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彭德懷入朝作戰紀實』의 저자 王波의 후기
최근, 나는 한국전쟁 시기 팽덕회의 역할을 논한 중국의 저서를 한 권 접하게 됐다. 王树增이 쓴 『彭德怀入朝作战纪实』(石家庄 : 花山文艺出版社, 2017年)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6.25한국전쟁에 관한 전문 연구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대개 중국의 다른 연구서들이 그렇듯이 엉성한 부분이 많고 또 사실이 잘못된 부분도 적지 않다. 저자가 책의 맨 마지막에 올린 저자 “후기(后记)”도 엉성한 부분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링컨이 말했다고 한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관련 구문인 美国前总统林肯爱默生是“美国的孔子”에서 “林肯爱默生”은 문장이 비문이다. 구두점이 빠졌거나, 說자가 빠졌고 인용 출처도 불명확하다.
또한 덜레스(Dulles)의 “和平演变”도 중국 대중 담론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지만, 실제 덜레스 원문과 중국식 재해석 사이에 차이가 크다.
푸틴 관련 서술도 실제 발언 일부에다 저자의 정치적 해석이 결합되어 있다. 또 자의적인 해석도 눈에 띈다. 예컨대 본문에서 저자는 2002년, 조지 W. 부시와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푸틴과의 약속을 어기고 NATO를 동진시켰다는 식으로 중국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 논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NATO 동진은 부쉬와 토니 블레어라는 특정한 두 정치인이 단독으로 결정한 사안이라기보다 냉전 종식 이후 장기적으로 진행된 미국·NATO 전략의 일부였다. 이런 역사적 환경 속에서 1999년 NATO 확장(폴란드·헝가리·체코)과 2004년 대규모 확장(발트 3국 포함) 등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 사실을 “서방의 약속 위반”, “푸틴의 불신 심화”라는 서사 구조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평소 중국 학계의 연구 성과를 신뢰하지 않거나 높이 평가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다.
한 마디로, '후기'는 정치적 논평, 현대 국제정세 해석, 미·러 관계에 대한 가치판단, 미국 패권 비판,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 등이 강하게 섞여 있는 “논설·시평적 성격”이 매우 강한 글이다.
그럼에도 내가 한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을 할애해서 이 후기를 번역해서 올리는 이유가 있다. 이 책 전체를 다 소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저자 후기라도 올려서 저자의 생각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저자가 개념화한 한국전쟁에서의 “중국적 요인”이란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고, 중국 학계나 중국의 식자들이 한국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대체적인 인식과 시각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순수 사료 소개나 엄밀한 군사사 서술이라기보다 저자의 정치적 역사관과 현실 국제정치 해석이 들어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ㅡ역자 雲靜

후기(后记)
조선전쟁에 왜 “중국 요소”를 가해야 하는가?
1950년 10월,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전쟁 중 맥아더(MacArthur)가 38선을 돌파한 뒤 조선반도의 정세가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반드시 “중국 요소”를 더해야 한다고 보았다.
무엇을 “중국 요소”라고 하는가? 필자의 이해로는 “중국 요소”란 곧 중국 인민이 이 전쟁을 지지하는 국력, 중국 군대의 전투력, 중국 영도자의 전략적 지혜와 담력, 군 통수자들의 전역 지휘 능력, 그리고 중국 기층 지휘관과 병사들이 최전선 진지에서 보여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전투 정신과 전술 기술을 말한다.
만약 당시 우리나라가 조선반도에 “중국 요소”를 투입하지 않았다면, 트루먼과 맥아더가 말한 이른바 미국·영국 중심의 “유엔군”은 미친 듯 북진하여 압록강 남안까지 이르지 않았겠는가? 그들이 남안에 주둔하며 공산주의 중국이 쇠잔하고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았겠는가? 또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점차 증강되는 것을 기뻐하며 바라보았겠는가?
이러한 “우려”는 거대한 올가미처럼 중국인들에게 하나의 갑옷을 씌운 셈이었다. 당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펑더화이(彭德懷)는 모두 트루먼과 맥아더의 광기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펑 총사령은 김일성(金日成)·박헌영(朴憲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강을 건너 작전을 수행하면, 이미 미국이 중국과 전쟁 상태에 들어간다고 선포할 준비를 마쳤고, 그들의 비행기로 동북과 연해의 중요 공업 도시들을 폭격할 준비도 되어 있다.”


트루먼과 맥아더는 웨이크섬 회담에서 미군의 조선 내 행동은 조선의 허리 부분에 한정될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평양을 점령한 뒤에는 “역사상 압록강은 중조 양국을 완전히 갈라놓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
60여 년 동안 조선반도에 “중국 요소”를 더해야 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늘 의심과 불신을 품어 왔다. 그들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펑더화이의 판단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최근 신화국제망(新華國際網)이 보도한, 푸틴이 소련 해체 이후 15년 동안의 생각의 변화(心路历程)를 이야기한 내용을 읽어보면, 아마도 이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외부 평론가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문제 관련 발언을 두고 수준 높은 심리 분석적 독백이라고까지 말한다.
