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엄마 젓가슴
기차 곱은 뻬 안에서
느티나무 그늘 평상에서,
대합실 벤치에 걸터앉아
엄마들이 남이 보건 말건 젖가슴을 꺼내
아기 젖 먹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길거리 어디에도
음란 신고 번호는 없었다.
사람들은 그냥 무심히 쳐다보거나
“아, 애가 배고프겠구나”하고
측은하게 바라봤을 뿐이다.
부끄러움이 없어서였을까?
수치가 아직 상품화되기 전이어서?
세월 따라 어디서든 아기 젖먹이던 광경은
낡은 간판 철거하듯 사라졌다.
엄마 젖도 자취를 감췄다.
반세기 지난 지금은
거리마다 모유 수유 어머니 대신
브래지어 모델과 우유 광고판이 서 있다.
아기에게 물리면 추행,
PD에게 내밀면 돈이 된다.
같은 유방인데
어디선 음란, 어디선 예술이다.
이제 엄마의 젖가슴은
배고픈 아가의 입보다
카메라와 과태료를 먼저 의식한다.
2026. 3. 21. 15:46.
일산 향동에서
雲靜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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