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한국전쟁

6․25전쟁 피해자의 통한, 겨레의 통한

雲靜, 仰天 2012. 6. 28. 23:39

6․25전쟁 피해자의 통한, 겨레의 통한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올해도 어김없이 “6․25사변”일이 돌아왔다. 광기의 집단행위인 전쟁은 파괴와 살상이 수반되고, 적개심으로 수행된다. 1950년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동족상잔이었다. 그렇기에 당한 우리의 적개심은 더욱 크다. 불시에 침략을 받아 숱한 부모형제, 처자식과 전우들이 죽어갔고, 천만 명이 생이별을 당했으니 철천지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

 

 

6.25전쟁 때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는 피난민들의 행렬(사진 출처 : SBS)

 

온갖 신산한 고초를 겪은 전쟁피해자는 전쟁발발 후 60여년이 지나도 참상을 잊지 못한다. 단장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어쩌면 무덤까지 갖고 갈 기억이요, 내상일 수 있다. 북한은 사죄는커녕 연평해전, 천안함공격으로 상처를 덧나게 했다. 이들의 대북 분노와 적개심이 누그러뜨려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분노와 적개심이 생사불명의 부모형제와 전우를 기필코 보고 죽겠다는 생의 의지, 즉 에토스(ethos)였다. 또 이 에너지가 승공, 멸공, 반공이념으로 응집돼 초토화된 황무지에서 산업화와 근대화를 일궈낸 동력이었다.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 전쟁피해자들의 통한은 통일을 위해 민족공동체의 한을 푸는 쪽으로 삭혀 민족통합의 에너지로 승화돼야 할 때다. 개인적 통한의 총합인 민족의 통한을 풀어야 각자의 상처와 아픔이 제대로 치유된다. 그 상처와 겨레의 통한은 공히 통일을 위한 싸움에서 생겨났으니 통일을 이뤄야 비로소 해소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북분단이 고착화 돼 온전한 민족국가 구실을 하지 못한지 오래다. 통일이 되지 않아 강소국 반열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으며, 남북갈등으로 민족적 힘을 상쇄해왔다.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도 통일 때문에 대등관계가 아닌 “을”의 입장에서 지내왔다. 북한의 국부가 중국으로 새어나가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한민족의 집체적 통한이자 불필요한 통일비용이다.

  

통일은 격절된 형제가 다시 만나는 민족적 해후임과 동시에 비정한 국제관계에서 인구증가, 영토확장, 경제규모 확대, 군사력증강, 자본과 노동력의 결합을 통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호기이자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통일이 민족사적 당위이자 필연인 이유다. 따라서 더 이상 분단 상태를 방치하고 지속시켜선 안 될 일이다.

 

그동안 남북 간의 상흔치유와 갈등완화의 방법론을 둘러싼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간의 알력은 너무 소모적이었다. 지금은 정보화세대에게 상처치유와 갈등해소를 통한 남북화해와 통일을 준비하도록 해야 할 시대다. 민족사적 사명을 수행하려면 분단과 전쟁발발의 원인, 휴전의 형식, 주변 강대국 간의 역학관계는 물론, 전쟁피해자들의 파토스(pathos)에 공감하고 상처를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먼저 국가가 전쟁피해자들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울분과 적개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종 현양사업이나 보상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전쟁피해자들도 개인적 차원에선 혈육을 앗아간 침략자에 대한 분노와 통한을 쉬이 내려놓지 못하겠지만 오직 민족의 미래, 운명과 후손을 위해 닫힌 마음을 대승적으로 열 순 없을까? 북한의 도발을 응징, 규탄하되 교류의 문은 닫지 말고 대화를 통해 준엄하게 책임을 지게 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전쟁불사론류의 극우적 언동은 정제돼야 한다.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과거 역사처럼 덩치 큰 주변국들에게 다시금 능욕과 굴종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관하는 선험적 이성과 인고가 절실하다.

 

위 글은 2012년 6월 29일 자『경북일보』에 "6․25전쟁은 겨레의 통한"이라는 제목으로 변경돼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