푸틴은 솔직하게 이렇게 말했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진심으로 서방과 대화하기를 희망했고, 모든 핵심 문제에서 협력하며 신뢰 수준을 높이고, 서로의 관계가 평등하고 솔직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무런 호응도 보지 못했다.”
이 말들은 푸틴 내면의 실망과 굴욕을 매우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2002년, 아들 부쉬와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Tony Blair)는 푸틴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동진시켜, 한 번에 러시아의 발트해 연안 3국을 포함한 7개국을 가입시켰다. 토니 블레어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푸틴은 미국인들이 자신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지위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푸틴은 서방 파트너들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생각은 갈수록 강해져 실망감도 날로 커졌다고 본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문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영국은 한 번 또 한 번 우리를 속였고, 우리 등을 돌린 채 결정을 내린 뒤 기정사실을 우리 앞에 들이밀었다. 예컨대 나토 동진과, 우리 집 문 앞에 군사시설을 배치한 것이 그렇다. 러시아의 문을 완전히 봉쇄하려 하면서도, 끊임없이 러시아에게 ‘이건 당신들과 관계없다’고 말한다.”
푸틴은 미국과 영국의 언행이 위선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파트너들은 국제법보다 힘의 논리를 더 신봉한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자기만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세계의 운명을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한다.”
푸틴은 15년에 걸친 생각의 궤적을 거쳐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미국이 압록강 양안을 점령하고, 랴오난(遼南) 공업지대를 차지하며, 보하이만(渤海灣)과 산둥반도(山東半島)의 전략 요충을 점령하고, 우리 연해의 중요 도시들을 폭격하여 수백만 난민이 조수처럼 동북으로 밀려들고, 더 나아가 산하이관(山海關)과 톈진(天津)까지 범람해 들어간 뒤에야 이런 결론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
1953년 7월, 조선 정전 이후 64년의 역사적 증언과 현실, 그리고 64년의 사색과 침잠을 거쳐, 우리의 손실은 비록 러시아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결론은 푸틴과 일치한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전쟁의 발원지이며, 전란과 난민, 굶주림을 만들어내는 전쟁 기계이다.
유엔의 수권 없이도 전략적 이익만 있다면 언제나 온갖 구실을 찾아 타국에 병력을 들이밀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코소보 독립을 조종하고 남슬라브(즉 유고슬라비아ㅡ역자 주) 내전을 일으켜 유고슬라비아를 해체했으며, 대량살상무기를 구실 삼아 이라크를 침공했고, 테러조직 소멸을 명분으로 아프카니스탄을 점령했으며, 비행금지구역 설치를 핑계로 리비아를 폭격해 원시 사회 수준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제는 또 “우크라이나 모델”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미국 정보기관의 자금 지원 아래 미국 정객들이 거리 폭동을 일으켜 합법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변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덜레스(Dulles)의 “평화 연변”의 오늘날 모델이다.
쑤쉰(蘇洵)의 「六國論」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제후들의 땅에는 한계가 있지만, 포학한 진(秦)의 욕망에는 끝이 없고, 받들어 바치는 것이 번다할수록 침략은 더욱 급해진다.”
마오쩌둥은 지원군 출병 전에 “국제 정세로 보아 반드시 중국 요소를 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문자 문화의 오묘함은 매우 깊다. “무(武)”라는 글자는 곧 “지(止)”와 “과(戈)”로 이루어지며, 이는 “전쟁을 멈춘다(止戈)”는 뜻이다. 당시 중국이 “중국 요소”를 더한 것은 비록 막대한 대가를 치렀지만, “전쟁을 멈춘다”는 목적을 달성했고 64년의 평화 발전을 유지하였다.
내가 『彭德懷入朝作戰紀實』이라는 책을 쓴 이유는 조선전쟁에서 중미 양국이 벌인 전쟁 추진 과정을 통해 현대 전쟁의 몇 가지 요소와 진상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소련 해체 이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가 벌인 현대 전쟁은 마치 TV 연속극처럼 한 무대 위에서 상연되었다.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 전략 자원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하나씩 벌여야 했다.
미국의 전 대통령 링컨은 미국의 사상가 “랠프 왈도(Ralph Waldo Emerson)는 미국의 공자이다”라고 말했다. 애머슨은 나폴레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폴레옹은 평생 60여 차례 전투에 참가했지만 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매번의 승리는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또 이렇게 말했다.
