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거사의 주역 김재규의 최후 진술
오늘은 1979년 10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일으킨 ‘10·26’ 거사 날이다. 김재규는 왜 고향선배이자 군의 선배로서 친형처럼 존경해왔던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을까? 이른바 10·26사건의 완전한 진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역사가의 연구와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박정희와 차지철을 총살한 김재규가 어떤 생각으로 10·26거사를 일으켰는지 그의 거사 동기 혹은 목적에 대해서, 또 그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만큼 학계의 치밀한 연구가 부족한 현재로선 비전공자인 내가 어떻다고 단언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단지 그 사건이 그 뒤 일어난 ‘12·12’사건이 상징하듯이 한국 현대사에 거대한 역사적 영향을 미친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대두해 김영삼, 김대중 등 민주화세력이 제압됨과 동시에 국가권력이 다시 군부의 수중에 들어가는 등 역사의 물길이 틀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김재규는 자신의 최후 진술에서 밝힌 것처럼 박정희 처단을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다. 과연 ‘10·26’은 그가 박 대통령 시해 후 국가권력을 장악해 자신이 말한 혁명과업을 추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일으킨 사건이었을까?
만약 그랬다고 한다면 사전 모의가 왜 그렇게 허술했으며, 시해 후의 차기 행동계획도 전혀 없어 보였을까? 아니면 혁명거사는 전혀 생각한 바 없었는데, 박 대통령 시해 후 시해행위를 혁명으로 미화한 것일까? 또 혁명거사는 생각해오고 있었지만 그날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음에도 그만 “버러지 같은” 차지철의 전횡을 혐오해오던 차에 그날 밤 회식 자리에서 또 한 번 자신에게 폭언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박 통에게도 아부 발언을 해대는 바람에 격한 감정을 못 이겨 일으킨 우발적인 시해사건이었을까?
김재규가 남긴 최후 진술을 어느 정도로 믿어야 할지, 또 그가 밝힌 속내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다. 우선 김재규가 최후 진술에서 뭐라고 언급했는지 내용을 알아두고 전문적이고 총체적인 연구결과가 나오길 기다려보자.
피고인 김재규의 최후진술
최후진술의 기회를 주어 감사합니다.
목이 잠겨 말이 안 나오나 끝까지 말하겠읍니다. 금번 본인은 내란죄로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읍니다. 합법적인 민주당 정권은 5·16군사혁명에 의하여 밀려났읍니다. 10월유신은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한 또 한 차례의 혁명이었읍니다. 금번 10·26혁명은 이 나라 건국이념이요, 국시인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혁명한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6·25를 통하여 수난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바쳐 지켜온 것입니다. 이 혁명이 어찌하여 내란죄로 심판받느냐. 자유민주주의는 남녀노소 3,700만 우리 국민이 갈구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또한 10·26혁명은 순수하고 깨끗한 것입니다. 집권욕이나 사리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10·26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 회복은 보장되었읍니다. 최대통령도 대행으로 있을 때 공약하지 않았읍니까? 최 대통령은 현 임기를 마치지 않고 도중에서 그만 둔다고 하였는데 이는 과도정부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 과도는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가 아니겠읍니까. 따라서 10·26혁명은 완전히 달성되었읍니다. 국회에서도 긴급조치 9호의 해제 결의를 하였읍니다. 10·26혁명이 없었던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으며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일입니까? 이 또한 이 혁명의 성공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10·26혁명은 5·16혁명이나 10월유신에 비하여 정정당당한 것입니다. 10·26혁명은 서슬이 시퍼렇고 막강한 유신체제를 정면에서 도전하여 타파하는 데 성공했읍니다. 그리하여 민주회복혁명은 완전 성공한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정정당당한 혁명입니다. 무혈혁명이 혁명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무혈이 안 될 때는 최소한의 희생이 따르고 최소한의 희생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박대통령은, 민주회복과 그 자신의 희생은 숙명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그 희생 없이는 민주회복이 안 됩니다. 박대통령을 잃은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고 마음 아픔을 비할 데가 없읍니다.
그러나 유신 이후 7년이 경과되었고, 영구집권이 보장된 이상 최소한 20년 내지 25년 내에는 자유민주 회복이 안 됩니다. 마음 아프지만 국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하여 이 혁명은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 감상적이고 감정이 몹시 앞서 있기 때문에 사리 판단에 있어서 지나치게 판단하기 쉽습니다.
나에 대한 내란죄 심판도 그런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감상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치 현실은 현실대로, 감상은 감상으로 엄연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나 경우를 잘 가리기 위하여 판례를 중히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가 내 생명을 구걸하거나 구걸하기 위하여 최후진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내가 갈 수 있는 명분을 찾은 것 고맙게 생각하고 나는 죽어서도 영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을 구걸할 필요가 없읍니다.
그런데 10·26혁명의 그 이념과 정신과 그 성공을 뚜렷이 하기 위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이 허용하는 한 나는 투쟁하는 수밖에 없읍니다. 5·16혁명, 10월유신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10·26혁명도 정당한 것입니다. 10·26혁명이 범법이라면 의미 없는 혁명이 되고 맙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건국이념이고 국시입니다. 전체 국민이 수난당하며 지켜왔던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도 말살될 수 없읍니다.
그런데 10월유신으로 까닭 없이 말살되었읍니다. 10월유신은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박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한 체제였읍니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를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말살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로부터 받을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체제반대 민주회복의 소리가 높아지자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구속되었읍니다. 이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번져나갔읍니다.
