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나의 T. S. 엘리엇 변주

雲靜, 仰天 2026. 4. 6. 20:29

나의 T. S. 엘리엇 변주



다 잊고 살아오니라.
사랑도 미움도,
신의도 배신도.
폐광의 막장굴 속에
싸늘히 기억을 묻었느니라.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었노라.
믿은 자의 배신이 몇 번이었던가?
별빛 아래 목놓아 울부짖으니라.

텅 빈 가슴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사계절은 툰드라의 동토라.
양심마저 얼어붙은 세상에서
굴종의 눈들만 번득일 뿐
그래도 토성의 광야에 홀로 서서
바위처럼 꿋꿋이 살았노라.

해마다 사월은 눈물의 씨앗이라.
천지에 꽃들이 잔인하게 피어나서
긴 세월 잊고 산 날들이
천둥 같이 정수리를 치는구나.
아, 거부할 수 없는 현기증이여!

2026. 4. 6. 20:29.
일산 향동에서
雲靜 초고

★ 작가의 작업 노트
T. S. 엘리엇은 현대시의 고전이 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황무지의 모티프를 현대적이고 개인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인상적인 작품인 것은 다 아는 얘기다. 또 해마다 4월이면 회자되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도 이 시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여타 시작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폐해진 문명과 영적 고갈을 노래했다면, 이 시 황무지는 ‘살아있음 그 자체의 고통’과 ‘인식의 잔인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그는 역설적으로 죽은 듯한 인간에게 다시 삶과 기억을 강요하는 계절의 잔인함을 두고 '4월이 잔인하다'고 한 것이다. 나는 엘리엇의 이 인식을 나 자신의 지나온 삶과 개인적 체험을 변주하는 도구로 활용해봤다. 구체적으로 짎어보면 이렇다. 엘리엇식 ‘개인의 황무지’를 한국적 땅과 사회적 현실 속으로 옮겨와서, 나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폐광 막장굴”, “토성의 광야”라는 표상으로 결핍과 고립, 인간 존재의 부서짐을 강렬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그 속에서 ‘4월의 잔인함’은 단순한 계절의 비유가 아니라 망각과 회복,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기억의 폭력으로 그리려 했다. 시 전체의 리듬을 짧고 단호한 구절로 이어지게 해봤으며, ‘다 잊고 살았다’에서 시작해 ‘꽃들이 잔인하게도 잊고 산 지난 날이 천둥처럼 정수리를 치는구나’로 끝날 때, 독자들은 한 인간이 생의 황량함을 통과해 기억의 폭풍 앞에 다시 서는 장면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문제의 시 '황무지'로 유명한 T. S.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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