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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를 둘러싼 이상한 '가짜 뉴스'들 :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아베 신조가 그의 손자라고?

雲靜, 仰天 2019. 8. 16. 17:53

아베를 둘러싼 이상한 '가짜 뉴스'들: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아베 신조가 그의 손자라고?

 

일본인들의 한국 혐오감을 조장하는 요인들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는 일본정부의 도리에 어긋나는 정책 외에도 정부의 입장만 두둔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는 극우계열의 부박한 언론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오랫동안 일본정부와 극우파의 한국 및 한국인 무시 태도, 독도, 과거사문제에 대한 망언이나 이번처럼 경제전쟁이 본원적인 원인이라면, 극우언론은 이를 더욱 확대시키거나 조장하는 악역을 맡아왔다. 언론이 언론 본연의 객관성과 비판기능을 망각한 채 경쟁적으로 상대 국민의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를 심심찮게 내보내 사태를 더 키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한일 양국뿐만이 아니라 중국-일본, 한국-일본, 한국-중국, 한국-대만, 대만-일본 사이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관련국들 사이에 천둥과 먹구름을 걷어내고 관계개선을 위해선 상대의 왜곡만 탓할 게 아니라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상대에 대한 사실 왜곡이 있으면 그것을 시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범아시아 차원의 언론감시기구의 발족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우리에 대해 경제전쟁을 도발하자 일제 강점기 마지막 조선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1875~1953)가 했다고 한 발언이나 현 아베 신조 총리와 관련해서 예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말들이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소름끼치는 언행” 등의 제목으로 다시 나돌고 있다.

마지막 조선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 그는 패전 후 내각총리까지 역임한 일본정계의 거물급 인물이었다.


아베 노부유키가 일본은 패전했지만 반드시 조선으로 다시 올 것이라고 했다거나 아베 신조가 바로 이 아베 노부유키의 손자라는 얘기다. 모두 사실이 아니라 지어낸 말들이다. 요즘 용어로 “가짜 뉴스”다. 먼저 아베 노부유키가 한 발언이라고 떠돌아다니는 말을 보자.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위 말 아래에는 일본어 원문이랍시고 아래와 같은 문장이 붙어 있다.

“日本は敗れたが、朝鮮が勝利したわけではない。大言壮語ハゴンデ朝鮮が第我に返ってきらびやかで偉大な昔の朝鮮の栄光を取り戻すには、100年という歳月がはるかにかかるだろう。私たち日本は、朝鮮国民に銃と大砲よりも恐ろしいの植民地教育を植えて置いた。結局、朝鮮人たちはお互いに仲違いし、奴隷的な生活を送るのだ。見よ!実に朝鮮は偉大した絢爛だったが、現在の朝鮮は結局日本の植民地教育の奴隷に転落した。そして、私の阿部は再度もどって来る。”

인터넷 상엔 위 내용이 아베 노부유키가 미군 진주 시 총독부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경성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었다고 소개돼 있다. 심지어 아베가 했다는 이 발언을 인용해 칼럼을 쓰는 이들까지 있다. 신문에 칼럼을 쓰는 사람들이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다니 한심스럽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인터넷에는 이를 두고 “역시 한국인이다!, 일본인 누구도 몰랐던 역사의 진실을 차례로 폭로해주니 말이야!”, “한국인 99%가 믿고 있다”라는 조롱과 비아냥대는 글이 올라가 있다.

그런데 아베 노부유키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적어도 문헌상에선 그렇다. 아베 노부유키가 물러나면서 했다는 위 말은 그와 관련된 서적들(아베 노부유키 관련 문헌은 東京大学近代日本法政史料센타에 소장된 마이크로필름을 1992년 3월에 복제한 8권 분량의 『近代立法過程研究会収集文書21 阿部信行関係文書』, 加藤陽子가 소개한 『近現代日本人物史料情報辞典』, 吉川弘文館, 2004年)에선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아베 노부유키는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당시 그런 말을 할 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1945년 9월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게 되자 취한 할복자살 기도가 실패하고 9월 9일 하지 장군이 주도한 항복 조인식장에 나와서 항복 문서에 조인하게 된 아베 노부유키로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 식민통치를 정당화, 합리화해야 할 입장에 있던 조선총독 신분인 아베 노부유키가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 “실로 옛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다”는 식으로 조선을 긍정한 발언을 했을 개연성이 떨어진다.

