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3

인연 Ⅲ

인연 Ⅲ 삶이란 때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때가 있다. 작년 여름, 전혀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대만 중화민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올해 초부터 대만에서 약 1년간 생활하게 됐으니 말이다. 인연 역시 가늠할 수 없는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한 여인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 혼자서 나를 마음속 연인으로 생각하다가 여운이 긴 편지 한 통 남겨 놓고 홀연히 사라진 게 마지막이었으니 말이다. 그 여인이란 얼마 전 볼 일이 있어 과거 30대 초반 내가 일본어 강사로 있었던 보습반(학원)이 있던 타이베이역 건너편 충칭난루(重慶南路)에 갔다가 문득 떠오른 20대 중반의 한 “샤오졔”(小姐, 아가씨)였다. 그녀는 내가 약 2년 남짓 이곳 타이베이의 한 보습반에서 일본어 회화를 가르쳤을 때 나의 ..

인연 Ⅱ

인연 Ⅱ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만나고 헤어짐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의 인연이다. 애틋하게 만나고 싶어도 한 번 보고는 평생 동안 못 보고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는데도 자주 얼굴을 맞닥뜨리게 되는 이도 있다. 그야말로 애별리고(愛別離苦)요, 원증회고(怨憎會苦)이다. 생각나는 사람이 많은 계절의 이 가을날 오후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오늘은 약 30년 전 30대 초반의 타이완 유학 시절 타이베이 시내 한국 사찰의 법회에서 인연이 된 한 스님이 몹시 생각난다. 그분은 道山이라는 법명을 가진 젊은 한국인 선승이었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비구승으로 파르스름한 깎은 승발이 퍽 인상적이셨던 분이었다. 스님은 출가 전 세속에서 대..

인연 Ⅰ

인연 Ⅰ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맑고 푸른 하늘, 곱게 물든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초겨울, 문득 고등학교 때 배운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이 떠오른다. 피천득 선생이 젊은 시절 일본 체류 때 하숙집 주인 딸과의 만남을 얘기한 수필이다. 내용 중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대목을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가즈미(和美)와 두 번 만났다. 그리고 십여 년 넘게 소식이 끊겼다가 세 번째는 만나지 못하고 아니 들었어야 좋았을 소식만 들었다. 가즈미는 나와 결혼 인연이 될 뻔했던 일본 오사카(大阪)의 재일교포 3세였다. 당시 그는 아름다운 자태의 방령 24세였고, 나는 그보다 세 살이 많은 27세의 더벅머리 청년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