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食事之道의 반야심경 格義

雲靜, 仰天 2026. 4. 6. 18:25

食事之道의 반야심경 格義



食事無道 道亦無離食事。
식사에는 도가 없으나, 도 또한 식사를 떠나지 않는다.
攝食卽空 空卽攝食。
먹는 일은 곧 공이요, 공은 곧 먹는 일이다.
嚼無者 無者卽沈默 沈默卽法文。
씹는 자는 없으며, 없음은 곧 침묵이요, 침묵은 곧 법문이다.
舌非舌 言非言。
혀는 본래 혀가 아니며, 말은 본래 말이 아니다.
一吸之水 天地在中。
한 모금의 물에 천지가 머문다.
不滯卽道 求道卽病。
막힘이 없으면 그것이 도요, 도를 구하는 것이 병이다.
聖人食而無食者, 嚥而無嚥者。
성인은 먹되 먹는 게 없고, 삼키되 삼킴이 없다.
寂嚼而行 道自自行。
조용히 씹는 걸 행하면, 도는 스스로 그렇게 작용한다.
是故 知有無不二。
이로써 알건대, 있음과 없음은 둘이 아니며,
一嚼一息 具足法界。
한 번 씹고 한 번 숨 쉬는 사이에 온 법계가 갖추어져 있다.
道也 不食而食。
도란, 먹지 않으면서 먹는 것이요,
食也 不求於道而入道。
식이란, 도를 구하지 않으면서 도에 드는 것이다.
一嚼中 般若自現。
한 번 씹는 그 순간, 반야의 지혜가 스스로 드러난다.

2026. 4. 6. 18:23.
일산 향동에서
저녁 식사하면서 갑자기 떠올라서 쓰다.
雲靜 초고

★작가의 작업 노트
형식은 반야심경의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형식을 따랐고 내용으로 먹는 것이 공이고 공이 먹는 것임을 읊어봤다. 불교의 기본 인식은 도가 없는 데가 없다는 것이니까 식사에도 도가 있다는 얘길 한 것이다. ‘먹는 행위 속의 도’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도에 이르는 길’이라는 이중 의미를 품고 있다. 식사처럼 모든 분야를 格物致知해서 그 분야를 자유자재하게 섭렵하면 그 다음 단계의 空한 상태, 즉 그기에 끄둘리지 않고 자유로이 운용하게 됨으로써 여여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지 식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식사에서 행하는 식으로 격물치지한 후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면 모든 분야가 空한 상태, 즉 걸림이 없게 된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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