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성의 창작 판소리 : 1980년 광주에 온 흥보가족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is long) 소리꾼과 듣는 이들은 모두 예외 없이 죽을지라도 흥부가는 한민족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살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지닌다는 것 외에 장르는 달라도 모방과 창조행위라는 게 예술의 또 다른 특징이다. 요컨대 미적 법칙에 따라 질서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만, 미메시스(mimesis)가 모방의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하지만 미적 형식을 통해 예술가가 추구하고자 한 내적 질서와 의미를 담지 못하고 단순한 모방과 모사에 그친다면 예술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
그저께 고재성이라는 남도의 한 소리꾼이 나에게 자신의 판소리 한 자락을 보내왔다. 그 소릴 들은 바 고재성은 인간의 정, 세상사의 선과 질서를 의식한 변칙의 예술가다. 창조는 변칙을 내핵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변칙은 창조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흥부네 가족을 처자식 모두 타임머신에 태워 1980년 5월 23일 광주 양동시장과 2007년 8월 한양의 광화문 광장에 호출한 탈시간적, 탈공간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난리 천지인데 무슨 소리타령이냐고 핀잔을 줄 이도 있겠지만, 고재성이 흥부가를 창한 것은 2007년 8월이었다. 그의 이 판소리 가락에서 善惡과 美醜는 전체의 하모니를 위한 하부 요소가 되듯이 놀부의 언사가 유쾌하지 않는 내용일지라도 흥부와 대비되면서 勸善이라는 메시지를 위해 기꺼이 악역을 마다 않는 결과 상위 층차에서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예술은 인간이 세계와 정서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도 정의되듯이 고재성도 판소리의 흥부가, 민요 진도아리랑, 품바의 각설이타령의 형식을 통해, 또 흥부놀부 형제를 통해 인간의 욕심과 차별이 善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일깨움은 물론, 광주민주화운동과 FTA에 관해 민중들과 소통하려고 했다. 그의 판소리 흥부가는 사람의 情과 正義, 민중, 민족주의로 소실점이 모아진다.
해학과 풍자를 형식으로 삼은 고재성 창의 소실점은 사람의 정과 정의이지만, 정치적인 영역으로 조금 외연을 넓히면 '민중', '민족', '조국통일'로 귀결되기도 한다. 판소리 대사 중에 “해방광주만세!”로 기를 모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헝가리가 낳은 걸출한 철학자이자 미학자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acs, 1885∼1971)가 예술을 “인류의 기억”이라고 정의한 대로 고재성은 지난 세월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집단기억을 흥부가를 통해 되살려 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안고 있는 당대 광주의 뼈아픈 집단기억까지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내려고 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판소리의 흥을 식게 만드는 군더더기다. 음악은 글과 말이 아니라 귀와 가슴으로 듣는 게 우선이다. 百聞而不如一聽이다. 다만, 노파심에서 하는 얘긴데 “예술을 도외시 하는 자는 그 예술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말만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이 말은 서상문 본인이 한 말이다. 30여 전 대학시절에 읽은 미학 관련 책을 다시 끄집어내어 보니 책 속에 그 시절 독서하면서 그렇게 메모로 적어 놓은 것을 오늘 아침에 봤다. 당시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논하면서 예술성을 강조한 토마스 만(Thomas Man)이 자신의 저서 『예술가와 사회』에서 “정치를 무시하려드는 자는 정치로부터 무시당하게 마련이다”라고 한 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암튼 누가 했든 간에 평소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을 많이 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군소리다.
소리꾼을 소개하지 않고 판소리를 그냥 들을 순 없다. 고재성은 예술가이자 교육자이다. 남도 가락의 신명이 몸에 배에 있는 소리꾼으로 보인다. 현재 전남 진도실고의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 교육자다. 교육자도 그냥 평범한 교육자가 아니라 1989년 전남 담양 창평고 해직(1989년)된 뒤 전교조 전남지부 문화부장(1989~92년)을 역임한 바 있고, 지금도 자본과 결탁된 지역 기업이 나서서 추진하고 있는 진도항의 무분별 난개발에 저항하고 세월호침몰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해오고 있는 사회참여형 지식인이자 예술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2MYBQcnQVZQ
조만간, 소리와 예술의 본향 남도에서 직접 그의 구성진 소리를 육성으로 들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때쯤이면 그의 소리는 겨우내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하늘로 사람의 情과 정의의 기운과 함께 날아오를 것이다. 예술이 길듯이 판소리도 영원할 것이다.
2021. 1. 24. 08:08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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