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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한국 미술의 대가들

雲靜, 仰天 2024. 9. 22. 20:04

내가 만난 한국 미술의 대가들


9월 22일 일요일, 가을이 막 익어가기 시작할 즈음, 아내와 함께 한국 미술 대가들의 많은 작품들을 감상했다. 서울미술관에서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I am fine, and You?”라는 기획전으로 연 전시회에서였다. 전시된 것들은 모두 서울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이니 소장전인 셈이었다.

이번 나들이에는 추사 김정희와 신사임당은 현대 인물이 아니지만 특별 출연한 것 같고, 이들과 함께 현대 한국 화단에 선 굵게 이름 석 자를 남긴 대표적인 작가들이 적지 않게 소환됐다. 신사임당, 추사 김정희, 김환기, 이응로, 유영국, 장욱진, 김기창, 이중섭, 천경자, 이대원, 이우환, 김창열, 서세옥, 정상화, 도상봉 등등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전시는 대략 세 기준으로 분류가 된 것 같았다. 작품 크기별로 전시된 부분도 있고, 작가별로도 작품을 분류 전시된 것도 있었고, 화제별로 그루핑한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중섭과 천경자를 제외하곤 여타 작가들의 작품 수는 비슷했다. 이중섭(1916~1956)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이중섭의 사랑과 우정'이라는 주제로 Special chapter의 특별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여기에는 이중섭의 가족과 사랑이야기 그리고 그의 미망인 야마모또 마사꼬(山本方子, 한국명 이남덕, 1921~2022)와 그의 아들에 관한 얘기도 소개돼 있어 이중섭의 생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전시된 작품을 일일이 설명하기엔 작품 수가 너무 많았다. 개개 작품에 대한 소개 글은 생략하고 간간이 약간의 코멘트와 함께 내가 찍은 사진들만 올린다. 사진도 모든 전시작품을 다 찍은 건 아니다. 주목을 끄는 것들만 찍었다. 그림 외에 추사, 신사임당, 이우환, 김기창, 이응노 등등의 서한과 도상봉, 정상화, 임직순 등등의 짧은 코멘트도 같이 전시돼 문인이나 화가들의 예술관이나 작품세계의 정신적 일면을 접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다만, 미리 말해 둘 게 있다. 이 전시 작품들 중에선 명작과 수작도 있지만, 이것들이 서울미술관 소장품이라 해서 반드시 우리나라 현대 미술과 전통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인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응로 화백의 작품은 사진을 찍고나서 관리 부실로 사라지고 없어서 아쉽게도 그가 박서보 화백에게 띄운 편지만 한 장 올리게 됐다.

