, 仰天 2024. 10. 31. 17:37

참전과 파견


참전은 “전쟁에 참가함”을 말하고 파견은 “일정한 임무를 주어 사람을 보냄”을 뜻한다. 우리말 사전에 그렇게 뜻풀이 돼 있다. 틀린 설명이 아니다. 그런데 참전여부를 판단함에 전쟁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어떤 사람이 참여하는가에 따라 참전인가 아닌가 하는 성격이 결정된다. 전쟁 아닌 곳에 참여하는 것을 '참전'이라고 할 수 없고, 그 싸움터에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참전하는 경우도 그 민간인이 속한 국가가 참전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단의 관건은 전쟁의 정의와 피파견자의 신분이다.

나는 수년 전 전쟁 관련 연구저서에서 전쟁의 정의에 관해 정규군 연대 병력 이상의 부대가 참가하여 상대 군대와 전투를 벌인 기간이 최소 2주일이 되고 1명 이상의 전사자가 나오면 그것을 전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서상문 저,『중국의 국경전쟁 1949~1979』,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13년) 당시 과거사의 전쟁들을 연구하면서 국내외 많은 전쟁 전문가들의 견해와 주장들을 참고하여 그렇게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환언하면, 여타 전쟁사가나 전쟁 연구자들도 대부분 견해가 대동소이하다는 소리다.

러우전쟁은 틀림 없는 전쟁이다. 그것도 음험한 푸틴이 국내외 문제를 타개하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복합적 국가 전략과 전쟁 전략의 동기를 감춘 채 우크라이나를 수 십개 연대 병력 이상의 대규모 병력으로 공격해 많은 전사자를 내면서 벌써 2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침략전쟁”이다.

정규군 연대 병력 이상의 병력이 참전했을 경우에만 전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한 것은 상당히 자의적이다. 그로 인한 논란이 있을 수 있어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 조금 개념을 수정했지만 그것 역시 객관성과 보편성을 담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정규군의 병력이나 부대의 파견은 참전 여부를 판별하는 성립 요건임은 분명하다. 나는 정규군 연대병력의 파병으로 한정했지만 이 역시 학자마다 주장이 다르다. 의미 있는 군사행위를 행할 수 있는 최소 병력이라고 볼 수 있는 분대 병력을 보내도 참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명의 군인을 보내도 참전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한 명이 수행하는 군사행위는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참전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한 명의 현역 군인이라도 러우전쟁에 파견하면 참전하는 것이라고 굳이 그렇게 규정한다면 군 관련 민간인 단체를 보내면 이 논란은 해소될 것이다. 이웃 중국은 민간인들로 구성된 군사무력조직인 “해상민병대”를 조직해서 남중국해, 동중국해와 우리의 황해에 출몰시켜 준전투행위를 수행하게 하면서도 중국 정부의 책임은 없다고 억지를 부려오고 있다. 이는 “회색지대전략”(Grey Zone Strategy)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중국이 북한에 보낸 “항미원조지원군”을 국가가 보낸 군대가 아닌 민간인 조직이라고 강변한 것과 같은 성격이다. 우리도 유사한 성격의 회색지대전략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한마디 지적하고 싶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 과거에 이야기한 바 있지만 민주당은 국가안보를 너무 좁은 대롱을 통해 보고 있는 것 같다. 시야가 너무 좁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또 중국과 대만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의 안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얘기했다. 두 발언 모두 같은 맥락의 비슷한 뜻이다. 전쟁을 해선 안 되고 비굴하고 자존심 상하지만 굴욕을 참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의미다. 이처럼 같은 당의 전현직 지도자(?)가 이구동성으로 읊조리는 걸 보면 아마도 민주당의 당론인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 말에는 엄청난 맹점이 숨어있다. 현실 파악이 잘 안 돼서 하는 소리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속성, 국가권력의 존재 양태, 특히 전쟁의 속성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하는 나이브한 얘기라는 것이다.

전쟁은 우리가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거나 피할 수 있고 우리가 평화를 바란다고 해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안이함이다. 과연 현실은 그럴까? 또 과거 인류 역사가 그래 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침략을 당하고 싶어서 침략을 당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여기선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계제가 아니지만 중국-대만의 유사시 문제는 관련이 없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지금도 러우전쟁이 우리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미국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우리의 안보와 관련이 없는 게 아니다. 특히나 이번 북한군이 참전한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전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긴 하지만 북한군 참전의 대기로 푸틴이 김정은에게 재래식 무기를 현대화하도록 지원해주게 되면 러-우전쟁은 한국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군 병사가 우크라이나군에게 포로로 잡힌다면 그 포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우리 헌법은 북한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어 북한군도 우리 국민이다. 만약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하면 우크라이나는 북한에 대해서 보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될 경우 그것은 우리 한국의 안보에 직결된다. 그런데도 강넌너 불구경하듯이 딴지나 걸고 있는 걸 보면 또 한 번 국가안보를 보는 정치인들의 시각이 참으로 좁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럼에도 백 번 양보해서 참전이냐 아니냐를 두고 또 다시 벌어질 시시비비, 설왕설래의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면 국내에 적지 않게 활동하고 있는 민간인 군사 전문가들로 조직을 결성하고 인원 수에 따라 예비역 대대장이나 연대장을 책임자로 삼아서 파견하는 것도 시급을 요하는 비상시기에는 고려해볼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예비군 및 민간인 군사 매니아들이 적지 않은 대한민국 만큼 군 경험 있는 유휴 병력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없다. 군 지휘 경험이 있는 예비역 영관급 이상의 장교들로 구성된 조직에게 용역을 발주하면 정부가 바라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방금, 정치권 일각에서 군 병력을 단 “한 명이라도 보내면 파병”이라고 못 박아 놓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이다. 끝으로 주의할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민간인으로 구성된 군사조사단, UAV운영팀이나 전황분석팀을 보낼 수 있다는 나의 이 주장을 우리나라 정규군을 파병해야 한다는 걸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논리를 비약하지 말기 바란다. 파병을 하지 않는다 해도 북한군이 러우전장에 투입된 이상 거의 실시간으로 전투상황을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작지 않다.

막걸리나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키고 싶다. 10월 31일 오늘이 막걸리의 날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이런 소모적인 문제를 자주 보게 되니 답답해서 그런 모양이다.

2024. 10. 31. 17:33
삼각지역에서
雲靜

제3회 개인전 출품작(손갑호님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