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反面教師)'의 출처와 의미의 변용
“반면교사”란 말이 있다. 한국에선 다른 사람의 언행이나 사물이 잘못된 것을 보고 교훈이나 가르침을 얻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한자어인데 反面教師라고 쓴다. 결론을 미리 당겨서 말하면 원래는 이 말의 의미가 조금 달랐다. 이 말을 최초로 한 사람이 누가, 왜 사용했는지 맥락을 알면 의미가 오늘날의 뜻과 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가, 어떻게 다르게 사용했는지 지금부터 실상에 다가가보자.
우선 이 단어는 어디에서 비롯된 말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중국어에서 온 것일까? 한국어일까? 아니면 서양언어에서 번역된 말일까? 일설에는 이 말을 최초로 한 사람은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또 사실이면 마오쩌둥은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을 사용했을까?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먼저 한자문화권에선 이 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이 말이 혹시 서양언어에서 번역된 게 아닌지 점검해본 후에 정말 마오쩌둥이 최초로 했다는 게 맞는지 확인해보고나서 논의를 이어가자.
반면교사라는 말은 한자문화권의 중국, 대만, 한국, 일본과 베트남에서 공히 타산지석이라는 말과 엇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중국과 대만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아래처럼!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경고나 교육적 작용을 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말하며, 통상 교육 분야에서 교사의 도덕성과 모범을 잃은 자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가리킨다.” (指通过自身错误行为或负面形象,从反面起到警示或教育作用的个体或群体,常见于教育领域对师德失范者的代称。)
한국에선 사전에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르는 말”로 뜻풀이 해놓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략 아래와 같은 의미다.
“배워서는 안 되는 나쁜 본보기”나 “사람, 사물 등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말한다.
일본에선 친절하게도 오용에 주의하라는 말까지 덧붙여져 있다. “'반면교사'란 '나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반성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용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反面教師」とは「悪いことをしている人を見て反省する」ことです。誤用をするケースもあるため、注意が必要です。)

한국어처럼 단어들이 한자에 많은 어원을 두고 있는 베트남어에서는 반면교사를 “바이 혹 킨 응 히엠”(bài học kinh nghiệm)이라고 하는데 잘못을 통하여 교훈을 얻게 하는 대상을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 역시 네 음절 중 첫음절만 순수 베트남어이고 그 뒤의 세 음절이 모두 한자어에서 온 것이어서 아마도 중국어의 반면교사라는 한자어의 개념이 베트남으로 들어가서 쓰이고 있지 않는가 싶다.
예를 들어 바이혹 Bài học 중 Bài는 영어 unit에 해당되는 것으로 단원을 뜻하는 순수 베트남어이지만, Học은 한자 學에서 왔다. 또 킨응히엠 Kinh nghiệm은 한자 經驗을 베트남어로 읽은 음(經Kinh, 驗Nghiệm)이다. 이 둘이 합쳐진 형태인 Bài học kinh nghiệm이 반면교사라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문서, 방송, 신문 등 모든 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사고나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원인을 되돌아보고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면서 잘못을 반복하지 않아야 함을 가르치는 의미로 사용한다.
한자문화권 나라들의 언어 외에 서구의 주요 언어들에서는 이 단어가 없다. 예컨대 영어에는 이 말에 딱 맞게 떨어지는 단어가 없고 단지 가르침이나 교훈을 뜻하는 lesson이 이에 해당되는 단어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또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와 러시아어에서도 한 단어로 된 반면교사라는 말은 없다. 단어 하나씩 따지면 '사람 혹은 사물' '그리고' '목표물'이라는 뜻일 뿐인 '첼라벡 일리 프리드미예뜨'(Человек или предмет)가 말해주듯이 러시아어도 불어(Objet d'une leçon qui donne un enseignement à travers une erreur), 스페인어(Error del que se aprende)처럼 한 단어가 아니라 반면교사라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반면교사라는 뜻과 딱 들어맞는 게 아니고 전체적으로 뜻이 비슷할 뿐이다.