2024. 9. 22. 20:0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이번 작품전을 기획하고 마련한 서울미술관의 기획의도다. 내가 평소 자주 얘기하는 바이지만, 화가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여타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사람 위해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우리 모두는 화가가 될 수도 있다.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I am fine, thank you! 이 졸고를 보는 그대들도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1842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아내의 부고를 들은 김정희가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애서문(哀逝文). “먼저 죽는 것이 무엇이 만족스러워 나로 하여금 두 눈만 빤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입니까”, 두 눈 뜨고 사는 동안 죽은 아내만 생각날 것이라는 소리다.
凋落(천경자, 1947년). 천경자 화백이 아직 자신의 독특한 화풍과 필법이 형성되기 전 초기 작품인데 전통적인 한국화풍이다.
개구리(천경자, 1970년대) 군집성, 엉겨붙는 암수 교배, 힘자랑 등등 개구리들의 생태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만추(김기창, 연도 미상). 대가가 되기 전의 평범한 작품이다. 평심하게 이야기하면 미술대학 한국화 전공 1~2학년 학생의 습작 수준이다
만종의 기도(김기창, 1967년). 아마도 작가는 밀레의 만종에서 힌트를 얻었던 것 같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밀레의 만종을 한국화로 재구성한 셈이다. 토속적 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남자의 손목, 발과 곡갱이의 크기 비례 등 인체는 약간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곡괭이를 원근법의 원리에서 일부러 크게 그린 것이라면 발 역시 그것과 비슷한 크기로 그렸어야 했었다. 아니면 곡괭이를 발의 크기와 비례해서 그리든가. 이 작품 역시 전성기 전의 평범한 작품으로 보인다.
자화상(천경자, 1969년). 초기의 습작이어서 그런지 선이 조악하고 날렵하지 않는데다 얼굴, 손 등 인체의 비례도 맞지 않는 부분이 눈에 거슬린다. 얼굴 분위기는 본인 냄새가 많이 난다. 후손들에겐 실례가 되겠지만 조금 혹평하면 내가 고등학교 1~2학년 때 한창 많이 그랬던 펜화의 선보다 훨씬 더 긴장감이 없다.
여인(천경자, 1974년). 바로 위 1969년의 자화상 작품에 비해 선이 상당한 속도감을 느낄 정도로 세련돼 있다. 붓놀림이 익어가는 중에 있다는 소리다. 이런 걸 보면 거의 대부분의 화가들에게 해당되는 공통적인 문제지만, 타고난 소질을 끝없이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외가 있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피카소 정도가 될까?
孤(천경자, 1989년). 천경자만의, 천경자다운 독특한 자기 색채와 조형감각이 드러난 후의 초기 작품으로 보인다.
청혼(천경자, 1989년). 얼굴의 이목구비에 독특한 그의 조형 세계가 엿보인다. 제목이 '청혼'이니 여성이 정성들여 화장한 모습을 부각시켜 그걸로 청혼자의 특징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의 의도가 짐작된다. 또 청혼을 받은 여성이니까 남성으로부터 꽃을 선물 받았을 것이라고 상상해서 꽃을 안고 있도록 그렸거나 아니면 화면 앞부분이 너무 허전해서 꽃을 한 송이 그려넣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화중의 이 여성 얼굴은 작가가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 여성들의 모습도 떠올리게 한다.
까치와 아낙네(장욱진, 1987년). 기본적인 조형언어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대담한 생략과 간략화, 입체감과 원근법의 무시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메시지도 있어 보이지만, 강조라는 점을 무시한 만큼 시선이 나무를 중심으로 네 부분으로 분산될 정도로 파격적으로 구도를 잡았다.
태양을 먹은 새(김기창, 1968년) 몸체는 붉은 색, 날개와 꼬리는 검은색. 상상 속의 새 같은데, 아마도 작가 자신의 예술적 열정과 내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회귀(김창열, 1993년) 물방울 하나를 평생 동안 그린 김창열 화백의 작품이다. 아래 그의 변에서 작가가 밝혔듯이 그는 영롱한 물방울의 사실 묘사를 넘어 그 이상의 무엇을 그리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목이 回歸인 걸 보면 이미 작품 구상 단계에서 한자가 쓰여진 화면 위에다 물방울을 그리려고 한 것 같다.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왼편 하단의 한자는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고 오브제로 사용해서,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을까? 다시 말하면 오브제들 간 의미의 조화와 합일성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사람들(서세옥, 1990년대)
1963년 이응로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그는 미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이 서한에서 나타나 있다.
십만 개의 점(김환기, 1973년). 엄청난 공력을 들인 작품이다.
무제 12-7-13(정상화, 2012년)
무제 12-5-13(정상화, 2012년)
20세기 초기 아방가르드가 나오는 이후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급기야 현대 미술은 미술인 것과 미술 아닌 것의 경계 그리고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경계가 무너졌다. 그렇게 됨으로써 미술에 대한 권위가 무너졌고 자조와 비야냥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의 자업자득이다. 정상화의 위 말은 작가의 예술 정신 혹은 철학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다. 이 우주 만물 중에 신 외에 완벽한 게 어디 있겠는가? 대충하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것도 괜찮다.
바람과 함께(이우환, 1989년) 일본의 미대 교수로서 주로 동경에서 활동한 추상화가인데 한국 작가로서는 백남준과 함께 2000년대 이전 현대 세계 화단에 이름을 올린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우환은 주로 아래로, 옆으로 그어지는 긴 선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에 열의를 보였는데 위 작품은 그 이전의 초기 작품으로 보인다.
사과 나무(이대원, 2000년)
Work(유영국, 1988년).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라는 위치에 서 있는 작가다. 산을 그린 듯한데 여전히 산의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반추상 작품으로 봐도 된다.
꽃과 여인(임직순, 1984년). 임직순은 한국 서양화단의 2.5세대로 쳐도 무방한 구상화 작가다.
정물(도상봉, 1954년) 일제시대 때 일본 유학을 갔다 온 한국 화단의 원로 작가로서 평생 정물만 그렸던 화가다. 고희동, 김관호 등과 함께 한국화단의 서양화 1세대 작가군에 넣어도 될 화가다. 일제 통치 시대와 한국 전쟁을 거친 세대여서 그런지 채도가 낮은 색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색조가 아주 가라앉아 있고 reality가 떨어진다.
활 쏘는 남자(이중섭, 엽서화 1941년). 이중섭 유작들의 예술성에 대해선 너무나 많이 알려져서 해설을 생략한다. 내가 보는 관점을 간략하게 핵심만 말하면 원초성, 역동성, 천진성과 해학성이 이중섭 예술세계의 요체라는 것만 밝히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전문적으로 소개할 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열매를 그대에게(이중섭, 엽서화 1941년)
하나가 되는(이중섭, 엽서화 1941년)
우주1(이중섭, 엽서화 1941년)
우주3(이중섭, 엽서화 1941년)
우주4(이중섭, 엽서화 1941년)
2년 전 2022년 8월, 101세로 타계하기 전 이중섭 화가의 미망인 아마모또 마사꼬
남편이 살았던 제주도를 찾은 미망인. 그녀는 한때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서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남편의 유작 중 한 점이 위작 시비에 휘말리면서 한국미술계에 실망한 나머지 꿈을 접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