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개혁의 요체 : 군인이 존경 받는 사회가 되려면?
최근 국민의 요구가 분출되고 대통령까지 강력하게 주문하고 나선 가운데 지난 주 국방개혁과 군 개혁을 추진할 국방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군구조 및 전력체계 개선, 국방부의 운영체계 선진화, 지휘통제 개선, 전략개념 변화, 육해공 균형발전, 병영문화 개선 등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쌓이고 쌓였다.
하지만 이 과제들을 모두 관통하는 것이면서도 놓치기 쉬운 게 있다. 추상적이어서 바로 손에 잡히지 않는 과제인데, 군인이 존경을 받는 사회가 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군 개혁의 요체 중의 요체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군바리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통념이 살아 있는 한 군 개혁은 요원하다. 군인이 존경 받게 하려면 군인이 군인다워야 된다. 군인이 군인다워지려면 군인 개개인에게 군인답기를 바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국가차원에서 법률과 제도와 대우가 뒷받침 돼야 한다.
군인은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도덕성, 무인으로서의 투철한 국가관과 희생정신, 상무정신, 신사도와 호연지기 그리고 깊은 인문학적 소양이 겸비되도록 교육돼야 한다. 지나친 요구라고? 한 사람이 이 많은 덕목을 다 갖추긴 어렵다고? 그러면 군인이 될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이러한 덕목들을 한 몸에 다 갖추기 위해 평생을 바친 노력과 희생에 대해선 국가와 국민이 응분의 보상과 대우를 해줘야 한다.
이러한 덕목들이 함양돼 있지 않으니 문제가 된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분수를 망각하고, 권력과 힘 있는 유력자에게 빌붙고 줄서는 정치군인이 되고, 부하에게 비인간적으로 갑질하고, 여군에게 성희롱, 성추행 하는 사건이 빈발하는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4성 장군이 부창부수로 병사에게 갑질하는 군대는 우리 군뿐이 아닐까 싶다.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정신을 망각한 군인들이 다수가 돼 있는 이상, 재직시 군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아무리 우수하게 수행해도, 그래서 표창을 몇 개씩이나 받고, 심지어 간첩을 잡아 무공훈장을 받아도 상관에게 특산물을 갖다 바치고, 아부하며 비위를 잘 맞추는 이가 먼저 진급하게 되는 걸 피할 수 없다. 장성으로 진급한 뒤 퇴임 후엔 군에 초연하기는커녕 예비역 직능 단체에 들어가 정치시위에 나서거나 동원되고, 혹은 군 원로랍시고, 군 선배랍시고 뒤에서 현역의 후배들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게 다반사다. 그러니 주어진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상관과 지휘관의 눈치만 보거나 술수가 능한 부하들이 다수가 되는가하면 부하를 줄 세우는 상관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이러한 관행 혹은 악성적 군대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가시적인 분야에서 군 개혁을 상당 부분 이뤄내도 이내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손을 떼게 하려면 과연 어찌 하면 좋을까?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도 아니고, 미군이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지도 않지만, 적어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미국의 예에서 많은 걸 시사 받을 수 있는 게 있다.
인간관계 보다는 능력과 성실성과 노력을 더 우선시 하고 그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미국은 다른 한편으론 전반적으로 군인이 존경받는 사회다. 그곳엔 군인이 독립을 쟁취했으며, 목숨을 담보로 나라와 국익을 수호한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228년간 역사가 이어져 오는 동안 국가가 군인들에게 그만큼 예우를 해주는 배경이자 전통이다. 전국 어디를 가든 군인을 대하면 일반인들이 존중하고 대우해주는 문화가 보편적이다. 기내에서든, 역이나 공공장소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제복 입은 군인을 보고 거수경례를 보내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장교든 사병이든, 군인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민간 차원을 넘어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 해주는 게 미국이다. 그들에게는 국가가 무기 장비는 물론이고, 부식, 피복과 복지 면에서도 1등급으로 지급해준다. 예컨대 병사 한 사람이 갖춰야 할 개인의 무기 및 전투장비로 완전무장을 할 경우 우리 병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비용을 들인다.
