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은 '클래식'이 될 수 없나? : '동백꽃 피는 항구'
'클래식'(classic)이라는 말, 고상하고 품위를 느끼게 해주는 단어다. 한글 사전엔 “서양의 전통적 작곡 기법이나 연주법에 의한 음악으로서 흔히 대중음악에 상대되는 말로 쓴다”고 풀이돼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이 말이 그런 의미로 고착된 지 오래다. 그래서 음악의 장르만 넘어서면 클래식을 그저 “고전”이라고 옮기기엔 아귀가 맞지 않는 또 하나의 현실이 존재한다. 음악에선 클래식이라면 그것이 가리키는 영역이 고정돼 있지만 문학에선 고전문학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이가 드물 듯이 말이다.
서양에서도 클래식은 팝송 같은 대중음악이 아닌 말 그대로 고전음악을 가리킨다. 악기나 연주기법이 확연히 다른 음악의 장르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대 이전엔 현대와 같은 대중음악이 없었고, 왕족과 일부 귀족 및 성직자 계급만 누렸던 그 시절의 음악이 사실은 대중음악이나 다를 바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신흥 부르주아지 계급이 사회 구성원의 다수이자 주력이 되면서 생성된 “대중(mass)”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전에는 그 자신들이 바로 대중이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아동은 시민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모짜르트의 전성기 이전엔 오페라는 반드시 라틴어로 불렀던 유럽사회였다. 속물적, snob적 발상에서 존속된 문화적 관행이었지만, 수 세기 동안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던 불변의 터부였다. 독일인들마저도 자기들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부르지 않고 라틴어로 불렀다. 라틴어가 교양의 최고봉으로 전 유럽사회에 군림하던 시대였으니. 이러한 인습적 고정관념이 깨지게 된 건 하늘이 내린 천재적인 樂童이자 재기발랄한 惡童이었던 모짜르트의 공이 컸다. 꼭 라틴어로 불러야 클래식이 될 수 있다는 기존 생각을 우습게 본 그가 보란 듯이 유럽 귀족들에게 경박스런 말로 인식된 독일어로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나도 한 때 독일어 공부를 조금 해봐서 아는데 독일어는 불어와 달리 군인들의 군기 잡는데 어울리겠다는 느낌이 드는 언어이긴 하다. 지금은 오페라 중엔 독일어 시연도 엄연히 클래식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클래식과 대중음악 구분엔 단순히 장르 차원을 넘어 고급과 저급의 우열의식이 들어가 있다. 모짜르트가 그랬듯이 이 멀대도 그런 사고를 우습게 본다. 인간이 고급과 저급으로 가를 수 없듯이 예술과 문화에서도 고급과 저급은 없다. 모든 예술과 문화는 그 자체로 최적이다. 자체엔 높고 낮음이 없다. 헤집고 들어가고 밀어내는 공격성과 배타성도 없다. 그런 것은 오직 소비자, 향유자의 잣대와 운용에 달렸을 뿐이다. 19세기 근대로 넘어온 이후 서구의 오만과 힘이 넘쳐나면서 서양 제국주의자들의 후진 약소국 점령과 지배에 이론적 근거나 사상적 도구로 이용된 문화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자들이 피지배민족의 예술과 문화를 저급과 야만으로 규정한 게 원류였다. 물론, 그 뒤엔 그에 대해서 자성한 문화인류학자들도 적지 않게 생겨났지만...
대중이 즐기고 애창하는 노래가 세월이 지나면 고전으로 상찬되듯이 우리 대중가요들 중에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곡들은 “클래식”이라고 불리면 좋겠다. 서민의 애환, 사랑의 애틋함과 이별의 슬픔 따위의 정서들을 체념과 생의 의지로 교직된 恨의 카타르시스로 녹여주는 이미자의 많은 노래들도 클래식으로 분류하면 “Korean Classic”의 명성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오늘은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불멸의 가수 이미자 선생의 클래식 중 한 곡을 음미하고자 한다. '동백꽃 피는 항구'다. 나의 형이 가장 즐겨 부르는 애창곡 중의 하나여서 가끔씩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는 곡이 됐다.
https://youtu.be/DfWh8fJncoE
2022. 3. 13. 05:4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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