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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白 시에 借韻해서 친구의 장도를 축원!

雲靜, 仰天 2025. 9. 4. 15:28

李白 시에 借韻해서 친구의 장도를 축원!


친구가 그저께 유럽 여행의 장도에 올랐다. 안전과 행운이 여행 마지막까지 지속되어서 그가 무사히 귀국하게 되기를 비는 뜻에서 축시를 한 편 쓰기로 했다.

그런데 一路順風을 바라는 마음을 전하려고 필을 드니 돌연 내가 직접 쓰는 한시보다 차운 형식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왠고하니 詩聖 杜甫(712~770)와 함께 당나라 시대 양대 시인으로 불리는 詩仙 李白(701~762)의 시, 즉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황학루에서 광릉으로 가는 친구 맹호연을 보내다)이라는 제하로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쉬운 작별의 정을 잘 나타낸 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평성 尤韻의 칠언절구의 이 시를 원용해서 축시를 써보기로 했다. 물론 측과 운은 무시하고 쓰는 한시여서 차운이라고 하기도 거시기한 것이지만! 그 전에 먼저 이백의 이 시를 감상하고나서 원용해 보기로 하자. 꿩만 먹지 말고 알도 먹어보자는 것이다.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李白(唐朝)

故人西辭黃鶴樓
煙花三月下揚州
孤帆遠影碧山盡
唯見長江天際流

친구가 서쪽에서 황학루(黃鶴樓)를 떠나
안개 속에 꽃 피는 3월 양주(揚州)로 내려가네
외로운 돛의 먼 그림자 푸른산 속으로 사라지니
하늘 끝에서 장강(長江)이 흐르는 것만 보이네

위 시 감상에 필요한 주요 단어들을 소개하면 이렇다. 먼저, 黃鶴樓는 중국 湖北성 武昌(현 武漢의 武昌區)의 서남쪽 黃鶴山에 있는 누각을 말한다.

之廣陵의 之는 여기선 '~의'가 아니라 '가다'라는 동사이니 광릉으로 간다는 뜻이다. 廣陵은 오늘날의 江蘇省 揚州의 다른 이름이다. 양주는 벌써 수나라 때부터 운하가 있었을 만큼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업과 교통이 발달한 도시다. 이곳은 유명한 인물이 많이 난 고장인데 그 중에 전임 중공 총서기 江澤民, 현대 중화권의 걸출한 불교지도자인 星雲 스님도 양주(정확하게는 양주 안의 江都) 사람이다.

故人은 요즘 말로 친구라고 해석해도 되는데 이백의 친구 孟浩然(689~740)을 가리킨다. 煙花는 연기처럼 안개 속에 꽃이 피는 광경을 말한다.

히말라야산맥과 티베트고원 지대에서 발원하는 장강은 양자강의 다른 이름인데 길이가 무려 5,800km나 되는, 길기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다.

위 시는 중국 시문학사에서 친구를 떠나 보내는 아쉬움을 잘 나타낸 시로 유명하다. 특히 轉句와 結句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위 시를 쓸 때 이백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당시 상황과 앞뒤 내용을 종합해서 유추하면 대략 아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안개 속 노을이 자욱하고 꽃이 만발한 춘 3월, 친구 맹호연이 서쪽 지방 무창의 황학루를 떠나 배를 타고 동쪽의 양주로 떠나가는구나! 이백이 황학루에서 친구를 전송하는데 친구가 탄 배가 돛을 달고 외롭게 떠나고, 아스라이 멀리 보이는 배 그림자가 푸른 산속으로 사라져 가니, 마지막엔 양자강이 하늘 끝에 흐르는 것만 보인다. 인간의 시력에는 한계가 있다. 평균 시력이 5.0이나 된다는 몽골인들도 사라져가는 물체를 끝까지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친구가 탄 배가 시야에서 멀어져서 가물가물 거리다가 결국엔 보이지 않게 되지만 보내는 석별의 정은 끝이 없구나!

그런데 맹호연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천하의 이백이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을까? 사연이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너무 무신경한 처사다.

