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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부주석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과 국내정치권의 저자세

雲靜, 仰天 2012. 3. 31. 06:29

중국 국가부주석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과 국내정치권의 저자세

 

서상문(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지난 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과 중국정부가 한국전쟁을 주객전도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한국전쟁 참전 중국군 노병들에게 “위대한 抗美援朝戰爭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으로서 “제국주의가 중국인민에게 강요한 것이었다”고 발언했던 것이다. 중국외교부도 이 발언이 그의 개인적 사견이 아니라 중국정부의 정론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도 국내 정치권은 한껏 몸을 낮추고 있다. 미국이 전후 한반도에서 중국과 일본세력을 대신한 이래 사라진 듯 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잔영을 본다.

 

 

2010년 10월 25일, 중국 항미원조6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시진핑 부주석

  

중국외교부가 강조했듯이 시 부주석의 발언내용은 중국정부의 정론이다. 이 점은 국내외 전문가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왜 이 시점에 새삼스럽게 이 사실을 공개 발언 했는가 하는 그의 동기와 우리의 대응자세다. 그의 발언은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 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수차례 촉구한 정치개혁 여부를 둘러싸고 찬반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정치개혁 주장은 곧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 후의 당내 역학관계와 맞물려 있고, 당내에 ‘정치개혁파’를 중심으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당내 자파권력 안배문제를 염두에 둔 시 부주석의 발언은 한국전쟁에 대한 중공 당론과 참전노병들을 정치적 ‘오브제’로 활용하면서 중북혈맹을 강조한 성동격서인 셈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가 계산에 넣은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 길들이기”라는 부차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상황으로 파생된 것이다.

  

시 부주석이 노린 중국국내 정치적 동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왈가왈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다만 국가최고 기밀을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그가 한국전쟁의 발발원인과 성격을 잘 알면서도 사실을 왜곡한 것은 그만큼 한국을 안중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방증하고, 그런 그가 장차 행할 한반도정책이 심히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특히 발언의 시점이 공교롭게도 한국정부가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의장국으로서 환율문제를 거론하고,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대중 압박을 시도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한미관계의 이완을 겨냥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다목적적 동기마저 감지된다.

  

1950년 5월 15일 마오쩌둥은 남침전쟁을 동의해줄 것을 요청한 김일성에게 중국은 “타이완을 해방한 후에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스탈린이 이미 한반도 적화통일문제에 동의한 이상 준비중인 타이완해방작전을 뒤로 미루고 한반도 무력통일을 제1순위로 두기로 했다”고 하면서 김일성의 3단계 침공방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었다.

  

미국의 침략에 대항해 중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개입했다는 “抗美援朝戰爭”논리도 견강부회다. 중국은 먼저 남침을 승인해 이웃민족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놓은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가. 침략을 응징하려는 유엔의 결의에 따라 파견된 유엔군은 북진시 중국정부에 중북국경지역에서의 중국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한다고 통보했다.

 

더군다나 당시 중공 당내는 물론, 국내 정치권에서도 참전 반대의견이 대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는 중소동맹 체결로 과거 장졔스(蔣介石) 정권이 소련에게 양도한 국가권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스탈린에게 신뢰를 보여줌과 동시에 전쟁상황을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참전을 강행했다.

  

중국이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모순이다. 중국은 ‘정의의 전쟁’을 강대국이 패권을 추구하기 위해 정의로운 약소국을 침략했을 때 이에 항거하는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오가 역사를 현실정치에 이용하는 중국의 오랜 전통을 이어 받았듯이 시 부주석도 마오처럼 역사문제를 현실정치에 활용하려고 했었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자세가 문제다. 중국이 우리를 길들이려고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 가에 따라 스스로 중국에 다시 한 번 길들여지게 되는 상황이다. 국내 정치권은 중국과의 관계에 좋을 게 없다는 이유로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 많고 많은 정치인들 가운데는 오직,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대표 한 사람만 시진핑 발언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비판했을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그렇게도 기개가 없는가?

 

 

시진핑의 발언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이회창 대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적화(赤化) 침략전쟁에 300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고 전국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던 한국과 한국 국민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비판하면서, 중국 측에 해명과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만약 한국 정치권에서 티베트와 대만과 관련해 중국정부의 입장과 다른 발언이 나오면 중국의 당정지도자들이 양국관계에 좋을 게 없다는 같은 이유로 대응을 자제하겠는가? 답은 스스로 자문해보라. 국내정치권은 역사주권을 지키겠다는 기백은커녕 시 부주석 발언의 배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해 매우 안타깝다.

 

2010. 10. 30

삼각지 국방부 연구소에서

雲靜

 

위 글은 2010년 당시 한국해양전략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