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남성 성 불구자를 왜 하필이면 ‘鼓子’라고 썼을까?

雲靜, 仰天 2017. 10. 24. 12:37

남성 성 불구자를 왜 하필이면 ‘鼓子’라고 썼을까?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사람을 두고 쓰는 말들 중에는 선천성 질환이나 불구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병신, 등신,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 절름발이, 앉은뱅이, 석녀(石女), 고자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 단어들은 모두 신체적으로 정상인이 아님을 비아냥거리거나 조롱하고 무시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경상도 사투리에는 당사자를 놀리는 말로 ‘찐따’, ‘절뚝배이’, ‘버버리’, ‘째보’, ‘빙신’ 등 비속어도 꽤 있다. 나도 어릴 적엔 상대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턱대고 그렇게 불렀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사람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인권침해를 막자는 취지에서 벌써 오래 전부터 법으로 이런 용어들의 사용을 엄하게 금지하고 있다. 한국에선 아직은 금기로 여기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멀지 않아 우리도 그런 추세로 나아갈 것이다.
 
요즘은 잘 쓰이고 있진 않지만, 이 단어들 가운데 ‘고자’라는 말은 한자 鼓子에서 온 말이다. 한 때 흔히 남성 성불구자를 고자라고 일컫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단어는 그대로 쓰이고 있다. 남성 성불구자를 가리키는 이 말의 어원은 무엇이며, 또 왜 하필이면 ‘북’을 가리키는 鼓子라고 썼을까? 일부 국어사전에는 고자라는 올림말에 한자 鼓子를 달아 놓은 경우도 더러 있다.
 

중국에서는 북을 鼓子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남성의 생식 기능이 없는 우리말의 고자도 한자로 鼓子라고 쓴다.

 
대체 고자가 북과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아침 출근길 전차 안에서 지체 부자유자를 보자 전날 밤에 이어 또 다시 그런 의문이 솟구쳤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이 글을 써서 지인들에게 보냈다. 아마도 “아침부터 난데없이 웬 고자 이야기?”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았을 테지만, 평소에 엉뚱한 짓을 하는 습이 또 다시 도진 모양이었다.
 
사실 자다가 불현듯 이 문제가 떠올라 너무 궁금한 나머지 벌떡 일어나서 몇몇 환관(宦官, eunuch, dick cut) 관련 서적들 및 한자자전『爾雅』등의 중국문헌들과 한국어의 어원을 밝힌 저서들을 참고해 나름대로 고증해봤다. ‘고증’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학문적으로 엄밀한 연구를 한 건 아니다. 몇몇 제한된 자료들을 참고해서 규명해본 것이어서 여타 관련 문헌들을 폭넓게 활용할 경우 내용이나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는 한시적인 결론일 뿐이다.
 

서태후(慈禧太后)를 시중 든 환관 李連英(1848~1911). 그는 원래 성명이 李進喜였는데, 連英이라는 이름은 서태후가 하사한 것이다. 환관 재직시 그는 서태후의 깊은 신뢰를 받았는데, 서태후가 심지어 환관 직급을 최고 4품으로 제한해놓은 황실법 (皇家祖制)까지 고쳐서 정2품의 總管太監으로 승진시켜서 모든 궁내 환관들을 통솔하게 했다. 서태후 집권 동안 總管太監으로 서태후를 53년 가까이 모셨다. 일설에는 서태후가 이연영과 통정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청말 최고의 권세를 누린 환관인데, 그가 긁어 모은 재산은 청조 정부의 몇년 예산에 맞먹었다. 서태후를 맨 처음으로 老佛爷(살아 있는 부처님)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아부도 잘 했지만, 宣统 원년인 1909년 서태후가 사망하자 장례 기간 동안 애도하는 "守孝" 100일을 채운 후 은퇴했다가 2년 뒤 63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나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중국어에도 한자 鼓子가 남성으로서 남자구실을 못한다는 뜻이 있다는 데 흥미로웠다. 현재 중국어에서 鼓子라는 단어는 고대와 현대를 통 털어 다섯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춘추시대 ‘鼓國’의 군주(國君)를 가리키고, 둘째는 옛날 군대에서 사용한 악기를 가리킨다. 셋째는 메꽃을 가리키고, 넷째는 宋代의 대표적인 문학 장르인 詞 중에 ‘蘭州鼓子’를 일컫는 경우다. 다섯째, 고대 중국어는 물론, 현대 중국어에서도 남성 생식기인 고환(睾丸)이 거세된 사람을 가리키는 ‘엄인’(閹人), 즉 ‘환관’의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 鼓子 외에 환관을 가리킨 말로는 ‘火者’(화자)라는 단어도 있다. 이 말은 현재 중국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첫째가 환관으로서 고환이 거세된 노복을 일컬을 때 쓴다. 둘째는 주방에서 불을 때는 사람을 가리킨다. 셋째는 높은 지위의 존귀한 자(顯貴), 부유한 자라는 뜻도 있으며, 이슬람교에서 교주의 후손(聖裔)과 학자에 대한 존칭이자 상층 귀족을 일컫는 말로서 신장(新疆),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火者는 원래 아랍어와 페르시아어(현재의 이란어)에서 온 말이었다. 즉 중국인들이 페르시아어에서 존귀한 자에 대한 존칭(honorific titles)으로 쓰이고 있는 ‘Khwaja’ 또는 ‘Khawaja’를 火者로 음역한 것이다. 이외에도 허쭈어(和卓), 허쟈(和加), 훠짜(霍札) 등으로도 음역된 경우도 있다. 중국인들이 존귀한 자를 불과 관련지어 번역한 것은 중동지역이 원래 고대로부터 불을 숭상했고, 불을 주재하는 자가 권력자였던 역사와 문화에 착안했지 않았을까 싶다. 넷째, 중국의 소수민족 중 주로 구이저우성(貴州省) 일대에 퍼져 있는 이족(彝族)과 포의족(布依族)에서는 ‘악기를 치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화자라는 말은 과거 조선에서도 사용됐다. 당시 화자란 조선 조정이 중국 명나라 황실의 차출 요청을 받아 12~18세 사이의 사내아이들 중에서 환관으로 만들고자 선발한 예비 환관을 이르던 말이었다. 이들은 불알을 까버린, 즉 남성의 생식기능이 인위적으로 거세되거나 아니면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랬거나 혹은 다른 사고로 성불구가 된 아이들이었다. 환관을 만들기 위한 잔혹스런 거세 방법은 나중에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어서 여기선 생략한다.
 
