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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어원 이야기 : ‘Mandarin’과 ‘滿大人’

雲靜, 仰天 2017. 12. 9. 10:07

중국어 어원 이야기 : ‘Mandarin’과 ‘滿大人’

    

일찍이 나폴레옹이 예견한대로 21세기는 중국인의 세기가 될까? 목하 중국이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 전에 중국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이 시동을 건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이 싸움에서 중국이 미국에게 판정패 당할 것으로 보여도 중국의 G2 지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국력에 걸맞게 그들이 쓰고 있는 중국어도 사용인구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세계 5대 언어로 꼽히고 있다. 지구촌에 중국어 학습붐이 일어난 지는 오래됐다. 그래서 영어권 사람들 중엔 ‘Mandarin’을 공부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Mandarin이라면? 현대 중국표준어(Modern Standard Chinese)를 가리키는 영어단어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한위’(漢語)라고 칭하거나 ‘꾸어위’(國語)라고도 하고 中國語, 中國話라고도 한다. 그리고 수도 북경어를 표준어로 정해놓고 이를 普通話(푸통화, Pǔ tōng huà)라고 일컫고 있기도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를 만다린이라고 부르는 중국인은 영어를 아는 일부 지식인을 제외하곤 많지 않다.

 

하지만 ‘만다린’이라는 단어는 영어권에선 널리 쓰이고 있다. 영국인과 미국인들은 중국어가 가능하냐는 질문으로 “Can you speak Chinese?”라고도 하지만, “Can you speak Mandarin?”이라고 묻기도 한다. 여기서 원래는 Mandarin 뒤에 language가 붙여서 Mandarin language가 돼야 "만다린 말", "만다린의 말"을 뜻하는 온전한 의미가 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에서 ‘만다린’이라는 단어가 소개된 것은 역사가 짧지 않다.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인으로서 예수회 출신의 천재적인 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ci, 1552~1610)가 자신의 저서에서 중국에선 관료를 ‘Mandarin’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소개한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중국 현지에까지 들어가 천주교 포교에 진력했던 그는 서양인 중에 최초로 만다린을 유럽에 소개한 사람이다. (기독교의 동아시아 전파사를 논할 때 이 마테오리치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신부의 신분으로 중국에 많은 서양문물을 전해준 마테오 리치. 그는 특히 천문학, 지리학, 수학 등 중국근대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가 중국문화에 미친 영향의 폭을 봤을 때 충분이 소개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어서 나중에 소개해볼 생각이지만, 본업을 놔두고 시간을 많이 낼 수 있을진 모르겠다.

 

그런데 마테오리치가 관료라는 의미로 사용한 ‘만다린’이라는 단어가 왜 표준 중국어를 가리키는 말이 됐을까? 이 단어의 어원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있는 모양이다. 어떤 이는 ‘만다린’이 어떤 지방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혹시 귤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하고 의문을 갖는다. 또 ‘만다린’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도 있다.
 
이 추측은 포르투갈인들이 일찍부터 중국에 진출한 바 있기 때문에 그럴싸한 이유로 들린다. 즉 과거 포르투갈어에는 mandarin이란 단어는 없었지만 포르투갈어로 ‘명령하는 자’, ‘분부하는 자’, 즉 지위가 높은 사람을 뜻하는 ‘만다도르’(mandador)에서 온 게 아닐까 추측하는데, 이게 만다린이 됐을 거라는 것이다. 또 이 말은 포르투갈인들과 말레이인들 사이에서 생겨났을 수도 있다는 이도 있다.

 

14세기, 일찍부터 대서양으로 나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선 세계 최초로 해상을 통한 동서양의 회통을 불러일으킨 이른바 ‘대항해시대’를 연 것은 포르투갈인들이었다. 그들은 동유럽-서역-중국 등의 실크로드의 육로로 가지 않고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의 고아를 근거지로 삼았다가 나중엔 말래카, 필리핀을 거쳐 마카오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갔다.
 
중국에 당도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당시 영어가 가능한 친분 있는 말레이인을 통해서 중국 고위 관료들을 소개받았다. 말레이어로 ‘官’을 뜻하는 말은 멘테리(menteri)이다. 이 단어는 오늘날도 수상 급의 지도자라는 의미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말레이 사람들은 포르투갈인들에게 중국인 관료들을 가리키며 “이분들이 중국 관료(menteri)들입니다”라고 소개했을 것이고, 만다도르라는 단어를 갖고 있는 포르투갈인들이 쉽게 알아들었을 거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런데 말레이어 menteri는 말레이어 전래의 고유어가 아니라고 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지금은 사어가 돼 있는 고대 인도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의 ‘mantrin’에서 나왔다고 한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M. Monier-Williams, A Sanskrit-English Dictionary, Delhi, Motiral Banarsidass Publishers Private Limited, 2011)에서는 이 단어를 찾지 못했다.
 
