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의 유래와 기원, 그리고 내 명함을 보고 나를 들여다본다
세계 어디서나 요즘은 사람을 만나거나 비즈니스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 중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소개해놓은 명함은 필수적이다. 나도 새벽에 일어나 봄학기 첫 인문학 강좌를 위해 지방 갈 채비를 하면서 명함을 챙겼다.
이제는 구미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처음 만나면 먼저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다. 이 광경은 흔히 접하게 될 만큼 널리 일반화됐다. 명함을 통해 자기를 상대에게 각인시키고, 상대가 어떤 직종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감을 잡는다. 명함을 주고받는 것엔 자신을 소개하는 일차적 기능 외에도 다양하고 묘한 개인적, 사회학적 심리가 숨어 있다.
명함은 최초 언제, 어디서 만들어진 것일까? 최초의 시기는 15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베니스에서 유학하던 한 독일(당시는 프로이센, ‘독일’이 된 것은 1870년 프랑스와의 전쟁 이후부터) 학생이 귀국을 앞두고 지도교수댁에 작별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런데 지도교수가 집에 없어서 그 학생은 작은 종이에다 자신의 성명을 적고 그것을 교수 집안에 던져 넣어뒀다. 이것이 서양 최초 명함의 시초였다. 프랑스의 루이 15세~루이 16세 시대 때에 이르러서 사회생활 중 사교나 교류 혹은 비즈니스 시에 명함을 주고받기 시작한 뒤로 명함사용은 18세기 말이 되면 유럽사회 전역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에 명함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즉 세계 최초의 명함 사용자들은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명함을 유럽 보다 더 일찍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인들은 명함을 사용하는 문화를 중국이 아니라 19세기 중반에 유럽으로부터 받아들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명함을 명찰과 같은 뜻의 ‘데후다’(手札), ‘나후다’(名札)라고 불렀다.
과연 명함사용의 종주국은 이탈리아일까, 중국일까?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명함을 사용하게 됐을까? 우리 조상들은 명함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거 같지는 않고, 외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서양에서?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왔을까?
명함사용의 효시가 어느 나라이든, 한 가지 기이한 것은 오래 전부터 간혹 명함에 자신의 직함을 있는 대로 다 적어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해외 지인들 중에 어떤 이는 40여개의 직함을 한 장에 다 적지 못해 명함을 여러 장으로 길게 접어서 펼쳐 볼 수 있도록 만들어 그 많은 직함을 다 적어 다니는 걸 본 적이 있다. 이는 대체 어떤 심리에서 비롯된 것일까? 남들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이 치고 내실 있는 실력자는 보지 못했다. 명함의 기능과 그것을 주고받으면서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적, 문화적 이유가 궁금하다. 혹시 흥미를 느끼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이에 대해서 추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다.
새벽에 일어나 보게 된 나의 명함에도 직함이 세 개나 적혀 있는 걸 보고 애초부터 그게 다 군더더기인 걸 알면서 망설이다가도 결국 선거용 홍보를 의식해서 그렇게 만든 일이 생각난다. 평소 나답지 않은 덧없는 짓을 했다 싶어 일순 조금 서글프다는 감정이 일렁거렸다. 내게 묘한 자책감이 들게 만드는 바람에 갑자기 떠오르는 내가 아는 짧은 명함의 역사를 치매 예방 차원에서 적어봤다.
2018. 3. 8. 05:49
구파발 寓居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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