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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오늘의 역사

雲靜, 仰天 2025. 10. 16. 10:18

10월 16일 오늘의 역사


10월 16일 오늘도 1979년 오늘 부마민주항쟁이 개시된 것에서부터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국내외에서 일어나 인류 역사에 미친 중요한 일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1813년 오늘 제1차 세계대전 이전 가장 큰 전투였던 라이프치히전투(10. 16~10.19)가 시작된 날인데, 50만여 명이 참전한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함에 따라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된 전쟁으로 유명하다.

역사학의 주요 분야인 사회사의 한 분야이기도 한 의학사에서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은 두 가지 사건이 있은 날인데, 첫째가 1846년 오늘 의료역사상 최초로 수술시 수술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마취가 시행된 날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20세의 환자를 마취시켜 종양제거수술을 한 것이다. 마취술을 처음 대중화시킨 미국의 치과의사 모턴이 외과의사 워렌과 함께 당시까지 미국인 주당들 사이에 취하기 위한 물질로 사용해서 ‘웃음가스’라 불린 아산화질소와 에테르를 수술과 치료에 이용했다고 한다. 둘째는 1916년 오늘 여성이 피임할 권리를 주장한 간호사 마거릿 생어(당시 37세), 미국 최초로 뉴욕에 “산아제한클리닉”을 개설한 날이다.

또 10월 16일 오늘은 '세계식량의 날'인데 1945년 오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창설된 것을 기념한 것이다. FAO는 창설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전파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근대 이래 식량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도 강대국들의 편중 소유 및 소비로 인해  전세계에 굶주리는 인구가 8억 3000만 명으로 10년만에 2억 명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WFP, 즉 세계식량계획의 ‘2022년 세계식량안보와 영양현황 보고서') 요컨대 전세계 약 75억 인구 중 약 6~7% 정도가 매일 굶고 산다는 것이다. FAO에 따르면, 1세 미만 어린이가 7초에 한 명씩 굶어죽고, 비타민A 부족으로 6분에 한 명씩 실명되고 있다고 하니 오늘 우리가 이렇게 탈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가? 굶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오늘도 굶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감사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982년 10월 16일 오늘 우룽껀(吳榮根, 당시 25세)이라는 중공군 공군 대위가 MiG-19 전투기를 몰고 한국의 성남공항에 도착한 뒤, 중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0월 31일 대만으로 보내졌다.

귀순 후 국민당 공군 군복을 입은 우룽껀
거사 이후 대만 거주 시절의 우룽껀. 요즘 말로 상당한 꽃미남이다.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는 포상으로 귀순해온 우룽껀에게 황금 5,000냥을 제공했는데, 포상금보다는 그가 자유 진영으로 넘어오고 싶어한 이유가 가히 낭만적이랄 수 있다. 같은 분단 국가로서 유사한 사건이 없지 않았던 우리에겐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다. “라디오 전파를 통해 대만 출신 유명 가수 덩리쥔(鄧麗郡)의 노래를 들었으며 덩리쥔을 만나고 싶다.” 당시 중국에는 두 사람의 등씨 성을 가진 이가 중국을 통치한다는 말이 있었다. 낮에는 등소평이 중국을 통치하고, 밤에는 등려군이 중국을 통치한다 했을 정도로 등려군의 인기는 해협 양안의 국경을 넘어 폭발적이었으니 목숨을 걸고 탈출할 만도 했겠다!

https://suhbeing.tistory.com/m/687

그 뒤로도 수많은 제2, 제3의 우룽건들이 죽의 장막인 대륙을 탈출해 자유중국으로 건너갔다(현재는 미국 거주). 대만해협 양안의 중국과 대만 간 화해와 교류의 물꼬가 터진 1987년 11월의 중국판 '이산가족방문'('探親')은 그 이전 수 없이 일어난 이 같은 사건들의 영향이 작지 않았다. 대중가요 한 곡이, 대중 가수 한 명이 역사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실증적으로 알게 해주는 사건이다. 우리도 대북 방송을 할 바에는 다른 정치적인, 군사적인 얘기보다 한국의 대중가요를 틀어 주는게 좋지 않을까?

등려군 팬인 나도 그를 찾아가본 바 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 전 일이다. 세월이 우사인 볼트만큼 빠르다!
https://suhbeing.tistory.com/m/1090


1950년 10월 16일 오늘 중공군 선견대(先遣隊)가 극비리에 압록강을 넘어 평안남도 운천, 대유동 등지에서 조사 활동을 벌였다. 그 뒤 3일 뒤인 10월 19일 중공군 25만 748명이 몰래 북한에 들어와 매복해있다가 10월 25일 통일의 꿈에 부풀어 북진하던 한국군에게 타격을 입혔다. 지금까지 한국전쟁 학계에서는 중공군의 최초 한반도 파병이 1950년 10월 19일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병력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시기가 우선이라면 중공군 전투병이 처음 북한 땅에 들어온 건 주은래의 지시로 선발대(先遣隊) 5명이 북한으로 들어와 약 1개월 간 향후 최전선이 될 북한 북부지역의 지형을 조사하기 시작한 9월 17일이었고, 그 뒤 10월 16일 오후 6시 경 중공군 제42군단의 선두 정찰부대 및 제124사단 예하 제370연대 병력이 집안철교를 건너 북한 영내(만포)로 진입한 10월 16일이었다. 요컨대 중국은 이미 10월 19일 이전에 북한에 전투병력을 잠입시켰던 것이다. (서상문 저,『毛澤東과 6․25전쟁 : 파병결정과정과 개입동기』, 국방부군 사편찬연구소, 2006년 ; 서상문 저,『6․25전쟁 : 공산진영의 전쟁지도와 전투수행』,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6년, 상권) 그 후 중공군이 대거 반격을 가해 아군이 “1.4후퇴”를 강요당한 바 있고 1951년 10월 16일 오늘, 무장 공비들이 남원에서 기관차를 뒤집고 양민 200여 명을 납치하는 씩으로 공산 세력이 북과 남에서 공세를 펴거나 도발을 했어도 살아남은 대한민국이었다.

그러던 중국이 1964년 오늘 중국 첫 원폭실험을 성공시켰고, 2022년 오늘, 중공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시진핑이 당강을 고쳐 국가 주석직의 3연임을 확정지은 날이기도 하다. 그래봤자 머지 않아(빠르면 이달 열리는 중공 4중 전회에서도 결정될 수도 있음!) 매스컴에서 그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요즘 중국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이브리드전, 초한전을 구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해서 우리를 침략한 적이자 공산주의국가라는 걸 잊고 거 무슨 시장이 크다는 둥 하면서 너무 긴장감이 없이 살고 있다. 민주당은 과거 중공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통일을 막았는지 제대로 알기나 알고 중공과 덥썩 손을 잡고 그들을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각종 특혜까지 주는지 모르겠다. 자기들이 국가권력을 잡기 위해 중공과 손을 잡은 것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중공과 공산당의 술수가 어떤지 잘 모르는 그들이 중국을 이용만 하고 물러나게 할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 되고 우려스럽다.

2025. 10. 16. 10:19.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