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경주남산 산행 :
암벽 소나무와 김시습의 시
경주남산 소나무
암벽 틈새로 뻗은 한 떨기 소나무
風雨雪霜에 바툰 자태가
신라 천년의 기상을 품었네.
묵언의 간구로 틀어 앉은 가부좌
碧空에 자지러지는 동자승 미소
霜風高節이 저만치 홀로 높구나.
2021. 9. 23. 13:5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위 졸시는 멀대가 친구 東浪이 경주 남산을 산행하면서 찍어 보내준 아래 사진을 보고 즉흥적으로 읊은 것이다. 소나무 한 그루가 내게는 자태 곱게 앉아 있는 '한 떨기' 작약 같기도 하고, 좌선에 들어 삼매에 든 화랑도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또한 보내온 사진들 중에는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시 한 편이 적혀 있는 안내판도 있다. 덕분에 매월당의 시를 재미있게 감상했다. 아래에 본격적인 해설은 아니고 간단한 언급만 해놨다.
김삿갓 김병연(1807~1863)과 함께 조선 최고의 양대 풍자시인 매월당 김시습의 시 '작청작우'가 눈에 띈다. 나도 몇 년 전에 친구들과 같이 남산을 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땐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든 인연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살면서 늘 고전문학을 가까이 하고 이를 통해 정신성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친구 눈엔 쉽게 보였던 셈이다. 친구 발품 덕분에 나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 잘 감상했다. 아래에 번역을 해 놨다.
乍晴乍雨/金時習
乍晴還雨雨還晴
天道猶然況世情
譽我便應還毁我
逃名却自爲求名
花開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
寄語世人須記認
取歡無處得平生
비 오다가 갰다가/김시습
잠시 갰다 비 오고, 비 오는가 싶더니 또 갠다
하늘 道도 이렇거늘 세상인심이야 말해 뭣하랴
날 칭찬하는가 싶더니 금세 또 날 헐뜯는구나
공명을 피하는 게 되려 이름을 얻는 것이네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어찌 상관하겠는가?
구름이 오고가도 산은 구름을 다투지 않는다네
세상 사람들아 한 마디 하노니 꼭 유념들 하게
기쁨 얻는 데는 따로 없고 평생 얻는 거라고
위 칠언율시를 보면 생육신 김시습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무엇보다 기승전결의 반전이 돋보이는데 무상한 세상인심을 비오다 갰다 반복하는 날씨에 빗대서 읊었다. 한 마디로 남에 대해 가타부타 입대지 말고, 뒤에서 험담하지 말고 너나 제대로 살아라는 훈계를 담은 일종의 풍자시다. 남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염량세태 같은 세속성을 비, 꽃, 구름, 산을 시제로 삼은 자연의 변화에 엇걸어 표현한 게 과연 매월당다운 발상과 詩才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린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이 된 세조를 비난한 자신을 욕하는 자들을 의식한 심사가 깔려 있었으리라.
500년도 더 지났건만 세태는 여전히 나아진 게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터다. 뒤에서 남을 욕하거나 헐뜯음으로써 자신의 정신 건강을 챙기거나 혹은 자기 컴플렉스를 애써 불식시키려는 소인배들은 인류가 멸종될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 인간의 속성이 그런 것이니! 단지 초연과 성찰, 지성과 지혜의 습착 여부가 문제 될 뿐이다. 경주 남산의 소나무처럼 여여하고 의연하게 살 순 없을까?
2021. 9. 23. 15:3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