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지구환경 생태계 문제

기후채찍질, 얼마나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雲靜, 仰天 2026. 8. 5. 07:53

기후채찍질, 얼마나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서상문(지구종말과 인류운명을 걱정하며 사는 멀대)

폭우와 홍수가 전국의 산과 들, 도시와 농촌을 할퀴고 지나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연일 40도를 오르내리는 불덩이 같은 폭염이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 물론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연이 아닌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맹폭격이 더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물이 넘쳐 주택과 농경지가 잠기고 산사태가 일어나더니, 비구름이 걷히기가 무섭게 땅이 달아오르고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는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사람이 죽고, 다시 너무 더워 사람이 쓰러지는 형국이다.

2026년 8월 초 경남 양산의 기온은 42도를 넘어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 8월 4일에는 경기도 양주 40.4도, 하남 40.1도를 비롯해 수도권 여러 지역에서도 40도 안팎의 기온이 관측됐다. 40도 폭염은 이제 특정 분지나 남부지방만의 특이현상이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가 퍼붓다가 갑자기 가뭄과 폭염으로 뒤바뀌고, 다시 태풍과 집중호우가 덮치는 이러한 급격한 기후 변동을 흔히 ‘기후채찍질(Climate Whiplash)’이라고 부른다. 채찍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세차게 휘둘러지듯이 극단적인 습윤과 건조, 폭우와 폭염이 짧은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현상이다. 최근 관련 연구들은 지구가 더워질수록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품게 되어 비가 내릴 때는 한꺼번에 쏟아지고, 비가 그친 뒤에는 더욱 강한 고온과 건조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급격한 수문기후 변동이 이미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변덕스러운 날씨나 자연의 난폭함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자연이 인간에게 까닭 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먼저 자연을 채찍질해왔다. 산을 깎고 숲을 베었으며, 강을 가두고 습지를 메웠다. 땅속에 수억 년 동안 묻혀 있던 석탄과 석유를 불과 몇 세대 만에 꺼내 태웠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며, 더 빨리 버리는 생활을 발전이라고 불렀다. 바다에는 산업폐수와 플라스틱을 쏟아붓고, 대기에는 온실가스를 내뿜으면서도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인간에게 이른바 '기후채찍질'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 채찍질이 시간이 갈수록 가혹하고 매몰차다. 현재 상태에서 강대국들과 인간들이 각성하지 않고 지구생태계를 되살리는 실천을 행하지 않으면 채찍질은 더욱 더 규모가 커질 것이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는 관측 사상 가장 더운 11년이었고, 2025년의 세계 평균기온도 산업화 이전보다 약 1.43도 높았다. 세계기상기구는 강렬한 폭염과 집중호우, 열대성 저기압이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며 인간 사회의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우려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자연재해의 근원에는 자연을 인류와의 공존이 아니라 발전과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 및 인간의 오만이 놓여 있고, 현대문명의 대량소비와 인간의 탐욕이 작동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태풍과 홍수, 가뭄과 폭염은 서로 떨어져 있는 우연한 재난이 아니다. 인간이 지구의 순환체계를 교란한 결과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다가 죽으면 물고기만 죽는 것이 아니다. 토양이 죽으면 농민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숲이 사라지고 강이 오염되면 결국 그다음 차례는 인간이다.

인간은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얻은 것으로 몸을 이루고, 마침내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땅은 인간의 소유물이기에 앞서 인간의 몸이다. 강과 바다는 인간 몸속의 피와 같고, 숲은 허파와 같으며, 흙은 살과 같다. 인간이 땅을 천시하고 더럽히는 것은 자기 몸을 학대하는 행위다. 인간이 자기 몸인 땅을 버린 과보가 오늘날 거대한 기후채찍질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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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재해가 닥치면 며칠 동안 안타까워하고 정부의 대응을 질책하지만, 물이 빠지고 전기가 복구되면 다시 원래의 소비생활로 돌아간다. 폭염 속에서는 에어컨을 더 세게 틀고, 냉방을 위해 더 많은 전력을 사용하며, 그 전력을 만들기 위해 다시 많은 화석연료를 태운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도 더 큰 자동차, 더 넓은 집, 더 많은 물건과 더 편한 여행을 욕망한다. 환경보호는 필요하지만 내 소비와 편익은 줄일 수 없다는 태도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탄소중립과 녹색경영을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부추긴다. 정부 역시 기후위기를 국가적 비상사태라고 말하면서도 경제성장률과 개발사업 앞에서는 환경보호 원칙을 뒤로 미룬다. 산과 갯벌, 농지와 바다가 개발이익을 위한 빈 땅으로 취급된다. 이처럼 성장과 소비의 방식은 그대로 둔 채 나무 몇 그루를 심고 일회용품 몇 개를 줄이는 것만으로 기후재앙을 막을 수는 없다.


물론 개인들의 실천도 중요하다. 쓰레기를 줄이고, 물과 전기를 아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지 않는 생활 방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겨선 해결이 안 된다.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과 자연파괴를 일으키는 기업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는 탄소감축 목표를 선언하는 데 그치지 말고 화석연료 의존을 실질적으로 줄이며, 산림과 습지, 농지와 해양생태계를 지켜야 한다. 도시도 더 많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을 것이 아니라 빗물을 머금고 열을 식힐 수 있는 생태적 공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환경 분야의 한 가지 정책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농업과 식량, 건강과 복지, 산업과 에너지, 주거와 도시, 국가안보와 인류 생존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특히 폭우와 폭염의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반지하와 비탈면, 낡은 주택과 쪽방에 사는 사람들, 야외 노동자와 농민, 노인과 어린이가 먼저 희생된다. 기후위기는 자연의 위기인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하는 불평등의 위기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고받았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바다가 뜨거워지며, 산불과 가뭄, 폭우와 홍수가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그런데도 “설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큰일이 나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도 안이하다. 그 ‘큰일’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창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40도가 넘는 폭염도, 시간당 수십 밀리미터씩 퍼붓는 폭우도 이미 매년 철마다 반복되는 현실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원한도 증오도 없다. 다만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른 만큼 그 결과가 되돌아올 뿐이다. 이것이 인과이며 과보다. 우리가 받고 있는 기후채찍질은 하늘이 내린 벌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재앙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홍수에 휩쓸리고, 폭염에 쓰러지며, 삶의 터전을 잃어야 정신을 차릴까? 얼마나 더 많은 산과 강과 바다가 죽어야 탐욕의 손을 거둘까? 지금도 깨닫지 못한다면 다음에 휘둘러질 채찍은 더 빠르고, 더 매섭고, 더 공포스러울 것이다.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부라는 사실, 땅을 살리는 것이 곧 인간 자신을 살리는 일이라는 사실부터 다시 깨달아야 한다. 기후채찍질을 멈추게 하는 첫걸음은 자연을 바꾸려는 데 있지 않다. 끝없는 성장과 소비를 당연하게 여겨온 인간의 욕망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

오늘날의 기후 이상은 기후 재앙이다. 지금 즉각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지구는 무너지고 인류는 공멸할 것이다. 기후 재앙 마지노선은 이제 7년 남았다. 회개하라! 그리고 실행하라! 임계점이 눈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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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5. 07:51.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