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 만난 목소리로 다시 듣는 낙화유수
오늘 오전, 친구하고 노래 부른 것을 녹음해서 서로 주고받은 것을 몇몇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그 중에 한 분이 직접 노래를 불러 녹음해서 보내왔다. 이 분은 전직 대학 교수로서 독문학을 전공하신 분이다. 본인이 실명과 전직 소속을 밝히시길 고사해서 이 글에선 무명으로 쓴다. 아무튼 나와는 오래 전에 인연이 되어 벌써 20년 가까이 교류해오고 있는 분이다. 우리는 자주 서로 안부를 묻거나 때로 직접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오고 있다.
게다가 참으로 인정이 많고 국가관과 사회에 대한 정의감도 투철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시면서 많은 견문을 쌓아오신 분이다. 지금도 예전처럼 학구열이 대단해 현역 시절 못지 않게 지적이고 젠틀한 삶을 가꾸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다.
특히, 지금 나이가 들어가니 옛날 일찍 작고하셨던 선친에 대한 회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애틋해지시는 모양이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위안이 돼주면서 격려해 오고 있다.
그분이 오늘 겹영춘화를 사진까지 찍어서 같이 보내온 육성 노래 역시 옛날 우리 아버지가 잘 부르셨고 내가 좋아하는 낙화유수다. 이미 우리 부자가 좋아한 걸 아시고 그 노래를 직접 불러 주신 것이다. 실제로 이 분도 이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시고 실제로 노래도 내 친구처럼 잘 부르신다. 들어보면, 옛날 남인수가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이 노래는 그분의 노래다. 임자를 만난 것이다. 자, 이제 이만 각설하고 아래와 같이 보내온 글과 함께 그분의 노래를 감상해보자.
“이렇게 깊은 음악사의 한 부분을 알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경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정말 분더바(독일어로 '원더풀'이란 뜻--雲靜 註)입니다. 이 노래를 앙송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유시마의 흰매화를 들으니 회한이 나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 제사 모시면서 울어서 붉어진 눈시울과 얼굴을 보고 (아내가) '제사 때 누가 우느냐'고 핀잔을 주더군요. 그러나 우는 것은 내가 언제쯤 울겠다고 해서 울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늘은 개사되지 않은 낙화유수 3절에 나오는 영춘화 야들야들 곱게 피건만을 더 연상할 수 있는 우리집 발코니의 겹영춘화를 보내 드립니다.”
“겹영춘화를 보며 서박사님의 부친과 부친을 그리워할 서박사님을 항상 생각합니다. 보잘 것 없는 목소리이지만 노래 보내 드립니다.”
2022. 4. 3. 13:3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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