일설에 의하면, 성불구자를 지칭함에 '불 火자'를 쓴 까닭은 火자의 양 옆 두 점이 바로 고환을 상징하고, 이 점들이 人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곧 내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환관들은 정식 관직명인 ‘태감’(太監)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지, ‘화자’로 불리는 것은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화자’라고 불리면 자신이 즉각 사람(人)에서 고환을 상징하는 두 개의 점이 떨어져나간 고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환관제도는 중국에서 夏나라와 商나라 때부터 시작됐다는 게 중국 사학계의 정설이다. 先秦시대와 西漢시대에는 환관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생식기를 거세한 건 아니었다. 생식기를 거세한 자만을 환관으로 임용하기 시작한 것은 東漢시대(25~220년)부터였다. 내시(內侍)라고 불리기도 한 환관은 이 명칭 외에 태감, 내관(內官), 중관(中官), 중연(中涓), 중귀인(中貴人)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다. 환관 중의 ‘宦’자는 원래 별자리 명칭이다. 宦座의 네 별(四星)은 황제좌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이 글자를 사용해 황제 신변에서 일하는 사람임을 드러냈던 것이다. 明代에 와서는 나이가 많은 태감에 대해선 ‘빤빤’(伴伴)이라고 불렀다.
 
고려와 조선에도 환관, 즉 내시(내관)제도가 있었다. 최고 높은 직위인 종2품의 상선(尙膳)에서 종9품의 상원(尙苑)에 이르기까지 통상 약 140명 정도가 근무했다. 내시는 보통 어릴 적부터 궁궐로 차출돼 고환을 거세당하고 궁내의 내반원(內班院)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교재로 중국에서 환관들이 제왕들과 충신들을 보좌한 사례들을 모은 ‘대학연의’(大學演義)를 공부했다. 이 점이 환관제도가 중국에서 들어온 것임을 입증하는 사례다. 이에 근거하면, 鼓子라는 말 역시 중국에서 건너왔을 것이라고 단정해도 될 듯하다. 이 말이 환관을 가리키는 용어이고, 환관제도는 한국에서 보다 중국에서 먼저 시작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鼓子라는 말은 언제부터 한반도에 들어와서 남성 성불구자의 의미로 사용됐을까? 이 말이 사용된 최초 시기가 언제였는지는 현재로선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이미 고려시대의 문헌에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우리가 추측하는 것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사용된 게 아닐까 싶다. 즉 현재 국어학계에서 고려시대 언어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鷄林類事』(중국 宋代 孫穆이 지은 백과전서로서 간행연대 미상)에 ‘광대’, ‘풍류하는 사람’을 鼓子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앞에서 초든 ‘閹人’도 과거에는 광대를 낮춰 불렀던 말이었다.
 