어쨌든 산스크리트어란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어원이 되는 어족이고, 로마제국 시대 서부지역에서 사용되던 구어 형태의 통속라틴어(vulagar latin)를 기원으로 하여 발달한 포르투갈어의 어원도 근원적으로는 여기에 두고 있기 때문에 ‘멘테리’와 ‘만다도르’가 엇비슷해질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개한 이 모든 추측은 사실을 비켜간, 핵심을 겉도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만다린’이 중국에서 왜 관료를 가리키는 말인지 한 가지만 알면 바로 알 수 있는데, 그 한 가지를 몰랐기 때문에 포르투갈어, 말레이어, 심지어는 산스크리트어까지 동원된 것이다. 중국어 언어를 지칭하는 Mandarin은 청대 때에 처음 생겨난 단어로서 ‘滿大人’을 칭하던 발음인 ‘만따런’(Mandaren)에서 비롯됐다. 어떻게 해서 Mandaren이 중국어를 가리키는 뜻이 됐을까? 여기에는 지금부터 우리가 알게 될 역사적 연원이 존재한다.

 

17세기 초중엽, 오늘날 중국 동북지역에 살던 만주족이 중국 漢族 정권인 明나라를 치고 大淸帝國을 세웠다. 당시 만주족이 명나라를 정복하려던 시기 만주인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만 명(중국 역사학계에서는 약 17만 명을 웃돌았다는 연구결과가 있음)도 되지 않았다. 만주족은 최소 8,000만에서 최다 1억 명에 가까웠던 한족들을 제압한 뒤 명조를 무너뜨리고 수도를 북경에 둔 통치계급이 됐다. 그리고 웬만한 만주인들은 모두 관직을 가지게 됐다. 믿을 수 있는 건 동족뿐인 상황에서 만주인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대청제국을 세운 청 태조 누르하치(努爾哈赤). 그는 1605년(明 萬曆30년)에 오늘날 백두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그 이북 지역 일대에 정립하던 세 여진족(野人, 海西, 建州)을 통일시키고 스스로 後金의 왕이라고 자칭하고 내외에 政令, 布告 등을 발포하거나 각종 공무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몽골문자를 빌리거나 한자를 빌려서 사용했다. 그때까지 여진족(훗날 만주족)들은 자기들의 말은 있어도 문자는 없었기 때문에 보통 실생활에서 교류와 왕래에 굉장히 불편했다. 게다가 여진족 중에는 몽골어 문자를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서로 소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국의 문자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누루하치가 1599년 2월 어얼떠니(额尔德尼)와 이얼껀쥐에뤄(伊尔根觉罗·噶盖)에게 분부하여 몽골문자를 빌려서 만주문자(满文)를 만들었다. 각라의 의미에 대해선 이 블로그의 다른 글('愛新覺羅'는 신라계 후손이 신라를 생각해서 만든 말이라고?)을 참조하기 바람.

 
청대 이전에도 중국사회에 고대로부터 전통적으로 卿大夫를 大人이라고 일컫거나 혹은 사회적 지위가 있으며 덕이 있는 자를 대인이라고 높여 부르던 상황에서 피지배민족이 된 한족들은 대부분 중앙이든 지방 관아든 청조의 관직을 맡고 있던 만주인들을 높여서 ‘滿洲大人’이라고 불렀다. 즉 滿大人은 바로 사회적 지위가 몽골족 보다 더 못하게 된 한족이 만주인 관료들을 지칭하던 ‘滿洲族 大人’의 줄임말이다. 大人은 오늘날 중국어에선 어른의 뜻을 일차적 의미로 갖지만, 과거엔 그야말로 높은 사람, 즉 大人의 의미가 있었다.
 
 

만주족 관료, 즉 滿大人의 모습인데 사진은 청말 호남의 湘軍을 이끈 정치가이자 학자인 曾國藩. (그는 한족이었지만 청조에 출사해 만주족 변발과 복장을 했음) 당시 중국 관내로 들어와 청을 세운 만주족은 복장과 변발에서 한족과 한 눈에 구분이 됐다. 관료들도 모자를 벗으면 변발이 보인다. 특히 변발은 명나라 한족들에게 강요했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청조에 반발하는 자들을 쉽게 색출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였다. 즉 변발을 하지 않는 이는 청조를 인정하지 않는 걸로 간주됐다. 실제로 당시 명말의 사대부로서 초야에 묻혀 살면서 청조에 죽을 때까지 출사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지식인들(대표적으로 黃宗羲, 顧炎武, 王夫之)도 있었다. 유명한 어떤 이들은 만주족이 자신들의 변발을 한족에게 강요한 것을 두고 만주족의 문화를 받아들이라는 의미, 즉 문화적인 문제에서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본질이 아니고 본질은 한족을 원활하게 통치하고자 한 정치적인 문제였다.