정보부장으로서 파악한 바에 의하면 유신체제를 유지하려면 정부와 국민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집니다. 이승만과 박 대통령을 비교하면 이승만은 그만둘 때 그만둘 줄 알았으나 박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희생되더라도 끝까지 방어를 해낼 사람으로서 그만둘 사람이 아닙니다. 본인은 이를 알기 때문에 유신의 지주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지만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뒤돌아서서 그 원천을 두드려 부순 것입니다.
10·26혁명의 목적은
① 자유민주주의 회복,
② 국민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고,
③ 적화 방지(건국 이래 미국 관계 가장 나쁘다),
④ 민주 회복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국방, 외교, 경제상 국익 도모,
⑤ 국제사회에서 독재국가라고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의 명예를 회복한다.
그런데 위 모두가 10·26혁명의 결행으로 해결이 보장되었읍니다. 한 마디 확실히 말할 것은 나는 결코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이 없었읍니다. 나는 군인이요 혁명가이고, 군인이 정권을 잡으면 독재자가 될 우려가 있읍니다. 내가 독재를 마다고 혁명한 사람이 다시 독재의 요인을 만들겠읍니까?
나는 개인의 의리를 배반하고 대통령 무덤 위에 올라갈 정도로 도덕관이 그렇게 타락되지 않았읍니다. 혁명의 결행은 성공했으나 혁명과업은 수행 못했읍니다. 이 나라에는 5·16 이후 19년 동안 많은 쓰레기가 꽉 들어차 있읍니다. 이런 쓰레기 위에 자유민주주의가 회복을 한다면 출발과 동시에 자유민주주의가 또 곤욕을 치르게 되고 나아가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나쁘다는 애매한 수모를 먹게 됩니다. 이런 쓰레기를 설거지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정의가 살았다고 할 수 있겠읍니까?
6·3사태 때 이 사태 진압을 위해 서울에 계엄군을 이끌고 왔기 때문에 그때 사정을 잘 압니다. 6·3데모가 일어난 것도 자유민주주의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고, 오히려 4대 의혹사건과 같은 비민주주의적인 일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고 악순환한 것입니다. 4대 의혹사건 자체도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었읍니다.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로서 수없이 많은 돈을 치부하고 책임진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읍니다. 또 그때 치부한 돈이 한 푼도 회수되지 않았읍니다. 이를 설거지 하지 않고서야 혁명과업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겠읍니까?
지금은 이 나라에 핵심이 없읍니다. 이 상태가 가장 어려운 상태이고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4·19같은 주인이 없읍니다. 4·19 후와 같이 힘센 놈이 덤비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 또 옵니다. 이를 막는 것은 오로지 민주회복혁명을 지도한 저만이 할 수 있읍니다. 자유를 회복해 놓고 새로운 정권에 대해서 군 수뇌와 협의하여 그 정권을 보호하여 민주당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읍니다.
건국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평화적 정권교체가 된 적이 없었읍니다. 4·19, 5·16 등 악순환이 거듭되었읍니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가게 하겠습니까? 정권을 순리적으로 넘어가게 하는 것을 토착화하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최대통령에게 말씀드립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대문 앞에 와 있는데 문을 열고 있지 않고 있읍니다. 자유민주주의 때문에 절대 혼란은 오지 않습니다. 자유당 때는 부정선거, 국민의혹사건 때문에 혼란이 왔었읍니다. 지나치게 급격한 변화가 문제는 되겠지만, 혁명과업은 3∼5개월이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빨리 민주회복을 하지 않고 천연하면 내년 3, 4월에 민주회복운동이 일어나서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입법부에 말합니다. 진정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라면 국민의 갈망을 받아들여 10·26민주혁명을지지 결의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는 민주 회복되고 난 후에 자유민주 회복을 위해 무얼 했느냐 물어보고 싶습니다. 긴급조치 해제 건의는 지엽적인 것입니다. 더 긴급한 것은 자유민주 회복뿐이고 자유회복 결의가 더 원천적인 결의인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가만히 눈 감고 생각하면 내 혁명의 원인이 되어 혼란이 오고 국기마저 흔들릴까봐 큰 걱정입니다.
최 대통령께 지금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나를 끌어내어 나와 같이 혁명과업을 수행합시다.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읍시다.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성으로 돌아가 냉혹하게 정치현실을 판단해야 합니다.
심판관님께, 재판장님께, 연일 공판에 매우 피곤한데도 장황한 이야기 경청해주어 고맙습니다. 마지막 하직해도 고마움 간직하겠읍니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20∼25년 앞당겨놓았다는 자부 가지고 나는 갑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만발을 보지 못하고 나는 가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자유민주주의 만발하기를 기원합니다.
10·26민주회복국민혁명 만세!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만세!
세상을 하직하고 가면서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보지 않고 가니 한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기약되었으니 웃으며 갈 수 있읍니다. 나에게는 소신에 의한 행동이니 그에 알맞는 형벌을 내려주십시오.
끝으로 나의 부하들은 착하고 순한 양 같은 사람들입니다. 무조건 복종했고 선택의 여유나 기회를 주지 않았읍니다. 모든 것이 저에게 책임이 있읍니다. 저 하나가, 중앙정보부 지낸 사람이 총책임 지고 희생됨으로써 충분합니다. 저에게 극형을 주고, 나머지는 극형만 면해주도록 부탁합니다.
특히 박 대령은 단심이라 가슴 아픕니다. 매우 착실하고 결백하며 가정적인 사람입니다. 청운의 꿈이 있던 사람입니다. 군에서 곤란하더라도 여생을 사회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극형을 면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재규
2018. 10. 26. 23:07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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