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묵행

雲靜, 仰天 2024. 9. 3. 22:27

묵행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진실 문제는
정확히 알기 전엔 입을 닫는다.
道可道非常道라 하지 않는가?
선승들도, 비트겐슈타인도 그랬었지

말할 때는 완전한 자기 자신이 아니다.
자신도 자기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신의 있음과 없음조차 말할 수 없다.

우는 아이를 말없이 안아준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줄 뿐이다.
그 행위가 곧 길이 되고,
그 길이 곧 마음이 된다.

집단지성의 최대치는 묵행의 합일체다.

2024. 9. 3. 06:1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2022년 9월 제1회 서상문 서양화 작품 개인전 출품작(배창준 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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