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해운대 엘시티에서 또 한 번 부산과 현해탄을 품다!

雲靜, 仰天 2021. 8. 6. 12:33

해운대 엘시티에서 또 한 번 부산과 현해탄을 품다!

 

여행 3일째, 우리는 부산 해운대로 달렸다. 등장인물은 교체 없이 어제의 네 사람 그대로다. 역할도 바뀐 게 없다. 볼거리를 정하고 길과 먹거리를 안내하는 것은 기사가 아닌 조수 몫이다.

 

나는 해운대엔 과거 40여 전 고등학교 시절에 몇 번 가 본 뒤로 대략 십년 주기로 한 두 번씩 들른 바 있다. 갈 때 마다 변화가 너무 많아 극심한 상전벽해를 느끼는 곳이다. 이번에는 더 심했다. 마치 미국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이나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해변에 온 기분이 들 정도다.

 

최종 행선지는 멸치와 미역으로 유명한 기장! 우리는 송정을 거쳐 기장으로 가기 전에 해운대의 전체상을 내려다볼 생각으로 '부산 X the SKY' 전망대로 올라갔다. 이곳은 지상 100층으로 총 높이가 무려 380m나 되는 초대형 고층건물이다. 지상 1층에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100층까지 논스톱으로 올라가면 56초 걸린다. 380m를 단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오르다니 놀랍다! 높이에 비하면 정말 순식간이다. 우리의 건축 기술력에 찬탄할 뿐이다.

 

100층 전망대에서 부산시 방향의 해운대 일대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쪽빛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면 현해탄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부산 전체가 보이진 않아도 부산을 내가 그려내는 상상의 뜨락으로 불러들였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맹하의 뜰속으로!

 

사실, 내게 부산은 추억과 애정이 남다른 곳이다. 유소년기엔 포항, 안강, 청하 일대가 나의 인식적 성장판을 확장하게 만든 곳이었다면, 청소년기엔 부산이 나의 눈을 열어준 곳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 옛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토요일이 되면 가끔씩 오전 수업을 마치고 포항 기차역에서 동해 남부선의 부산행 기차를 타고 이 노선의 종착역이었던 부산 부전역에 내려서 부산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놀러 다녔고 그곳의 친구와 어울리기도 했었다. 또 그해 겨울 방학 때는 서면과 광안리 해수욕장에 있던 어릴 적 절친(김홍엽)의 누님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부산을 헤집고 다녔다.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는 졸업식이 임박했을 때까지 삼통 학교를 가지 않고 아예 전포동에서 하숙을 하면서 지낸 적도 있다. 불현듯 그때 같은 방에서 함께 하숙한 친구 정연대도 얼굴이 떠오른다. 

 

이처럼 나는 수년에 걸쳐서 친구가 살았던 영도와 서면은 물론, 동래, 광안리, 남항동, 자갈치시장과 광복동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부산으로 인해 부산보다 더 넓은 곳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10대 때 부산을 가슴에 품었던 셈이다. 그 시절 내가 경험한 얘기나 추억담을 소개하려면 별도의 여러 장이 필요해서 여기선 생략한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자외선이 많고 오존층이 두터워서 그런지 대마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 대마도를 여행하면서 대마도 북섬의 '한국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부산이 보이는 것을 직접 확인한 바 있지만, 보통 부산에서도 대마도가 가물 가물거리면서 육안에 들어온다는 건 상식화 된 사실이다. 이번에 다시금 부산을 내려다보니 내가 20대 때 서울을 주된 활동무대로 거처를 정하고 나면서부터는 자주 와보지 못한 사이 부산이 인구와 물리적으로 확장되고 문화적으로도 다양화 돼 있음을 실감했다. 이 점은 당장 우리가 서 있는 이 건물 안에서도 그 일단의 편린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대마도를 넉넉히 품고 있는 검푸른 현해탄을 나는 스물일곱 살 대학 시절 여름방학 때 부관페리에 몸을 실어 건너간 적이 있다. 어느덧 30년도 더 지난 까마득한 일이다. 당시 달포가 조금 못 된 일본 배낭여행에서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역사의식과 안목이 활연대오 하듯이 열린 체험을 하게 됐으니 나에겐 그 시발점이 된 현해탄이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987년 7월, 27세 때 처음으로 일본 배낭여행을 결행하면서 첫발을 내디딘 한일부관페리 선상에서 출항 직전의 한 순간. 여행자유화 시절이 아니었던 당시는 아무나 해외로 나갈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쉽게 득할 수 없었던 "일본국 비자"는 당시 국회의원으로서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간사였던 박경석 의원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새삼스레 고마움을 또 한번 더 느낀다.