따라서 일단 반면교사라는 말은 주요 서양언어에서 중국어, 베트남어, 일본어나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9할 이상 든다. 어쩌면 아랍어나 여타 언어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일단 현재로선 잠정적으로 한자 이외의 언어에서 건너온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 한국인이 만들어서 사용하던 중 이 말이 중국이나 일본 등의 한자 문화권으로 이입해간 게 아닐까라고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다. 그래서 16세기 문헌인『퇴계집』, 『순암집』, 『동춘당집』등등의 옛날 조선시대 문인들의 문집 그리고 20세기 이전의『승정원일기』와 함께『조선왕조실록』까지 모두 확인해 봤다. 그 결과 '반면교사'란 단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실에서 반면교사라는 말은 19세기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만든 바 없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이 만들었다면 20세기에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반면교사란 말의 출처는 중국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실제로 이 말의 유래는 마오쩌둥이 한 말이었다는 설이 있다. 정말 이 말을 마오쩌둥이 최초로 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그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마오가 한 말이라고 소개돼 있다. 또한 위에서 점검해본 사실 확인 내용들을 종합하면 어쩌면 마오쩌둥이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영어를 비롯한 서구 주요 언어들이 단어 없이 설명한 것을 마오쩌둥이 反面教師라는 말을 만들어 번역을 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마오는 외국어라곤 한 가지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배운답시고 개인 영어교사를 불러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젊은 미모의 그 여교사에게 흑심을 품고 있어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아리송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중국 문화대혁명 이전 마오쩌둥이 소설 수호지에 대해 평가하면서 사용했고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마오의 情婦이자 機要비서로서 마오쩌둥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건사했던 장위펑(張玉鳳, 1945~)이 마오에게서 들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내가 1964년에 우한(武漢)에서 수호전을 읽고 있을 때 주석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송강은 투항파이고 수정주의자이다. 투항이란 바로 항복하고 황제를 위해 일하겠다는 뜻이지. 반면교사가 되려면 사람들에게 모두 투항파를 알게 해야 한다.”

마오가 1964년에 이 말을 했다면 그 이전에 중국이나 여타 한자문화권에 이 말이 있었는지 알아보면 정확하게 최초 이 단어의 지적 소유권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나는 그렇게 따져볼 시간도 없고 처지도 아니다. 단지 나는 당시 마오쩌둥이 왜 이 말을 사용했는지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위에서 든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마오쩌둥은 자신이 문혁을 일으키기 전에 반면교사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 마오가 문혁을 발동시킨 후에는 인민들(특히 홍위병들)이 마오 자신에게 반기를 든 리우샤오치(劉少奇, 1898~1969) 국가 주석에게 항복하는 투항파, 수정주의자가 돼선 안 된다는 의미에서 투항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면서 반면 교사는 리우샤오치라는 것으로 사용됐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마오쩌둥은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라고 한 것이다. 요컨대 마오쩌둥이 원래 사용한 반면교사의 뜻은 오늘 날 한국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와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지금도 마오가 의도한 뜻대로 사용되고 있고, 대만, 베트남과 일본에서도 중국과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한국만이 다르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을 일본, 중국 측과 소통할 때는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이런 영양가 없는 雜考에서 결론이랄 것도 없지만 글의 매듭은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반면교사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회자되던 말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에선 이제 도덕과 윤리를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공산당이 들어서게 되면서 도덕과 윤리가 완전히 땅에 떨어진 사회가 됐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그래도 인륜과 도덕률이 조금은 지켜져 왔지만 이젠 한국에서도 착하고 바르게 살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늘 권력에 이용만 당하면서 밑바닥 삶을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됐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인데 윗물이 다 썩었는데 그 아랫물은 윗물이 더럽히는 대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출세하고 이름을 날리거나 재산을 긁어 모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싶으면 반면교사로 살아선 안 된다. 온갖 추잡한 짓은 다 하고서도 능청스럽게 하지 않았다고 할뿐만 아니라 마음껏 범죄를 저질러야 가능해진다. 그런 걸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잘하면 잘할수록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사물과 사건의 한 면밖에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국민이 많아서 운이 좋으면 대통령까지도 할 수 있다.
누구 말대로 반면교사가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가 진면교사 할까 두려운 세상이다. 정말 자녀 키우기에 혼란스런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후세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할까?
2025. 6. 26. 09:08.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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