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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분노와 희생은 누구에게 이용당했는가?

雲靜, 仰天 2020. 11. 16. 17:02

전태일의 분노와 희생은 누구에게 이용당했는가?

 

내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1980년대 초 군 전역 후의 대학시절이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선 데모에서 최류탄 맞아가면서 한창 돌을 던지고 다닐 때였다. 전태일은 19701113일 법치국가라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분신한 청계천 피복노조의 노동자였다.

 

전태일에게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그가 당시 요즘 말로 잘 나가는 정규직 재단사여서 마음만 먹었으면 사장이 돼서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었음에도 자신보다 처우가 좋지 않은 소위 시다와 미싱사로 일하는 13세 전후의 소녀공들에게 자기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12가 넘는 길을 걸어서 출퇴근하는 등 약자를 배려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왼쪽 검은 색 선글라스를 낀 이가 전태일이다.

 

나는 일찍이 그를 통해 한국사회의 모순을 보았고, 한국사회 내에 깊숙이 똬리를 튼 자본이라는 괴물을 보았고, 한국사회의 암울한 절망을 보았다. 그러나 그 배면에서 그의 정의로운 항거에 뒤를 잊고자 한 청년들을 보고 한 가닥 희망도 보았다. 그들은 나와 같은 또래이거나 조금 적은 나이의 이른바 386운동권이었.

 

19701113, 청계천(현 중구 평화시장)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면서 근로기준법, 노동법을 지키라며 분신했다. 전태일의 희생은 결국 군사독재권력의 밑장을 뽑게 되는 역사의 도도한 巨浪이 됐다. 남겨진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 여사의 말대로 아들의 분신은 자살이 아니었다. 분연한 저항이었고, 시대정신의 포효였다. 김진호 목사가 말했듯이 예수가 교회라는 장소가 아니라 전태일 분신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부활한 것을 의미한다. 분신항거 얼마 뒤, 문익환 목사도 전태일이야말로 예수였다고 말했다.

 

 

아들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이소선 여사. 당시 이소선 여사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 그 뒤 여사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서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아픔과 함께 하는 대모의 삶을 살았는데, 아들의 죽음이 그 계기가 됐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 과문해서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고로 인해서 자연히 다른 감정에도 잘 동화되며 남자인 내가 불쌍한 광경으로 인해서 코언저리가 시큰할 때가 많으니까 말입니다(『전태일 평전)라고 말한 스무 살의 노동자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 말에 율법이고 예언자고 하는 군상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라고 설교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서른셋의 목수와 뭐가 다른지 알지 못한다. 나는 또 약자의 처지를 공감하고자 한 청년 전태일의 그 마음이 석가모니의 자비심과 공자의 , 惻隱之心과도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죽음은 결국 도도한 대해로 응집돼 18년 세월의 박정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동력의 한 축으로 작용했다. 이어서 들어선 신군부 정권 후 문민정부들이 들어섰고 민주화가 달성됐다. 그러나 완전한 민주화가 아니라 절차적인 민주화에 불과했다.

 

그런데 전태일의 희생 후 어언 반세기라는 긴 세월이 지났건만 우리사회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인간성은 더 황량해졌고, 노동조건은 오히려 더 악화됐으면 됐지 별반 나아 진 게 없다. 당시 독재타도와 정의를 부르짖던 학생운동을 주도한 운동권의 386세대는 지금 이 정권의 살아있는 권력이 돼 있지만 한 때 젊은 시절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친 것이 진정성이 있는 것이었다면, 정의와 공정의 사도인 것처럼 살면서 자신의 말대로 자신의 권력, 금력, 명예보다 사회적 약자를 먼저 생각했다면 오늘날 이 정권이 이 지경이 되었겠는가?

