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와 지성호는 탈북자일 뿐 북한전문가는 아니다!
전문가란 영어의 여러 단어들이 말해주듯이 특정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숙련, 숙달의 뜻을 어원으로 갖는 experts, 직업으로 삼아도 될 정도의 전문성을 가진 이를 가리키는 professional이 그런 의미다. ‘specialist’도 뒤에 전치사 in을 붙여서 ‘specialist in North Korea issue’(북한문제 전문가)처럼 어떤 분야에 정통한 이를 표현한다. 또 대가를 뜻하는 master도 있다. master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외 하나는 돼야 소위 ‘전문가’로 역할을 하거나 행세할 수 있다.
남북통일을 지향하지만, 군사적 긴장이 종식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북한전문가(North Korea expert)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특히 북한의 일반적 실상 보다도 고위층과 최고 지도자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북한정보통 전문가는 역할이 막중하다. 그것은 특정 정당의 차원을 넘어서는 ‘니즈’다. 그래서 이번에 통합당에서도 태영호(본명은 구민)와 지성호 두 사람을 북한전문가라고 알고 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켰다.
통합당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화정책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 그 기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을 실현하는데 이 두 사람을 활용하려는 저의가 있어 보인다. 또 설사 그것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은 남한 국내와 미국 등지의 해외 북한전문가들과 함께 북한관련 정보를 크로스 체크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 역할을 하면 대북정책에 활용되고 국가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어쩌랴! 이번 김정은 잠적 소동을 통해 태영호와 지성호는 둘 다 북한전문가가 아님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태영호는 김정은이 사망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고 주장했고, 지성호는 김정은이 사망했다면서 “99% 확신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단지 탈북자일 뿐 북한전문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준 셈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계면쩍지만 태영호와 지성호는 북한을 전공하지 않은 나보다도 모르는 비전문가다. 나는 다년 간 한중관계와 한국전쟁을 연구하면서 북한현대사를 학습하고 접한 관계로 현 북한의 동향을 관찰하면서 가끔씩 북한 관련 주제도 글로 써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김정은이 갑자기 잠적했을 때 보수언론들이 그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하는 논조로 앞 다퉈 보도해도 나는 뭔가 석연치 않아 코멘트를 하지 않고 쪽 지켜봐왔다. 나는 지인들과 나눈 대화에선 김정은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정은이 확진에서 벗어나면 대략 5월 초순에는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세 가지를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 첫째는 한국정부의 공식 발언이었고, 둘째는 지난달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북한 외무성 의전국 통보문이었으며, 셋째는 트럼프의 발언이었다.
첫 번째 근거로는 한국정부가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사실이다. 자신감이 있어 보인 어조였었다. 사실, 북한과 중국 내 휴민트(Humint)를 통해 입수하는 국정원과 군계통 정보기관의 정보에 근거한 한국정부의 대북 정보는 여타 탈북자들이 입수하는 단편적이고 저차원의 것들과 격이 다르다. 심지어 첨단 군사장비로 북한 전역을 샅샅이 비춰보고 있는 미국정부도 대북 정보는 한국정부에게 확인해야 할 때가 많다.
두 번째 북한 외무성 의전국 통보문에 따르면, 북한은 코로나19 잠복 기간이 24일이라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격리 기간을 잠정적으로 30일까지 늘렸었다. 김정은이 마지막 행보를 보인 4월 11일 이후부터 계산하면 다음 달인 5월 3일 3주가 끝나고, 5월 둘째 주면 한 달이 된다. 코로나19 변수가 맞다면 김정은은 적어도 5월 3일 이후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4월 29일 찍힌 위성사진에서도 김정은 전용으로 보이는 열차가 원산에 정차돼 있는 걸로 확인됐다고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전했다.
세 번째 근거로는 얼마 전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신은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김정은 유고설을 얘기한 CNN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 코멘트였다. 만약 김정은이 정말 CNN보도처럼 급작스런 유고상황에 직면했다고 알고 있었다면 트럼프가 “김정은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우리는 곧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 사망소동은 한 마디로 김정은이 연출한 고도의 술책이었다. 김정은은 미국 대선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재선되도록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트럼프가 재선되지 않고 민주당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면 자신과의 대화는 모두 백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대선에 북핵문제를 미국인들에게 인식시키려면 또 다시 세계의 시선을 북한에 집중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목하 전세계가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는 등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있는 팬데믹의 와중에 김정은이 예전처럼 미사일을 쏴댈 순 없는 상황이다. 만약 그랬다간 세계의 비난은 김정은 자신이 다 뒤집어써야 한다. 그래서 고안한 게 김정은이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에 참석하지 않고 잠적하는 것이다. 그것도 3주 가까이 오랫동안! 그렇게 되면 남한과 서방사회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했을 것이다.
