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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북한 사람들의 일상 : 북한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자녀교육

雲靜, 仰天 2026. 8. 12. 13:32

당신이 몰랐던 북한 사람들의 일상 : 북한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자녀교육


사랑보다 때로는 조건이 앞서는 결혼

법적으로 북한 주민은 자유의사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다. 북한 가족법은 남녀가 자유롭게 혼인할 수 있다는 원칙을 규정하며, 법정 혼인 가능 연령은 남자 18세, 여자 17세로 되어 있다. 그러나 법정 혼인연령과 실제 결혼연령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가령 2008년 북한 인구센서스를 토대로 계산한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이 약 29.0세, 여성이 약 25.5세였다. 더욱이 북한이 출산억제정책을 시행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는 국가가 아예 남자 30세, 여자 27세 이상의 만혼을 권장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군 복무와 직장생활, 사회활동에 충실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학력과 직업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진출한 여성 가운데는 24~25세쯤이면 이미 결혼한 경우가 많았던 반면,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군 복무와 입당, 직장배치 문제 등으로 결혼이 늦어져 최근에는 30대 초반에 결혼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결국 북한에서도 ‘몇 살에 결혼한다’고 하나의 연령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시대와 지역, 학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결혼 뒤에도 여전히 부담이 큰 여성

북한 역시 중국처럼 공식적으로 남녀평등을 강조해왔다. 지난 세기 공산혁명의 과정에서 공산당은 봉건적 가족제도와 여성 억압을 타파한다는 명분 아래 남녀평등을 상당히 중요한 사회적 의제이자 정치적 구호로 내세웠다. 중국공산당이 여성해방을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한 과제로 제시했듯이 북한도 해방 직후부터 여성의 법적 평등과 사회적 노동 참여를 강조하였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직장에 나가 노동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 여성정책의 기본 원칙이었다.

그러나 법률과 정치적 구호로서의 남녀평등이 곧 가정 안에서의 실질적인 평등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의 가정생활에는 조선시대 이래의 가부장적 문화가 상당 부분 남아 있었고, 결혼한 여성에게는 직장생활뿐 아니라 가사와 자녀양육까지 동시에 요구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게 되면서 국가 배급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자 가족경제의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국영 직장에 소속되어 있던 남편은 매일 직장에 나가야 했지만 제대로 된 임금이나 배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공식 직장의 통제에서 벗어나 장마당에 나가 물건을 사고팔거나 음식장사, 운송·중개 등 각종 비공식 경제활동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겉으로는 남자가 여전히 ‘세대주’였지만 실제 가족의 먹고사는 문제를 여성이 책임지는 집이 적지 않게 되었다. 북한 연구자들과 탈북민 증언에서는 이를 가리켜 국가경제가 약화된 자리를 여성의 시장활동이 메웠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평양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겠지만, 여기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평양 가정의 몇 %를 여성이 부양한다’고 단정할 만한 신뢰성 높은 통계는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 북한이 지역별·성별 가구소득이나 주된 생계부양자에 관한 통계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하지 않은 수치를 제시하기보다는 “평양을 포함한 도시지역에서도 여성의 장사와 시장활동이 가족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북한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은 여러 탈북민의 증언과 북한 연구를 통해 확인되지만, 평양 가정의 몇 퍼센트를 여성이 실제로 먹여 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통계는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 북한 당국이 지역별·성별 가구소득이나 주된 생계부양자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연구원을 비롯한 국내 북한연구기관의 조사에서도 1990년대 이후 여성의 시장활동과 가족부양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사실은 반복해서 나타나지만, 평양에 한정한 대표성 있는 비율까지 제시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근거가 불분명한 수치를 억지로 제시하기보다는 평양을 포함한 북한의 도시지역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가족의 생계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여성이 집안의 실질적인 경제를 책임지게 되면서 부부관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돈을 벌어오는 여성의 발언권이 이전보다 커졌으며, 배우자 선택과 이혼을 포함한 가정 내 의사결정에서도 여성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탈북민 증언이 적지 않다. 사회주의가 법률과 정치적 구호를 통해 이루지 못한 여성의 가정 내 지위 변화를 역설적으로 시장화가 어느 정도 가져온 셈이다.

자녀교육은 국가의 몫인가? 부모의 몫인가?

북한 자녀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데 있다.

북한은 현재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 자체는 법적으로 무상이다. 북한 당국은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에서도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로 선전해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학교 운영비, 교실 보수, 난방용 연료, 학용품과 각종 물품 부담 등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되는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제도상 ‘무상교육’과 주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는 무상교육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이 문제는 중국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더욱 흥미롭다. 중국 역시 1949년 혁명 이후 교육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진다는 사회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가 확대되고 지방정부와 학교의 재정부담이 커지면서 1980~90년대에는 농촌을 중심으로 학비와 각종 잡비가 가계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이 점에서는 북한에서 경제난 이후 교육비 부담이 가정으로 이전된 현상과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그 뒤의 길은 상당히 달랐다. 중국은 경제성장과 국가재정의 확대를 배경으로 2006년 서부 농촌지역에서 의무교육 단계의 학비를 폐지하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농촌 의무교육에 대한 공공재정 지원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였다. 즉 시장화 초기에 가정으로 넘어갔던 교육비 부담의 상당 부분을 경제성장 이후 국가가 다시 떠맡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북한은 ‘국가가 무상으로 교육을 책임진다’는 사회주의적 원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능력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함으로써 실제 교육비용의 일부를 주민들이 부담하는 구조가 지속되어 왔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출발했지만 중국은 경제성장을 통해 국가의 교육재정 능력을 확대해간 반면, 북한에서는 국가재정의 취약성이 오히려 가계의 부담을 키웠다는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가 교육을 국가가 책임진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무상교육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치적 선언만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경제력과 재정능력이다.

2026. 8. 12. 13:31.
3호선 대화행 전철 안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