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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정의와 불의, 그 기로의 선택②

雲靜, 仰天 2021. 1. 26. 10:24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정의와 불의, 그 기로의 선택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 성공 후 박정희는 스스로 별 4개를 단 육군 대장이 됐으며, 군사쿠데타의 주력이었던 김종필 등 육사 8기생들도 모두 특진됐다. 군 인사도 영남 출신들에 편중됐으며, 박정희가 육사8기생을 견제하기 위해 군내 새로운 세력인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를 친위조직으로 키웠다.

 

현재 생존해 있는 군 원로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군 역사의 산증인이자 연구자인 박경석 예비역 장군은 이것이 전두환과 윤필용이 신군부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배경이 됐을 뿐만 아니라 멀리는 1980년 광주민주화사건의 원인이 됐다고 본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박경석 장군의 허락을 득해서 박 장군의 글을 원문대로 올린다. 원문은 박 장군의 인터넷 개인 카페(인터넷 다음의 박경석 서재』)에서 볼 수 있다.2021. 1. 26. 10:19, 雲靜 編註

 

 

[2] 박정희의 군부 출범

 

516 이후 인사적체로 인한 여러 폐해를 의식한 혁명정부는 계급정년, 연령정년 등 각종 정년제를 포함한 인사법을 1962년에 제정하였다. 그렇다고 군 인사 운영이 정상궤도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른바 혁명주체세력들은 전자와 못지않게 인사의 파행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하극상 사건으로 군복을 벗은 예비역 중령 김종필 등 8기생들은 현역으로 복귀하자마자 모두 대령으로 특진하였고 장성 이상의 실세로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김종필 대령 등 8기생들 26명은 자신들이 제정한 인사법을 무시하고 육군준장으로 승진후 예비역에 편입, 권력 제 1선에 진출했다.

 

이 무더기 장군진급은 당시 현역장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516군사혁명의 대의명분이 훼손되어 불평불만의 소지를 만들었다.

 

박정희 또한 정권을 장악하면서 소장에서 중장 그리고 대장으로 별 넷을 달았다. 프랑스의 드골은 준장이었다. 그는 국민의 여망에 따라 얼마든지 별을 더 달수 있었지만 끝까지 별 하나로 그쳤으며 프랑스의 영광된 대통령이 되었다. 그에 비교하여 박정희의 대장 특진은 전례가 돼서 그의 후광으로 성장한 정치군인 전두환 및 노태우 또한 스스로의 권력으로 별 넷을 달았다.

 

 

5.16군사 쿠데타의 총괄 기획자가 되다시피 한 김종필과 최고 권력자가 된 박정희

 

박정희 군부의 특징은 상상을 초월하는 영남권 편중인사였다. 가령 1975년 장군진급에 있어서 진급자 22명 중 영남출신은 거의 대부분인 17명을 차지했고 호남권은 남도와 북도가 각각 한 해 걸러 1명씩 진급시켜 차별을 둠으로써 훗날 광주사태의 원인(遠因)으로 작용하는 불행을 초래케 하였다.

 

한편 박정희는 권력실세인 8기생 출신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하고 권력누수를 미리 예방할 목적으로 4년제 육사출신인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하나회를 성장시켜 후계 친위조직으로 육성했다.

 

따라서 이 무렵 8기생에 의해 축출된 이북출신과 호남출신 육사5기생들은 완전히 거세되면서 8기생 권력 대표로 윤필용과 하나회 전두환이 권력실세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윤필용(왼쪽)과 박정희(오른쪽) 중간에 웃음을 띤 자는 김계원. 윤필용은 당시 하나회의 대부 역할을 한 인물이었지만 나중에 반박정희의 노선으로 나가기 시작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가까워지는 것을 본 박정희가 도태시켰다.
한국 현대사사의 괴물 전두환은 과거 박정의 부부와 같이 기념촬영을 했을 정도로 최고 권력의 비호와 총애를 받았다. 전두환은 이 배경으로 윤필용과 함께 하나회의 두목 역할을 한 것이다.

 

윤필용은 수경사령관 직위에서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군부 실세들과의 유착관계를 맺고 수도권 주요 부대의 황금 직위로 알려진 모든 권력과 연관된 요직 독점에 성공하였다.

 

당시 권력 실세인 윤필용과 전두환의 직속상관인 거의 모든 고위 장성들은 영남권이었으며 그들은 상급자이면서도 실세 하급자에게 이끌려가는 수모를 감수했다. 김계원, 서종철, 노재현, 박희동, 이희성, 진종채,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충성의 대가로 별 넷을 달고 영화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