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국의 두 지배자 鄧小平과 鄧麗君
지난 세기 한때, 중국에는 鄧이라는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천하를 지배했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중국"이라는 건 정확한 개념은 아니지만 서술의 편의상 대만해협 양안, 즉 중국대륙과 대만을 통털어 일컫는다. 두 사람의 鄧씨는 鄧小平과 鄧麗君이다. 지금은 둘 다 고인이 된지 오래다.
등소평은 다들 알듯이 중국 공산혁명 1.5세대로서 사천 객가족 출신의 뛰어난 군사전략가이자 정치인이지만, 등려군은 대만 출신의 인기 여가수다. 중국인들 사이, 특히 대만인들 사이엔 이 두 사람이 중국대륙을 지배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낮에는 鄧小平이 지배했었고, 밤에는 鄧麗君이 지배했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영향력과 위상을 보면 이 평가는 그다지 과장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민들이 낮엔 남 눈치 보느라 밤에만 등려군의 노래를 즐겨 듣지 않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등소평의 통치권력은 중국 대륙에 국한된 반면, 등려군의 영향력은 대만을 넘어 중국대륙 전역에까지 미쳤다. 심지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중국인 후예들, 즉 화교(내함이 조금씩 다른 華僑와 華人 모두 포함)들까지도 그에게 열광했다. 전자는 군사력과 정치적 권력을 통해 인민들을 통치했다는 측면에서 강성권력(hard power)이라고 할 수 있고, 후자는 문화적 힘으로 광범위한 영향력이 퍼져 있었다는 점에서 연성권력(soft power)이라고 할 수 있다.
등소평과 등려군, 두 사람의 관계는 매칭이 되지 않는 전혀 이질적인 것이다. 매칭이 되는 게 있다면 두 사람 다 인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이다. 정치라는 다소 권위적이고 딱딱한 분야 그리고 가요라는, 긴장을 놓게 만들고 흥취를 돋구는 분야에서 제각기 우뚝 선 바 있는 유명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사회적 영향력은 어금버금하다. 역사학이나 정치학뿐만 아니라 사회사적, 음악사적 관점에서도 그것이 각기 함의하는 바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에 대해선 논의는 급할 건 없지만 Sinologist라면 누가 해도 한 번은 짚어봐야 할 과제다. 이 보다 더 긴요한 일을 해오고 있는 현하의 나로선 기약 없는 일이다. 등소평이여, 등려군이여 우선 계획에 잡혀 있는 일들을 마무리 짓고 보자.
2018. 5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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