 

유목과 수렵의 이동생활을 버리고 중국 관내에 들어와 정주하기 시작한 만주족은 자신들의 언어인 만주어 이외에 북방 중국어인 官話를 배웠다. 한족들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서였다. 이민족을 통치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官話란 한족들이 써오던 중국어 가운데 북방어를 가리킨다. 한족들이 쓴 중국어 관방표준말을 그 옛날엔 雅言이라고 불렀고, 明淸代에 들어와 官話라고 칭했다. 그러다가 1909년부터는 관화를 國語라고 부르다가 공산중국이 들어선 뒤인 1956년부터 普通話라고 하고, 대만에선 지금도 여전히 國語라고 부른다.
 
그 이전 옛날 전통시대 때부터 중국엔 지방마다 사투리가 워낙 많기도 하고 그 차이도 심해서 각자 출신지별 사투리를 쓰면 서로 소통이 어려웠다. 중국엔 만주어, 몽골어, 티베트어, 조선어 등등 수많은 종류의 소수민족 언어들을 제외하고 한족어만으로는 크게 북경어, 복건어, 상해어, 광동어, 客家語 등으로 나눈다. 물론 이외에도 호남, 귀주, 산동, 산서, 광서 등등 각지에 사투리가 없는 곳이 없다.

 

그런데 중국 각지의 소수민족 말은 엄연히 한족의 중국어와는 언어계통이 달라 그들의 국가만 없을 뿐 아예 다른 ‘외국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동일한 계통의 언어인 중국어임에도 이러한 방언들은 서로 달라 중국인들 사이에도 마치 외국어처럼 서로 잘 알아들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광동사람이 상해에 가면 상해사람들의 사투리는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나의 경우도 10여년을 대만에서 살면서 복건어를 약간 공부한 바 있어 조금은 알아듣고 말도 조금 하지만, 홍콩과 광동성에 가면 광동어는 전혀 못 알아듣는다. 마찬가지로 북경사람들도 대만인들이 쓰는 복건사투리, 광동어나 客家語를 못 알아듣는다. 客家語는 이름 그대로 客家人(Hakka)이 쓰고 있는 말로서 중국 방언의 하나로 분류된다. 이 말들을 들어보면 꼭 무슨 외국어를 듣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예컨대 대만의 경우 TV뉴스는 꼭 국어, 복건어, 객가어 순으로 보도되는데, 객가어를 들어보면 복건어와 유사한 발음이 상당히 많다. 객가어와 복건어는 한국의 한자어 발음과 유사하거나 같은 단어도 적지 않다. 예컨대 우리 한자음의 下車는 객가어에선 그대로 ‘하차’와 완전히 같고, 복건어에서 大學은 ‘다이학’, 學生은 ‘학싱’과 비슷하게 발음한다.
 
이유는 원어의 발음이나 의미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자주 변화하지만, 그 말이 다른 지역에 들어가 외래어가 됐을 경우는 그다지 잘 바뀌지 않고 고착화 된다는 언어발달사의 일반적인 현상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즉 하차, 다이학, 학싱 등은 고대에 한자가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기 시작한 漢代의 북방지역 한자음의 원형에서 크게 변화되지 않은 음가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漢代에는 下車, 大學, 學生이 각기 하차, 다이학, 학싱과 거의 유사하게 발음했을 것이다.

 