오늘날의 호북성 상양(襄陽) 출신인 맹호연은 40세라는 늦은 나이에 진사(進士)에 급제한 바 있지만 737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48세 때 당시 재상 장구령(張九齡, 673 혹은 678~740)이 당 현종의 실정을 비판한 죄로 치죄돼 먼 곳으로 좌천되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하고 실망한 나머지 벼슬을 버리고 자기 고향으로 낙향해서 녹문산(鹿門山, 현 湖北성 襄陽시 동남쪽)에 은거하면서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아마도 이백은 공명을 초개 같이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산 그의 기개를 높이 샀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늦게 과거에 급제해서 나라에 출사한 지 10년도 되지 않은 8년차에 맹호연이 세속을 떠나 시를 쓰면서 보냈으니 이백은 그런 逸士의 삶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맹호연이 당시 불합리한 사회 상황과 비속한 세태에 대해 증오하고 냉소하면서 세속에 영합하지 않고 수양과 함께 시문을 지으면서 보냈으니 이백 자신과 비슷한 심사였을 것이다. 둘 다 처지가 엇비슷했으니 말이다.

맹호연은 벼슬 길에 오른 후 태학에서 시를 지어 공경(公卿)이라는 이름을 떨친 걸 보면 시재(詩才)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오언(五言)시를 많이 쓴 그는 주로 산수 전원에 은둔하면서 느낀 여흥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심정을 묘사한 시가 많아서 이미 그 시대인 唐朝에 산수 전원파 시인으로 이름이 났었다.

한 마디로, 이백은 출세와 부귀영화에 초연한 문인이자 은둔하던 친구 맹호연에 대해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내가 아는 한 중국 한시 중 친구를 보내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시인의 심정이 이 시만큼 잘 표현된 게 별로 없다. 내가 이백의 이 시를 차운 형식으로 친구가 멀리 유럽 여행의 장도에 오른 것을 읊어보기로 한 이유다.

東浪東辭爭岩堂
初秋九月往歐洲
他乘的飛機雲盡
卽瑞霓在天現出

동랑이 동쪽에서 爭岩堂을 떠나
초가을 9월 유럽으로 향발하는구나
그가 탄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이내 상서로운 무지개가 하늘에서 나타났네.

爭岩堂은 친구 東浪이 나고 자란 영덕 장사 동대산 자락의 쟁암리에 있는 그의 택호다. 몇 년 전, 내가 친구의 이 집에서 며칠간 거하면서 임의로 이름 붙여준 것이다. 瑞霓의 霓는 무지개이고, 瑞霓는 상서로운 무지개를 뜻한다. 霓는 무지개를 가리킬 때 가장 많이 쓰이는 虹과 뜻이 같지만 한글음은 '예'와 '역' 두 가지로 읽는다. 특이하게 중국어로는 破音字로 두 음가가 있을 것 같은데도 ni(2성) 한 가지 발음 뿐이다.

이백이 친구 맹호연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내가 친구 동랑의 여행을 축원하는 건 사정과 맥락이 같지 않다. 교통과 통신이 오늘날처럼 고도로 발달하지 못한 1300년 전인 8세기 중엽엔 만나고 헤어지는 의미도 오늘날과 많이 다르다. 언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석별의 아쉬움이 요즘 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묵직하고 적조한 일이 많았다. 물론 떠나는 사람의 안전과 행운을 비는 것은 그때가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한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은 마음만 있으면 옛날 그 시대만큼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나도 친구를 보내는 게 일시적인 헤어짐 혹은 떠남이어서 이별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안전과 행운을 비는 마음에 방점이 놓여 있다. 내가 그의 안전과 행운을 비는 까닭은 지난 2월 내가 유럽 여행 중에 당한 악몽이 지워지지 않아서 그렇다. 친구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위 시에서 “이내 상서로운 무지개가 하늘에서 나타났네”라고 표현한 이유다. 우리는 늦어도 달포 후면 바로 볼 수 있으니까! 동랑, 잘 다녀오소!

2025. 9. 5. 23: 32.
구파발행 전철 안에서
雲靜 초고

★ 어제는 낮술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보니까 이 글에 손을 댄 것은 한창 마시면서 2차로 이동중인 저녁답이었지만 완성은 돌아오는 귀갓길 전철역 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