미군 보병 병사를 기준으로 개인화기 등의 기본 장비를 포함해 야간투시경, 정밀사격조준경, 방탄조끼, 안경, 등 80여 가지를 갖춰주는데 1만 7472달러, 우리 돈으로 약 230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이 수치는 지난 2001~2008년의 평균치라서 최근엔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
또 이라크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에게는 전방을 레이즈로 투시해 사물을 감지케 해주는 최첨단의 특수장비가 첨가돼 약 1억원을 상회한다는 설도 있다. 이에 비해 한국군 병사는 138만원이 든다. 이는 모든 장비를 최신식으로 갖췄을 경우다. 이마저도 모든 병사들에게 갖춰준 게 아니고 전방부대와 특수부대의 일부 병사들에게만 지급돼 있다.
미군과 한국군 병사의 무기 장비가 천양지차로 비교되는 것은 국방예산 등의 경제적인 요소 외에 다른 무형의 이유가 내재돼 있다. 미군은 한 마디로 병사들을 전투원(combatant)으로서의 전략자산으로 여기는 만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 하기 때문이다. 모병제에 의한 직업군인이긴 해도 군에 보낸 부모형제들이 안심하는 이유다. 우리처럼 일부 부도덕한 군인들이 자신들의 비호를 받는 방산업체와 짜고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공기가 통하는 방독면, 쉽게 헤지는 중국산 짝퉁 베레모나 허술한 방탄복과 군화 따위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용중 문제가 빈발하는 개인 화기는 또 어떤가? 미국에도 쇠고기는 등급이 있는데, 군인들은 장교들뿐만 아니라 병사들에게도 1등급을 먹게 한다.
고위 장교들과 장군은 어떤가? 미군은 영관급만 돼도 스스로를 영예롭게 생각한다. 설령 장군으로 진급하지 못해도 아쉬워 할 수는 있어도 다른 장군 진급자들에 대해서 불만이나 시기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신상필벌과 인사가 엄격하고 비교적 공정하다는 증거다. 장군이든, 영관급 장교이든 모두 국가로부터 상당한 혜택과 대우를 받고 있거나, 받았다고 생각해 군인임을, 군인이었음을 명예롭게 여긴다. 그래서 성실하게 복무하고 전역한 후에도, 예비역 장교로서 가슴 뿌듯하게 살면서 지역사회나 시민들에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 또 가족은 물론, 일반인들도 그들에게 최고의 존경스런 표정으로 대한다.
미국에서는 퇴역 군인들에게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지 않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연금으로 보상이 되고 있다. 장군으로 퇴역한 이들에게는 정부가 연금 외에도 희망자에 한해 일정 기간 동안 군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납품하고자 하는 제품의 품질이 군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통과하면 일반 군납업체 보다 대략 10~15% 정도 높은 가격으로 매입해 주기도 한다. 이 사업을 주어진 기간만큼만 하게 되면 돈을 상당히 만질 수 있다. 하지만 예비역 장군들 가운데는 이러한 합법적인 군납사업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경제적 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보고 명예로 먹고 살며, 또 연금만으로도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비역 장군들은 우리처럼 정치적 기회를 준다고 해서 아무 당이나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이 군에서 겪은 경험과 다양한 노하우는 어떻게 살리느냐고? 이 점에서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행정부나 의회에서 장군 혹은 고위급 장교들의 군 경험이나 노하우가 필요할 때는 각 분야의 뛰어난 예비역 장교들에게 상당한 대우로 용역을 맡겨 보고서를 쓰게 하거나 초빙해서 그들의 자문이나 강연을 경청한다. 미국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 해주는 곳이니만큼 예비역 장교들과 장군들이 어떻게 자신의, 나아가 전체 군인의 명예와 긍지에 먹칠하는 행위를 하려고 하겠는가?
창군 이래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국방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우리 군의 고질적인 구습과 비합리성을 도려내고 반듯한 강군으로 재탄생 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지금, 국방개혁 추진자들이나 국방과 군 개혁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이 유념해야 할 내용이다. 군 개혁이 반드시 성공되기를 빈다.
2017. 9. 18
雲靜
위 글은 2017년 9월 19일자『오마이뉴스』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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