태영호와 지성호 그리고 이들을 국회의원으로 공천한 통합당이 모두 김정은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맞은 셈이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처음부터 내재돼 있었다. 두 사람 다 북한 최고 지도부와 동떨어져도 너무 동떨어져 있어 김정은의 동향을 파악할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영호가 아무리 북한의 고위급 외교관 출신이라고 해도 그는 일개 공사 정도에 지나지 않는 인물일 뿐이다. 적어도 북한의 주체사상을 기초하면서 김일성-김정일 가의 내부 사정 혹은 비밀을 많이 알고 있던 황장엽 정도는 돼야 고위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태영호가 낸 그 자신의 회고적 저서(『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기파랑 출판사, 2018년)를 2년 전에 완독했다. 그런데 본문만 514쪽이나 되는 그 책엔 저자가 북한노동당의 고위층이나 핵심 요원들을 휴민트로 둘 수 있을 만큼 인맥이 두텁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는 북한정권의 핵심과는 전혀 거리가 닿지 않고, 단지 외교 관료로 성장한 자신을 둘러싼 얘길 했을 뿐이다.
북한정권에서 외무성은 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관료집단일 뿐이다. 북한노동당이 모든 것을 통치하는 당국가(party-state)라고 하지만 실제는 김정은이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의 집단이다. 설령 당 우위의 체제라 한들 실제는 당 보다는 오히려 군부가 권력이 더 세다. 그런데 태영호는 당의 중추인물도 아니요, 군부의 인사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그에겐 북한 내에 북한고위층의 동향을 전해 받을만한 소식통도 있을 수가 없다. 그는 단지 10여년 간 유럽 등지의 외국만 전전했는데 어떻게 북한 내 극비리에 움직이는 김정은과 그 측근들의 동향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지성호는 태영호 보다 대북 정보력이 더 못해 보인다. 이른바 ‘꽃제비’ 출신인 그가 어떻게 평양의 수뇌부 동향과 신변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는 TV에 나와서 북한이 얼마나 폐쇄된 사회이어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실체도 남한에 와서 알게 됐다고 소개한 바 있다. 그들이 북한에 소식통을 두고 있다고 쳐도 북한사회엔 언론이 없기 때문에 북한주민들 사이엔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고, 더군다나 최고 지도자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평양발 보도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게 돼 있다.
그런데 태영호와 지성호가 무슨 요술이라도 부려서 김정은 측근을 자신들의 소식통으로 뒀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반대하기 위해 “용병”을 투입시키듯 두 사람을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해 국회에 입성하도록 한 통합당은 이 두 사람이 단순한 탈북자인지 정말 고도로 학습을 쌓은 훈련된 북한전문가인지 판단하는 감식안이 이처럼 아마추어였다.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연 1억 5,187만 9,780원이라는 엄청난 고액의 연봉을 주고 이들을 초빙한 셈인데, 게임이 시작도 되기 전에 벌써 바닥이 드러나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북한전문가로서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내용을 보면 안다.
더군다나 김정은의 등장으로 자신들의 주장이 오판이자 가짜뉴스로 판명된 뒤에 두 사람이 한 해명을 보면 양심도 비뚤어진 사람으로 보인다. 태영호는 “결과적으로 저의 분석은 다소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과연 지난 20일 동안 김정은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일까?”라고 계속 의혹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오판을 희석시키려고 하거나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지성호는 한 술 더 떴다. 김정은이 나타나자 김정은이 병이 있지 않느냐면서 그의 건강에 대해 “속단”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자기는 20여 일 동안 엄청난 ‘속단’을 쏟아내더니 자신의 주장이 오판의 거짓으로 드러나자 이제 와서 신중하자고 종잇장 뒤집듯 태도를 바꿨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김정은이 심장병, 고지혈증, 고혈압, 고도 비만증 등등의 질환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웬만한 일반인들도 거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또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는 ‘최고 기밀사항’이라는 사실이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건 초등학생도 아는 사항이다. 이런 유치한 변명으로 둘러댈 일이 아니다. 차라리 오판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하는 게 사람이라도 추하게 보이지 않게 만든다.
자신이 북한을 탈출했다고 해서 무조건 북한에 대해 증오심과 적개심 혼은 한풀이로 대하는 시각은 위험한 행태다. 객관적으로 북한을 볼 수 있는 눈을 흐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 참여자의 신분이 되면 더욱 그래선 안 된다. 태영호와 지성호는 자신을 선량으로 만들어줬다고 해서 그 당을 위해서만 행동을 해선 안 된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상, 앞으로 국가공무원법상 선거로 취임한 정무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헌법에 따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설령 김정은의 사망이 사실이라고 해도 함부로 경솔하게 발설해선 안 되는 사안임을 알고 신중했어야 했다.
두 사람은 스스로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에서 사퇴하는 게 답이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통합당이 두 사람과의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로 고액의 연봉을 주는 고용자이니 잘못 고용한 당이 있다면 그 당이 책임을 지고 사퇴시켜야 하지 않는가? 그 길만이 향후 대북 정보와 관련해 시행착오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날 사회적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사퇴하지도 않을 것이고, 당도 “계약”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다. 평소 내가 주장해온 국민소환제의 실현이 더욱 절실하다.
2020. 5. 3, 16:32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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