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장군(예)과 전두환의 관계
박경석 장군(예비역 육군 준장)이 밝힌 그와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관계를 소개한다. 박경석 장군이 쓴 이 글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길지 않은 이 글이 두 사람간의 개인적 관계 뿐만 아니라 전두환의 군생활 행적의 일면까지를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본고 맨 아래에 박 장군의 글을 첨부해놨다.
박경석과 전두환 두 사람은 1964년 진해 육군대학 정규과정 클래스메이트로 만나 전자가 예편하고 후자가 대통령이 된 뒤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거의 20여년 간 지속됐다. 박 장군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12.12군사반란 후,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이 1980년 9월 제11대 대통령이 되고 1988년 2월 제12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기 전 어느 날 전두환이 신극범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박 장군에게 보내서 박 장군이 전두환의 의중에 따르지 않고 사절했을 때 종지부를 찍었다. 신극범 당시 한양대학 교수가 전두환에게 발탁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한 게 1985년부터 1988년까지였으니 이 기간 중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아래 박 장군의 글에는 자신이 “1981년 7월 31일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들에 의해 개정된 인사법에 따라 1년 단축한 만기 육군준장 7년 정년으로 군복을 벗었다.” 그 후 박 장군이 쓴『오성장군 김홍일』이라는 전기적 소설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청와대 신극범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전두환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면서 “무엇이든 원하는 직위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정중히 “창작에 전념하겠다”면서 “전두환의 제의를 거부했다. 그 거래가 전두환과 나의 마지막 관계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위 내용에 근거하면, 육군대학 재학 시절부터, 그리고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박경석의 재간을 인지하고 시기한 전두환이 능력이 출중하면서도 야인으로 지내던 박경석 장군에게 뭔가 중요한 일을 맡기려고 그를 회유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박경석은 이를 뿌리친 것이다. 그 시기는 대략 『오성장군 김홍일』이 출간된 1984년 이후였을 것이다.
암튼 위 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박 장군은 전두환 정권에서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하고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을 미련 없이 고사한 것이다. 이것은 불의한 사람과는 같이 할 수 없다는 신념이 강한 타고난 그의 곧은 성품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박 장군의 형제들이 하나 같이 성품이 곧았던 것에서 입증될 수 있다. 박경석 장군은 3형제의 막내였는데, 큰 형은 검사로 임용된 뒤 판사로 전환해서 공주법원지원장을 끝으로 퇴임한 박규석 판사, 작은 형은 준장으로 예편한 육사 5기 출신의 박영석 장군이다. (2024년 9월 11일 13:22분 박경석 장군과의 통화에서 그의 언급)
박경석 장군의 설명으로는 큰 형도 더 높은 직위까지 진급할 수 있었지만 성품이 곧아서 진급을 하기 위해 불의에 야합하는 타협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했고, 평소 바른 소리를 많이 하던 둘째 형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 대통령 비서실장과 갈등이 있어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고 예편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 두 분은 다 고인이 되었고 막내 박경석 장군만 남아 있지만, 3형제가 모두 선친으로부터 강직하고 곧은 성품을 물려 받은 것 같다. 박경석 장군이 젊은 시절부터 아흔이 다 된 지금까지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조국, 정의, 진리'라는 이 집안의 가훈도 선대의 가르침이었다고 하는데 이 사실이 이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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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12. 07:06
고향 포항 집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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