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짧은 글, 긴 생각

똘레랑스

雲靜, 仰天 2014. 7. 11. 07:12

똘레랑스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 속에 비친 당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부분이 아닌 것이 우리를 신경 쓰이게 하지는 않거든요."-헤르만 헷세, 데미안에서

똘레랑스는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하는 삶의 태도다. 그 다름은 반인륜적, 반사회적이 아닌 한 수용하거나, 아니면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인정할 수는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똘레랑스가 자신의 내면에서 마음으로 수긍되고 몸으로 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타인에 대한 친절이니, 배려니, 사랑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자칫 맆서비스로 오해 받을 수 있다. 특히 마음의 눈으로 사는 이들에게 그건 우리사회에 넘쳐나는 처세술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잘 난 사람에 대해선 눈 뜨고 못 보는 반지성적 非똘레랑스가 우리사회의 질적 고양을 가로 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그것은 친목계, 직장동료들, 동네 반상회, 동기회 수준의 작은 커뮤니티에서부터 학자, 교수, 정치인과 국가 최고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국가 구성원들의 내면에 깊이 침전되고 만연된, 그러나 당사자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중증의 질병이다. 우리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건 처세술이 배제된 진정한 의미의 똘레랑스다.

 

2014. 7. 9

雲靜

 

추상적인 관용의 의미를 구상화하는데 상당히 성공한 작품으로 보인다. 타이완 국립 사범대학 林俊良 교수의 작품
관용은 유약한 게 아니고, 위축되는 것도 아니고, 억압도 아니다. 일종의 인욕의 대반야와 같은 큰 지혜의 경계인 것이 관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