“나의 권력이 지지를 잃는다면 곧 무너질 것이다. 정복은 나 같은 사람을 길러낸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더 많은 정복으로 나 자신을 길러야 한다.” (立信会计出版社판 『爱默生随笔集』 314쪽. ▶ 원서에 이렇게 돼 있음. 정확한 판본, 편자, 원서명, 출판연도 등의 서지사항이 불명확함. 爱默生은 에머슨의 중국어 번역임ㅡ역자 주)
새로운 정복과 새로운 전략 이익은 한 세대 또 한 세대 미국 대통령을 길러냈다. 미국 대통령과 선거인은 이런 괴이한 원 안에 갇혀 있다. 미국 대통령은 명분을 내세워 약소국을 정복하고 미국 자본을 자극하여 이익집단의 표를 얻는다. 이것은 하나의 악순환이다.
조선전쟁 시기와 다른 점은, 오늘날 미국이 유럽 전략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보고, 다시 “아시아로의 회귀”를 높이 외치며 일본의 신군국주의 세력과 일부 국제 정세를 분간하지 못하는 소국들을 선동해 아시아판 “소(小) 나토”를 만들고 혼란을 조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복 아시아를 통해 미국 대통령과 미국 유권자를 먹여 살리려는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가 도대체 언제 국제적으로 법을ㅌ지키겠는가? 국제사회에는 반드시 새로운 세력의 부상과 미국에 대한 제약이 필요하다. 제약이 없다면 오직 미국이 제멋대로 날뛰며 패권을 휘두르려는 심리만이 존재할 뿐이며, 그것이 바로 새로운 정복 전쟁을 유발하는 미국 요소이다.
1992년 8월, 필자는 花山文藝出版社에서 『彭德懷入朝作戰紀實』을 출판했고, (그 내용이ㅡ역자 주) 『河北日報』에 연재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제3차 전역까지만 서술했다. 이후 지금까지 10년에 걸쳐 자료를 세밀하게 연구하면서, 영도자들의 전략 결정, 펑 총사령관과 전우들의 치밀한 전역 지휘, 일선 부대의 공방전에서 보여준 용감무쌍한 전투 정신 등을 거시적·종합적·다각적으로 서술해, 중국군이 직접 미군과 맞서 싸운 유일한 전쟁을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고자 했다.
전쟁의 경이로움과 비극성은 바로 전쟁 생활에 대한 사실적 서술 속에 존재한다. 이 책은 특히 전략 방침, 전역 기획, 전투 진행의 핵심 고리 서술에 주의를 기울였다. 농담 삼아 말하자면 이것은 문학 작품판『戰爭論』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 전쟁 생애의 세부를 들려주었던 훙쉐즈(洪學智), 양디(楊迪), 양펑안(楊鳳安), 왕청한(王誠漢), 장밍위안(張明遠), 웨이웨이(魏巍), 멍웨이자이(孟偉哉) 등 노수장들은 이제 모두 인생의 무대를 떠났다.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원고의 주요 줄거리와 세부는 일부 자료와 노동지들의 구술에서 얻은 것이다. 그들은 이 책 속에 살아 있다. 이 책 원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전쟁에 참가했던 저명 작가 멍웨이자이 동지의 지지와 지도를 받았다. 그는 통독 후 서문을 써주었고, 구상에서부터 제목 선정에 이르기까지 이 원고를 중요한 작품으로 여기며 수정·보완을 지도했으며, 친필로 서명까지 남겼다. 나는 멍웨이자이 수장이 사상가이자 문학가, 편집가로서 보여준 불굴의 정신을 매우 존경한다. 그가 이 책을 위해 써준 서문은 이미 『孟偉哉文集』에 수록되었다.
류옌(劉艷) 동지는 이 책 원고를 위해 많은 노고를 기울였다. 군사과학원 전략이론 및 군사사부 부부장, 『抗美援朝戰爭史』 주편 치더쉐(齊德學), 연구원 위웨이(于偉)는 원고 전체를 교열해주었다. 이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자료들(사진 포함)을 참고하였다.
『建國以來毛澤東軍事文選』
『周恩來軍事文選』
『抗美援朝戰爭史』 (수정판)
楊迪 著, 『在志願軍司令部的日子里』
『鄧華紀念文集』
洪學智 著, 『抗美援朝戰爭回憶』
楊鳳安 王天成 共著,『駕馭朝鮮戰爭的人』
『李聚奎回憶錄』
『解方將軍』
『杜平回憶錄』
『韋杰中將』
徐焰 吳少京 編『抗美援朝戰爭畫卷』
Maurice Isserman, 著 『美國人眼中的朝鮮戰爭』
貝文·亞歷山大 著, 『朝鮮:我們第一次失敗)』
馬修 李奇微 著,『朝鮮戰爭』
『麥克阿瑟回憶錄』 등
2017년 7월 16일
추이웨이루(翠微路) 군 휴양소에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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