더군다나 일본어 원문이라고 믿기에는 의심쩍은 위 글도 한국어를 바탕으로 한 기계 번역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본어 원문이란 것을 한글로 옮겨놓은 번역문 역시 조사의 쓰임새, 시제, 용어 등에서 잘못된 번역이 많이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일본어 원문엔 통상 일본인들이 사용할 수 없는 한글어휘도 들어가 있어 번역기에다 넣고 번역한 문체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다. 예컨대 “장담 하건대”에 해당되는 “大言壮語ハゴンデ”에서 “ハゴンデ”는 한글의 “하건대”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이는 마치 한국어를 말하는 일본인의 어투인 “했스무니다”와 같은 말투인데, 총독이라는 자가 이런 어투로 이런 내용을 남겼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가짜 얘기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주둔 미군 맥아더사령부가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11일 아베를 심문할 때 그는 일본 식민정책은 조선인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이었다. 조선인은 아직도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된 정부 형태가 되면 당파싸움으로 다시 붕괴할 것이라며 남북공동정부 수립을 적극 반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도 했다.

아마도 아베 노부유키가 “일본 식민정책은 조선인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이었으며, “조선인은 아직도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된 정부형태가 되면 당파싸움으로 다시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을 수는 있지만, 그런 이유로 그가 “남북공동정부 수립을 적극 반대”했다는 것은 사실에 어긋나는 명백한 거짓이다. 아베 노부유키는 일제 패전 후 연합군에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극동국제군사재판(일명 ‘동경재판’)이 열리기 직전에 기소예정목록에서 빠진 상황이어서 남북공동정부 수립을 거론할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인터넷의 위키피디아 인물소개 난에는 아베 노부유키에 대한 또 다른 사실날조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終戦時は最後の朝鮮総督であり、日本統治終了以後の朝鮮半島が無政府状態に陥るのを恐れ、民衆保護のために第17方面軍司令官上月良夫とともに朝鮮へ自治権を与え、朝鮮人民共和国を成立させた。”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위 일본어 원문을 한글로 옮기면 아베 노부유키가 “종전시는 최후의 조선총독이고, 일본통치 종료 이후의 조선반도가 무정부상태에 빠질 것을 우려해 민중보호를 위해 제17방면군 사령관 코우즈끼 요시오(上月良夫)와 함께 조선에 자치권을 주어 조선인민공화국을 성립시켰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에 자치권을 주어 조선인민공화국을 성립시켰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럴듯한 가짜 뉴스는 또 있다. 아베 노부유키의 사돈이 전후 수상을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였고,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 노부유키 총독의 손자라면서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두 사람의 피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우리 민족 웬수의 손자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신조가 아베 노부유키 총독의 손자라는 위 얘기도 사실이 아닌 지어낸 말이다. 아베 신조와 아베 노부유키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남남이고, 사돈이 된 바도 없다. ‘阿部’ 성의 아베 노부유키와 ‘安倍’ 성의 아베 신조는 성부터 다르다. 두 사람의 성을 일본어로 읽으면 발음이 같을 뿐이다. 아베 신조가 아베 노부유키의 손자라는 곡해가 있었다면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악의적으로 왜곡하고자 한 의도도 없지 않아 보이지만, 고의가 없었다면 단지 두 사람 성의 일본어 발음이 똑같아서 확인도 해보지 않고 그렇게 퍼뜨린 듯하다.