 

나는 일찍부터 현해탄이 일제시대 수 많은 조선인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거나 혹은 증오와 한을 가슴에 품고 오가던 길목이었던 점에 주목했었다. 근대 일본의 명장 도고 헤이하찌로우(東鄕平八郞, 1848~1934) 제독이 일본해군의 주력을 공격하기 위해 멀리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온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침시킴으로써 러일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하게 된 곳이 일본에선 '쯔시마(対馬)해협'으로 불리는 바로 이 검은 바다 현해탄의 북서쪽 해역이었다. 

 

그 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 전 쯤에 부산의 오륙도 입구 쪽에 오륙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친구의 고층아파트에서 다시 한 번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현해탄을 추억한 적 있다. 이번에 세 번째로 또 한 번 현해탄을 가슴에 품는다. 이 기운은 앞으로 또 10년 이상이 갈 것이다.

 

 

대한해협의 현해탄 방향이다. 즉 고층건물 뒤 11~13시 방향의 바다 쪽으로 계속 가면 바로 현해탄이 나오고 일본이 나온다는 소리다.
러일전쟁의 명장으로서 일본인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 도고 헤이하찌로우 제독. 일본인들은 그를 군신의 한 사람으로 추앙하지만, 그는 영국의 넬슨 제독 보다 이순신 장군을 더 존경했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99층의 SKY GARDEN 식당. 창가 자리에 앉아 부산항을 뒤로 하고 현해탄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주종이다. 값은 대체로 파스타가 25,000원과 35,000원이고, 스테이크는 가장 싼 것이 55,000원, 1인분에 10만원대가 넘는 것도 있다. 전망대 입장권이 1인 27,000원인데 표를 사기 전에 미리 이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는 패키지권을 사면 입장료를 할인 받을 수 있다.

 

엘시티 98층에선 뜻밖에 전시돼 있는 이대선, 이원주 두 화가의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추상계열의 실험성 짙은 몇몇 회화작품들, 조각작품들과 작가의 노트까지 찍어서 붙여놨으니 이 작품들에 대한 감상은 이 글을 읽는 이들 각자에게 맡기겠다.

 

 

X the SKY빌딩에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볼 수 있는 비데오 방영 내용이다.

 

식사 후, 엘시티 건물에서 나온 우리는 기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철강왕이라 칭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을 청암 박태준이 태어난 기장은 같은 동해안이라도 감포, 구룡포, 포항, 칠포, 월포 등등 울산 이북의 여러 해안들과는 지형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바닷 풍경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여도 해안이 협소한 게 흠이다. 해안길과 도로 중간 중간의 공간들이 좁아서 자동차가 다니고 머물기엔 많이 불편하다. 호쾌하고 가슴이 넓기로는 둘째가라면 지하에서 섭섭해 할 청암이 이런 옹색하고 협소한 곳에서 태어났다니 풍수지리설은 객관적, 과학적 지식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단정하기 전에 아마도 기장 역시 내가 모르는 더 넓은 곳이 있을 것이다. 이곳에 면해 있는 드넓은 동해바다가 있듯이!

 

암튼 눈으로는 바깥 해안과 길을 보면서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상념에 젖은 가운데 기동에 시간을 적지 않게 빼앗기면서 기장 주변 해안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우리를 반겨준 건 전복죽으로 유명하다는 집에서의 저녁식사였다.

 

 

전복죽이 유명하다해서 시켜서 먹어봤더니 맛도, 내용물도 포항이나 구룡포 보다 훨씬 못하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옛말이 멀리 있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 이 저녁 식사로 오늘의 여행은 이쯤에서 접기로 했다. 연로하신 장인어른의 체력에 대한 고려도 한몫했다. 남은 건 다시 옮겨갈 베이스캠프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 서산으로 해가 설핏해지고 땅거미가 질 때쯤, 한 사람은 다시 운전대를 잡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조수가 돼 부산의 처남 집으로 향했다.

 

2021. 8. 6. 12:30

부산 해운대

엘시티 99층 식당 SKY99와 100층 전망대와 기장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