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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대한지키기 국민운동본부 초청 한국전쟁 강연

雲靜, 仰天 2012. 5. 7. 21:22

중국의 대북 군사개입 가능성 대비해야

written by. 최경선

 

자국본, 6.25 60주년 맞아 전쟁 발발 원인과 교훈 되새겨

 

“6.25에서 북한을 살려주었고 ’61년에는 북·중동맹을 맺어 한·미동맹에 대응해 주고, 싫어하는 부자세습까지 인정해 주었다. 그만큼 북한은 중국에게 빚을 지고 있다. 때문에 북한에 문제발생시 중국은 반드시 지분을 주장하며 개입할 수 있다.”

 

6.25전쟁 60주년을 앞두고 전쟁 발발의 원인과 교훈을 되새겨 보는 강연회에서, 중앙대 서상문 교수는 6.25 교훈의 하나로 중국의 대북 군사개입 가능성을 우려하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앙대 서상문 교수가 '6.25전쟁의 발발 원인과 교훈'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konas.net

 

 

목사님들과 예비역 고급장교 출신, 그리고 자유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믿는 기독교 단체인 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이하 자국본)는 19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서상문 중앙대 교수를 초빙해 6.25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 교수는 6.25의 발발 원인을 김일성의 군사 지상주의와 남침 도발, 중·소의 대북 군사지원과 남북한 비대칭 군사력, 스탈린의 남침 승인과 모택동의 동의 등 3가지로 분석했다.

 

먼저 서 교수는 김일성의 군사지상주의를 “김일성은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느라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변정세를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과 분별력이 부족하고, 대신 힘과 무력, 우격다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김일성이 군에서 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라며 “구 소련군 88여단에서 지대장(현재의 대대장급) 정도로 근무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전투를 지휘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6.25전쟁시) 북한군 총참모부 내에서도 사단급 부대를 지휘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당시의 김일성은 혈기만 왕성한 38세의 젊은이로 통일에 대한 의지만 있었을 뿐, 민족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고, 전쟁이 남길 상처를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김일성의 통일관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냈으나, “바꿀 수 없는 사실은 김일성의 전쟁에 대한 의지”라며 6.25전쟁 발발의 첫째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전쟁) 의지는 있지만 수단과 능력이 없는 김일성의 빈손을 채워 준 것이 스탈린과 모택동이었다”며 6.25전쟁에 있어서 구소련과 중국의 역할이 막중했음을 강조했다. 즉, 김일성은 한반도 무력 적화통일 의지를 가지고 ’46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고, 구소련의 무기와 장비, 중국의 병력지원이 있었기에 한국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전쟁 발생 이전에 중국이 북한에 지원한 병력은 중국군이 아닌 중국군에 몸담고 있던 한국인 군인으로, 54,000명에 달하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예군인인 이들은 조직과 장비, 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북한군에 투입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 교수는 “이들 중에는 분명히 남한 출신도 있었을 것이며, 북한군으로 투입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라며 “이들을 북한 인민군으로 보낸 것은 강제적이었다”고 의문점을 제기했다.

 

 

▲ 서 교수는 김일성을 "빨치산으로 활동하느라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상식적인 판단력이나 분별력이 부족한 대신, 힘이나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했다. ⓒkona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