 

문재인 정권 약 5년 간 과연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에 비해 달라졌는가? 그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이명박근혜 정권보다 한 가지라도 진보된 것이 있는가? 대통령 측근들과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사라져 세상이라도 맑아졌는가? 재벌기업과 고위 공무원 및 정치 권력자들에게 편중된 부가 조금이라도 완화됐는가? 국민의 기본권 증장, 국민주권의 제자리 찾기, 정의와 공정성과 평등은 얼마나 진전되었는가? 망가진 환경 및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는가? 정부 차원에서 지구기후문제 개선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가? 민생의 안정, 양성평등, 친일적폐 청산, 국가주권의 자주성 제고, 정치개혁, 재벌 및 경제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기반 조성 등등 어느 한 가지라도 진보된 게 없다.

 

이런 분야들은 잠시 접어두고서라도 노동자, 근로자, 사회적 취약계층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가만 따져보라 뭐가 달라졌는지.

 

생계 비관, 사회적 불평등에 짓눌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현저하게 감소했는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및 재산증식의 부정과 양극화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경제민주화가 진전된 게 있는가?

 

수십, 수백조로 돌아다니는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가 공정해져서 국민 전체의 자산 및 소득분배가 더 평등해졌는가?

 

한국사회의 주된 부의 편중 수단이자 망국적인 부동산 가격 및 주택보급의 안정화가 이뤄졌는가?(부동산가격은 문재인 정부 들어 더 올랐음)

 

역대 대선 때마다 단골 공약인 아파트분양 원가가 공개된 게 있는가?

 

노동 관련법들이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를 이행하도록 개선, 개정된 게 있는가?

 

노동조합 결성권이 모든 노동자와 근로자에게 보장되고 있는가?

 

최저임금 1만원이 달성되고, 산업재해가 감소했는가?(한국은 산재사망율 1위의 자리를 무려 21년이나 유지하고 있음)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간의 제 문제들이 해소됐는가?(비정규직은 1,100만 명으로 국민 전체 인구에서 5분의 1이 넘었음)

 

파견법 등 노동 관련 악법들이 폐지됐는가?

 

기초생활수급자 부양자 의무기준이 폐지되었는가?

 

청년들의 취업난이 완화되고 여성의 출산율이 오르고 있는가?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력, 임금 착취 및 갈취와 인권유린 상황이 개선됐는가?

 

하나씩 하나씩 짚어보니 어떤가? 한 마디로 문재인정권은 이명박근혜 정권을 완벽하게 계승한, 일정 부분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최악의 무능하고도 부패한 정권이다. 진보라고 자칭하면서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한국 사회의 여러 법률과 제도를 개정한 게 있던가? 무지하고 탐욕적인 보수진영은 기형적 사회를 만든 역사적 동업자였고, 그들과 한 패거리인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이비 진보세력은 보수진영과 싸우면서 전태일의 분노를 이용했고, 전태일의 양심을 훔쳤고, 전태일의 정의를 도용했고, 노동자와 근로자들의 꿈을 뭉겼다. 1948928일 생이니 지금 살아 있다면 72세가 돼 있을 전태일이 되 살아나 이를 보면 뭐라고 할지 부끄럽지 않는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고도 멀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한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전태일 열사에게 훈장을 주면서도 열사의 이름을 딴 전태일3에는 단 한 마디도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 대통령인데, 훈장수여의 진정성이 믿어지겠는가? 그냥 형식적으로 누구에라도 상을 줘야 해서 하는 일로 보일 뿐이다.

 

훈장은 전태일 열사에게 수여한 것이니 유족이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내건 대선 공약들 중 최저임금 1만원,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 적용,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 등 노동존중 공약 50개 중 지켜진 게 없는 노동자 죽음의 나라라는 상황임을 망각하거나 훈장이 주는 분식효과에 매몰돼선 안 된다.

 

전태일 열사 분신 항거 50주기가 돼도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아직도 적대적으로 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보수 언론에선 그에 관해 한 건도 기사화 한 게 없다. 이것이 무얼 말하는 것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노동자, 근로자 문제는 노동자, 근로자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 전체가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이승을 하직하기로 결심하면서 남긴 유고시를 보면서 글을 맺는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전태일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2020. 11. 10, 전태일 열사 분신항거 50주기 이튿날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