이러한 한자들이 한국이나 객가족이 널리 분포돼 있는 복건, 대만, 광동의 일부 지역, 사천 등지에 들어온 뒤로 이곳에서는 당시 발음대로 남아 있지만, 북경 등지의 북방지역에서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각기 샤쳐(下車), 따쉐(大學), 쉐셩(學生)으로 크게 변화한 것이다. 중국 聲韻學(Chinese phonology) 학자들 가운데 일부가 고대 한자음의 원형이나 그 변천을 알아내기 위해 한국의 한자음, 복건어, 객가어, 광동어 등의 방언을 연구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아무튼 중국의 방언이 복잡하기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같은 복건어 중에도 여러 종류의 사투리가 있는데, 크게 복건성 내 閩江을 경계로 남쪽의 閩南語와 북쪽의 閩北語로 나뉜다. 이외에도 호남성에는 동일한 계통의 호남어지만 사투리가 20여 종이나 있다. 나는 수년 전 상해, 항주, 소주 일대를 몇 번 여행한 적이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도 각기 다른 방언을 사용함에 따라 상해와 항주 및 소주는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임에도 말이 상이해서 이방인인 내가 들어도 다름을 분간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500여 종 이상의 복잡한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인도가 그렇듯이 중국에도 수많은 방언들로 인해 지방과 중앙, 지방과 지방 간에 서로 의사전달이 용이하지 않는 문제가 상존해왔다. 그래서 중국은 元明대 이래 북방어를 중국 표준어로 정해놓고 각 지방에서 중앙으로 올라오는 공문서에서나 관료들에게 이 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 말을 官話라고 불렀던 것이다. 소위 북방어에는 크게 北方官話, 西北官話, 西南官話, 下江官話 등 네 종류가 있었다. 이건 크게 분류한 것이고, 세분하면 北京官話, 東北官話, 冀魯官話, 膠遼官話, 江淮官話, 中原官話, 蘭銀官話, 西南官話 8종으로 나뉜다.

 

관화 중에 중국 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官話는 西南官話였고, 그 다음이 中原官話였다. 오늘날에는 중국인의 약 70%가 관화를 母語로 하고 있다. 지역분포로는 주로 秦嶺~淮河 이북의 대부분 지역, 江蘇의 대부분 지역, 安徽 중북부, 四川, 重慶, 雲南, 貴州, 湖北의 대부분 지역, 廣西 북부, 湖南의 서부와 북부, 江西의 沿江지역 등이다.

 

그런데 청대 때는 북경을 중심으로 한 북방지역 일대에 살던 만주인들이 사용한 북방관화가 표준어처럼 받아들여졌다. 북방관화가 바로 수도에 거주하는 만주족들이 사용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국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북방어를 중국의 표준어로 삼았다.
 
이는 마치 1539년 공문서 및 법률에 라틴어 대신 프랑스어 사용을 강제한 프랑스 황제 프랑수아 1세(François Ier, 1515~1547)의 이른바 빌레코트레(Ordonnance de Vilers-Cottrêts) 칙령에 의해 ‘모친의 말’로 불린 프랑스어가 다시 프랑스혁명으로 ‘국가의 말’(Langue Nationale)로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언어란 정치권력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중국내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은 전 중국을 손 안에 넣은 통치계급인 滿洲大人, 즉 만따런이 구사하던 중국어를 만다린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만다린 외에 일찍이 16세기부터 홍콩과 廣東省에 진출한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최초로 접한 광동어에 대해서는 영어로 ‘캔토니스’(Cantonese)라고 불렀다. ‘Canton’은 廣東을 ‘꽝뚱’이라고 발음하는 북경어와 달리 광동어 발음의 영국식 표기인데, 여기에 영어에서 사람이나 언어를 나타내는 형용사 어미인 ‘ese’를 붙인 것이다.

 

이제 뭔가 자연스레 의문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앞서 소개한, 마테오리치가 중국에서 관료를 ‘mandarin’이라고 부른다고 한 것은 ‘mandaren’일 것이며, 포르투갈어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만다도르(mandador)도 사실은 이 중국어 ‘만따런’이나 ‘만다린’에서 왔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소리다. 또 말레이어 단어들 중의 멘테리(menteri)도 말래이반도 등 동남아 일대로 대거 이민을 간 중국의 광동성이나 복건성 출신의 화교들이 쓰는 중국어의 영향을 받아 만따런에서 생겨난 말일 수도 있다.

 

계층을 구분할 때 경제적 수입은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고 문화적 소양을 중요시하는 프랑스나 영국에선 중산층을 규정할 때 그 기준의 하나로서 모국어 외에 외국어구사 능력도 들어가 있다. 외국어 하나쯤은 구사할 수 있어야 중산층의 교양인으로 보는 것이다. 외국어를 하나라도 구사하고 싶지만 나이가 들어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만다린’의 어원을 접하게 된 이참에 나이가 들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할 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외국어 공부를 해보는 게 좋겠다.

 

외국어를 많이 알면 알수록 세상은 훨씬 더 넓어진다. 정보는 물론, 세상과 인생을 보는 안목도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이 넓어지고 보는 안목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질 수 있다.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그 나라 언어에 묻어 있는 그 나라 민족의 역사, 사상, 정치, 종교, 문화의 지층만큼 세계가 더 넓어진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외국어 공부는 뇌세포가 죽어가는 늘그막에 두뇌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꼭 Mandarin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2017. 12. 6. 20:37
서울행 KTX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다린의 어원을 추측한 어떤 글을 보고

雲靜 바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