조선 중기 1527년(중종 22년)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한자 학습서인『訓蒙字會』에도 宦자에 훈을 달아 ‘고쟈 宦’ 등의 표기가 있어 중세 한국어에서도 ‘고쟈’라는 말이 쓰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鼓子’란 옛날 순수 우리말을 한자음인 이두로 표기하던 삼국시대부터였거나 혹은 그게 아니었다면 그 뒤 사대부들의 전유물로서 한문을 쓰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취음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근래 어떤 이는 고자를 ‘鼓子’라고 표기하는 게 “북처럼 속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 고자가 한자로 ‘鼓子花’라고 불리는 메꽃에서 착상된 게 아닌가 하고 상상하는 견해도 있다. 즉 메꽃은 한자로 쓸 때 ‘鼓子花’라고 하고, 나팔꽃은 한자로 ‘견우화’(牽牛花) 혹은 ‘나팔화’(喇叭花)라고 하는데, 메꽃은 나팔꽃보다 작고 열매도 잘 맺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생식이 되지 않는 남성을 鼓子花의 고자에다 결부시켜 사용한 게 아닌가하고 추측하는 것이다.
 
위 발상은 어느 정도 근거가 없지 않다. 즉 중국 명대에 中醫로 이름을 날렸던 李時珍의『本草綱目』‘草七·旋花’에 메꽃을 가리켜 “그 꽃은 꽃잎 모양을 하지 않고, 마치 군대에서 (치고) 부는 북(鼓子) 같아서 메꽃, 고자라는 이름이 있다”(其花不作瓣狀, 如軍中所吹鼓子, 故有旋花, 鼓子之名)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 가운데 신체 기능의 부실함을 북(鼓子)에다 비유한 것이 이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여전히 왜 하필이면 북에다 비유했는지는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다.
 
이밖에도 ‘고자’의 어원에는 세 가지 다른 설이 더 있다. 하나는 고대 중국 秦나라 시대 호해(胡亥, BC 230~207년)를 내세워 진시황의 대를 잇게 한 조고(趙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조고는 중국 역사상 환관 출신으로 최초로 재상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당시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를 낳게 한 바 있는 환관 출신 ‘趙高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高子’라고 불렸다는데, 이는 당시 항간에 비아냥거림, 조롱, 폄훼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조고는 진시황이 죽고 난 뒤 권력을 농단하고 전횡하다가 진시황의 2세 胡亥에게 척살됐기 때문에 자식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자식이 있었다고 하니 사람들에게 얼마나 조롱거리가 됐겠는가? 그것이 나중에는 불구자라는 의미로 통용돼버린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것이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이 “조고의 자식놈”이라는 뜻으로 욕을 하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은 그럴만한 개연성이 없지 않다.
 
이런 추측은 고대 중국어에서 高가 gao 음가의 평성이고, 鼓는 gu 음가의 상성이었기에 음운학(phonology)적으로는 高子가 鼓子로 전화돼 불렸을 가능성을 완전히는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통용됐을 것이었는지는 공부가 얕은 나로선 알 수 없다. 그래서 현재로선 서두르지 말고 이 설이 옳을 것이라는 주장은 보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하나는 庫子(고자)에서 비롯됐을 거라는 주장이다. 庫子는 옛날 관아에서 물건을 맡아 지키는 창고지기를 가리켰다. 그런데 궁중에서 창고지기라고 하면 통상 불알 없는 환관이 맡았다. 그래서 庫子가 ‘고자’로 돼 버렸을 거라는 유추다. 이런 유추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고자질’은 내시와 관계된 말이라고 한다. 고자인 내시들이 임금에게 곧잘 이런저런 말들을 아뢰었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고자질’이라고 곱지 않게 본 것이다. 요컨대 고자질은 ‘고자가 하는 짓’이란 뜻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목수들이 기둥을 깎기 위해 먹물을 먹인 먹줄로 선을 그을 때 사용하는 먹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중세 한글에서 목수들이 사용하는 먹통은 ‘고즈(/ㅡ/는 아래아)’ 또는 ‘먹고즈(/ㅡ/는 아래아)’라 불렀고, 이 먹통이 ‘8’자 모양인데 이것이 곧 남성의 불알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자’란 말이 ‘먹고자’란 말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이는 겉모습이 불알같이 생겨 먹은 먹통인 먹고자가 자식을 낳을 리 있겠는가 하는 조롱 섞인 비유인 셈이다.
 
지금까지 성글게나마 고찰해본 바, 우리말의 고자는 중국어에서 유래한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다만 중국에서 어떤 연유로 ‘鼓子’가 생식기가 거세된 남성이라는 의미로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북처럼 속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렸을 수도 있다. 사실을 확인하고 규명하려면 관련 문헌들을 광범위하게 더 뒤져봐야 할 것이다.
 
별 쓸데없는 것에도 용을 쓰는 자에게는 이것도 풀어야 할 작은 숙제다. 요즘처럼 북핵이니, 북한의 도발이니, 미국의 북한 폭격이니 해서 시절이 하수상하고 중차대한 상황임에도 이러한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두고 한가한 호사가라는 빈정거림도 들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미세한 주제에 대해 작은 의문을 품지 못하면 거대 주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지 못하게 된다는 말로 스스로 위안하고 싶다.
 
2017. 6. 30. 07:50
구파발 寓居에서
雲靜
 
위 글은 2017년도 11월『형산수필』제33집에 실린 수필입니다.

World Korean News지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s://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