아베 신조의 가계를 보면 이 사실은 분명해진다. 아베 신조는 야마구치(山口)현의 중의원을 지낸 아베 칸(安倍 寛, 1895~1946)의 손자다. 그의 아버지가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 수상으로 취임하면서부터 4년 동안 외무상을 지낸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였다. 아베 칸은 1941년 12월 진주만의 미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 등 군부의 전횡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사망했다. 도조 히데키는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판정돼 다른 전범 6명과 함께 1948년 12월 도쿄의 스가모(巢鴨)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아베 칸의 아들로 태어난 아베 신타로는 1948년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면서 마이니치(每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년 후인 1951년, 그는 기시 노부스케의 딸 기시 요우코(岸洋子)와 결혼해 3년 뒤 아베 신조를 낳았다. 그 뒤 아베 신타로는 8년간의 기자생활을 접고 외무성에 들어가 비서관이 되었다가 그 1년 후인 1957년부터 총리실 비서가 되어 당시 총리가 된 장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를 보좌하면서 총리의 사위가 된 것이다. 1958년 처음으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한 아베 신타로가 무난히 당선된 것은 현직 수상이었던 장인의 후광을 업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가 바로 A급 전범의 용의자로 구속돼 극동국제군사재판의 수사를 받고 재판이 끝난 뒤에 불기소로 석방됐다가 나중에 사면돼 총리직을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1957~1960년까지 일본의 제56, 제57대 총리를 연임하면서 소위 “55년 체제”라 불리는 자민당의 장기집권 구도를 만든 우파 세력의 거물 정치인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야마구찌현의 죠슈(長州) 藩士 가문의 후손 기시 히데스케(岸秀助)의 차남이었다. 노부스케 위로 장남 이치로우(市郞)가 있었고, 아래에 3남인 동생 에이사쿠(榮作)가 있었다. 나중에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1901~1975)가 바로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었다.

형제끼리 성이 다른 것은 복잡한 일본의 데릴사위 관습에서 연유한다. 야마구찌 현청에 근무하다가 퇴임한 뒤 양조업을 하려던 기시 히데스케가 양조권이 필요해 양조권을 가진 사토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그 집의 딸(佐藤茂代)과 결혼함에 따라 처가의 성 사토로 바꾸었다.

아들 기시 노부스케와 기시 에이사쿠도 어릴 적 한 동안 개성한 아버지 성을 따라 ‘사토 노부스케’와 ‘사토 에이사쿠’였다. 노부스케가 고교시절이었을 때였다. 그런데 얼마 후 차남인 사토 노부스케는 다시 부친의 친가인 기시가에 양자로 되돌아와 기시 성을 취했다. 이것이 기시와 사토 두 형제가 성이 달랐던 배경이었다.

아베 신조의 작은 외할아버지 사토 에이사쿠는 제61대부터 제63대까지 총리를 세 번이나 지냈고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1974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사토 에이사쿠는 친형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 자리에 있을 때에 대장상을 맡았다. 형은 A급 전범, 동생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형제인데,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 가지 팁을 선사하면, 역대 ‘천황’이 그렇듯이 아베 신조의 몸에도 어쩌면 한국인의 피가 흐를 수도 있다. 이는 기시와 아베 가문에서 가정부로 40여 년간 일한 구보 우메(久保うめ)라는 80세의 여성이 일본의 매체인 주간 아사히(『週刊朝日』)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의 부친 아베 신타로가 종종 “나는 조선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 증언으로 알려진 것이다. 구보씨의 증언은 2006년 10월 6일자 『週刊朝日』의 커버스토리에 “아베 신조 연구 : 가정부가 본 아베, 기시 3대”라는 제목으로 아베 가문의 특집으로 다뤄져 있다고 한다.

아베 신타로가 자신의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다고 폭로한 구보 우메(久保うめ)

구보씨에 따르면, 아베 신조의 선친 아베 신타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는 말해줬다”고 하면서 아베 신타로의 사망 직후 “입관 때 이 사람의 골격을 보면서 정말로 일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거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한국인의 체형”이었다고 밝혔다. 또 아베 신타로는 자기 가문이 북한 지역에서 건너왔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아베 신타로는 임진왜란 시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후손인 제14대 심수관과의 대화에서도 자신의 집안이 1600년대 이후에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출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증언과 발언들이 사실이라면, 아베 신타로 본인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의 후손으로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 아들인 아베 신조는 당연히 한국인의 피와 DNA가 섞여 있을 수 있다.

아베 신타로는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사위가 됐지만, 그의 정치역정은 전후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우익”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의 아들 아베 신조는 ‘평화헌법’을 무력화시켜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 ‘정상국가’로 만들려는 일념으로 선친이 못 뗀 걸음을 떼고선 “극우” 정치인의 간판인물로서 외조부가 걸었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2019. 8. 16. 09:35
臺北 中央硏究院 近代史硏究所에서
雲靜

위 글은 2019년 8월 16일 자『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의 수정 전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