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나의 그림

고교~대학시절의 습작들

雲靜, 仰天 2012. 4. 5. 21:38

 

고교~대학시절의 습작들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작정 유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작가의 작품을 모사한 그림. 8호의 소품인데 5촌 당숙네 6촌 누나가 좋다면서 자길 주라고 하길래 두 말 없이 줘버린 것이다. 당시로선 고등학생이 유화를 그린 경우는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묘사력이 발군이라고 평가 받은(중고등 시절 전국규모 미술대회에서 대상, 최고상을 많이 받았음) 수채화 작품들도 많았지만 다 선물하거나 친구들이 와선 가져가버리고 정작 내게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대학 1학년 때 그린 실물 크기의 연필 데생 자화상.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얼굴 이하는 톤이 많이 흐리다. 사진마저도 잘못 찍어 흉칙하게 오른 쪽 발목이 왕창 잘려 있다. 지금도 잘린 부분이 아프다!
대학 2학년 때 경주의 어느 공원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을 그린 미완성 습작인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을 알 수 없다. 30호 짜리 대작이었다. 그동안 유랑하다시피 사느라 내 손을 떠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습작들이 한 두 점이 아니다. 그 중엔 지금도 잊지 못하는 습작들이 있는데 춤추는 발레리나들을 그린 2~30호나 50호 이상의 유화 대작과 탱화 기법으로 불상을 그린 작지 않은 佛畵도 있었다. 누군가가 소장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많이 아쉽다. 아뭏든 그림을 통해 나와 간접적으로 인연이 맺어진 경주의 이 노인네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고 계실까? 30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어쩌면 고인이 됐을 수도 있겠다.
대학 2학년 때 그린 사찰 풍경화. 10호 크기의 이 그림은 내가 文通으로 알고 지내던 일본인 할머니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분에게 선물한 것이다. 할머니는 오사까시 인근의 이코마(生駒)라는 소도시에 살고 계셨는데, 1985년 7월 처음으로 선배들과 일본을 여행했을 때 하루 밤을 묵게 해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드렸다. 그리곤 그 뒤 편지를 주고 받다가 세월이 흘러 오래 전에 타계했는데, 살아 계시면 올해 90세가 훨씬 넘었을 연세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그의 아드님의 가족 사진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이 그림은 아마도 그 아들이 소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군 제대 후인 대학 2학년 겨울방학 때 그린 10호 크기의 습작. 이 그림은 당시 주한 미 공군 장교로 포항 인근에서 근무한 미국인 친구에게 선물한 것이다. 당시 내 주위엔 자주 만나 소줏잔을 기울이거나 같이 여행을 다닌 미국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도 한 사람이었다. 위 그림을 흔쾌하게 선사한 건 그림을 보고 좋다고 탄성을 지르면서 갖고 싶어한 그의 눈빛을 차마 모른 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발 부분에 희끗희끗한 것은 사진의 광도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선사받은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