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내 친구 이명래의 가을밤 감회에 답하다

雲靜, 仰天 2025. 10. 28. 15:14

내 친구 이명래의 가을밤 감회에 답하다



내 친구 이명래에게서 오늘 오전에 전화가 걸려 왔는데 안사람과 같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중이어서 제때에 받질 못했다. 진료 중간중간에 짬을 내서 전화를 하니 또 친구는 받지 않고 나중에 친구가 전화 왔을 때는 또 내가 받지를 못했다. 숨바꼭질 하다가 나중에 보니까 내 핸드폰에 그가 장염의 고통을 견디면서 적었다는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내용을 보니 나의 두 번째 졸시집을 읽고선 이런저런 감상을 적은 것이었는데, 나의 졸시들 중의 행과 행을 이어서 의미를 되살리거나 재해석 된 것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시와 같다는 느낌이다. 나의 시를 읽어도 우리가 살아온 지난 삶속에서 친구를 정신적으로 잘 알지 못하면 이런 느낌을 적어낼 수가 없다. 그는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친구다. 나 혼자만 보고 넘기기엔 아깝다 싶어서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아래에 원문 그대로 올려놓았다. 명래야 장염은 그냥 놔두면 안 된데이~한의사가 될 뻔했던 이 박사가 더 잘 알겠지만!--雲靜

2025. 1. 28. 15:17.
2호선 전철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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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화

미운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패고 싶도록 밉다.
사랑은 사랑한다는 말이 다가 아녀

동백꽃 피는 항구가 있다.
기름진 손은 씻으면 그만
형산강변에
보송보송 팥죽빛으로
피어난 외할매에게 배웠구나.

그릇은 그릇답게 쓰야는뎌
찬장에 안 쓴 그릇들
군소리 없는 자연의 가르침
그런데
큰 그릇은 작은 그릇에 담을 수 있다.
부처의 인연에 따라

막회 먹은 구파발인데
구룡포로 읽히네
쓰윽쓰윽 시름 써는 노파의 칼질과
전설이 쌓이는 그 선창가는
오동동에도 있지

그래서 포항에서 마산으로,
서울발 마산행 고속버스를 탔구나.
그 속에서
접시꽃 친구도 보고,
예수같은 아이도 만나고

참덕, 자신을 더러 다쳐도 될 끼다.
지인이라도 못된 구석은
알려주지 않더라.

시는 변변찮아도 사람인 사람으로 살아야
종교인도 마찬가지?
만질 수는 없어도
마음은 갈아 끼울수 있다.

시집살이 수년에
애기 없어 애탔던
외숙모상이 이미 치러졌다.
그래서 7년만에
하노이로 달려갔구나.
그리고 또 메콩강으로

중년과 노년을 겪으면
같은 사람이 아니구나.
마음의 입자가 달라
가라앉기에 시간차가 있다.
그러나 결국  
마침표 한점은 똑 같겠지
허재비형이나
갓방의 형수도···.

가을
결실과 수확의 계절에
말을 놓쳐버린 자는
우두커니 노을을 바라본다지만
학인으로 시민적 참여의식과 지성으로
미술 문학 역사 일인다역의
상무이

너는 백범의 얼굴 보기를
부끄러워 하지만
나는 달과 별을 벗 삼는
상문이에게 갈채를 보낸다.
사부곡을 부르는데
아버지가
제대로 선생 되었구나.
내려보실 거다.

엄마가 되어 아침마다
마산
아니 성남출신의 부인에게 도시락을
싸 안긴다니 고맙다.

장염의 통증을
상문의 2기 시집으로 달래며
25년 가실밤에 글적임

이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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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내 친구 명래를 생각하며—雲靜

오늘 오전,
네 전화를 받지 못했네.
엇갈린 신호음 몇 번 사이로
문자 한 통이 남았더구나—
장염의 통증 속에서도
내 시집을 읽고 적은 너의 감상기,
그건 네 마음의 共鳴이자
오랜 지음을 향한 위로였다.

인생과 시의 행간을 잇듯,
너는 내 언어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네가 걸어온 세월과 맞닿은,
공유된 삶의 결에서 우러난
순정한 영혼의 또 다른 이름이었네.

대학을 마친 뒤,
너는 뜻한 바 있어 중국의 한의학 세계로,
나는 대만의 學林에서 史魂을 배웠다.
사는 자리와 가는 길은 달라도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함께였다.

대포잔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인생을 논하던 숱한 시간들,
그 추억 위로
오늘도 네 글은 가을 등불로 스미는구나.

명래야,
인고와 통한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한미한 학인의 미천한 시를
시가 아닌 ‘정’으로 불러준 그 마음—
그 따스함이 지금 나의 어스름을 덜어준다.

훗날, 초야에 우리 이름 하나 남는다면
그건 오래된 拈花微笑의 마음,
동시대를 함께 건넌 시간의 숨결 속에 핀
노란 프리지아꽃일 것이다.

친구 이명래 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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