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대, 뜻밖에 시인이 되다!
평소 착상이 될 때 마다 조금씩 기록해온 졸시들이 어느덧 수십 편이 됐다. 한시와 일본 하이쿠까지 포함하면 100여수가 훨씬 넘는다. 그 가운데 지난 연초에 응모한 한글시 5편(눈물, 바람, 촛불, 단풍, 봄날-모두 나의 이 블로그에 등재돼 있음)이 월간 『純粹文學』 시 부문 신인상 심사를 통과해 『純粹文學』 2021년 3월호(통권 328호)에 등재되고, 이어서 지난 3월 6일 신인상을 수상함에 따라 시인으로 등단하게 됐다. 시재가 둔한 내가 시인이 된 건 전적으로 졸문들을 심사하고 의미 있게 평가해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 덕분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직접 세심한 심사평을 써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시인이자 소설가이신 박경석 예비역 장군님은 나의 삶의 역정에서 잊을 수 없는 분이다. 박 장군님과 나의 인연은 이제 갓 시작된 셈이다. 淺學菲才, 眼低手卑의 내가 박 장군님의 기대에 부응할 지 걱정이 앞서고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분에 넘치는 일이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일념 뿐이다.
지금까지는 시라는 걸 의식하지 않고 썼다. 시를 쓴다는 생각 없이 느끼는 대로 기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시를 쓴다는 생각을 하면서 써야 되고, 시인이라는 걸 의식하면서 살아야 된다. 이름이 주는 또 다른 긴장이자 無礙와의 상치다. 어깨에 쇳덩이가 놓여진 것처럼 느껴진다. 앞으로도 적잖히 그럴 것이다. 신인상 당선 소감에도 그렇게 썼다. 월간 『純粹文學』 2021년 3월호에 게재된 심사평과 당선 소감 그리고 시상식 사진들을 같이 올린다.
제328회 시부문 신인당선작 심사평
“서정의 조화”
수필 작가로 이미 활동하고 있는 서상문 박사가 시로 재등단하기 위해 신작시 10편을 보내 왔다. 그 가운데 다섯 편을 당선작으로 선별했다.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시 정신은 서정과 은유 그리고 상징성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다. 계절마다 감성을 눈물로 상징한 기법은 그의 심상이 이미 시문학 경지에 깊이 와 있음을 증거한다.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만 주신 참 선물이다. 눈물은 정결한 혼을 지닌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카타르시스이다. 그래서 서상문의 눈물은 참 시인이기에 흘리는 지고지순한 시 정신이 빛나고 있다.
한편, 계절은 시인에게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주는 상징의 대상이다. 고운 시문은 더욱 눈물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얼마 전까지 한국 시단에는 난해시가 유행병처럼 번지면서 철학 냄새가 풍기는 시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어렵다고 좋은 시가 아니다. 은유와 상징성은 평범한 감성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상문의 시 다섯 편은 누구나 읽어 눈물과 기쁨과 감성의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시 한 편 한 편이 자연의 풍광과 서정의 하모니로 연주하고 있다.
시 당선을 축하하며 한국 시단에서 더욱 활발한 창작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박경석, 박영하, 박영진
당선 소감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러 길로 들어가 봤다. 지금도 줄곧 걸어가고 있는 길도 있지만, 들어갔다가 도중에 되돌아간 길도 더러 있다. 또 들어섰다가 선 채 가지 않고 멈춰선 길도 있다. 또 어떤 길은 아예 처음부터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길도 있다. 詩作의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그 길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한 계기로 생각지도 않게 詩作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졸문이 문학지에 소개될지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뜻밖이다. 예순이 넘어 받게 된 희사지만 나이는 본질이 아닌 것 같다. 평소 시랍시고 끌쩍거려 왔지만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시인이 되려고 쓴 게 아니었다. 그냥 별 이유 없이 안개, 비, 구름, 이슬, 바람 따위에 끌렸다. 내가 바람이 될 순 없을까? 내가 구름이 될 순 없을까? 내가 이슬이 될 수는 없을까?
物我一體가 되고픈 부질없는 욕심이었다. 언어 이전의 세계와 한 몸이 되어보겠다는 生心 자체가 인간의 오만이다. 해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자기만족은 애오라지 자연에 마음을 투사시켜 정화, 순화시키는 일뿐이다. 변변찮은 상상력과 언어의 조탁력으로 푸른 하늘가 뭉게구름에, 철마다 피는 야생화들에, 핏빛의 가을 낙엽들에, 스쳐간 바람결에, 눈 쌓인 앙상한 나뭇가지들에 마음의 붓 길로 덧칠해봤다. 인트라의 그물로 엮어져 있는 저 광대무변한 연기의 세계에 그물 한 코를 더 놓는다.
지금까지는 무명의 메모에 불과했지만 이제부터는 이름을 걸고 ‘詩’라는 걸 써야 한다. 사전 채비 없이 해무 자욱한 바다로 나아가야만 하는 느낌이다. 무엇을 건져 올릴지는 알 수 없다. 파도에 휩쓸려 갈 수도 있고, 바위에 부딪쳐 상처가 날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쓴다는 행위가 성스럽다는 생각이어서 이 위안이 버팀목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언어공해로 남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사라지진 않지만.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한 수상은 기쁨과 함께 전에 없던 긴장을 하게 만드는 편달이다. 무명과 유명 사이에 선 지금, 결코 마음이 경쾌하지는 않다. 여물지 않고 숙성치 않은 졸문을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분들에게 한껏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읍례를 올린다.
2021. 2. 28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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