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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팔아먹은 조선 친일매국노 귀족들의 일본 단체관광

雲靜, 仰天 2020. 3. 15. 13:00

나라 팔아먹은 조선 친일매국노 귀족들의 일본 단체관광

 

한일강제병합 조약을 맺는데 앞장 선 일제시대 친일 매국노들은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부귀와 권력과 온갖 호사를 누렸다. 그들은 일본의 주선으로 단체로 일본관광여행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이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들이 공개됐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집어 삼킨 그해 1113일, 이완용을 위시해 국권을 넘긴 일제 앞잡이들이 부부동반으로 관광차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를 방문해서 단체로 기념 촬영한 것이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1910년 11월 3일 조선의 귀족부부 동반 관광단이 도쿄에서 단체로 찍은 기념촬영 사진이다. 원래 倂合記念朝鮮寫眞帖朝鮮貴族內地觀光團제목으로 실린 것인데,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매달 회보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인 민족사랑20202월호에 재수록 돼 있다.  

 

 

사진에 나와 있는 인물 중 원 안에 있는 2명을 빼면 남녀 모두 총 60명이다. 단체 사진 속 오른 편 원내 인물은 이완용 같아 보인다. 그들 중 여성이 19명이고, 남성이 41명이다. 사진 속에는 대부분 한국인이지만 일본인도 눈에 띈다. 일본군복과 경찰제복을 입은 이들이 일본인이다. 그들은 경성에서 온 친일 귀족 부부들의 단체관광을 주선하고 이들을 인바운드로 맞아 향응 제공을 주최할 호스트와 관련된 인물들일 것이다.

 

19명의 여성들 중엔 한복 차림을 한 이는 17명이고, 양장을 한 여성이 2명이다. 한복 차림의 여인들 가운데는 머리 올린 화관과 궁중에서 사용된 한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선 몇몇은 왕족이었거나 혹은 궁녀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암튼 치마 저고리 보기가 부끄럽다.

 

사진 속 인물이 다 한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원래 일제로부터 매국의 대가로, 일제의 강제병합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1”, “2급을 포함해 귀족 작위를 받은 자는 총 76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정1품과 종1품 이상의 고관이었고 기존의 양반계급과 완전히 다른, 일제가 천황가의 친척과 명치유신에 공헌한 이들을 중심으로 만든 일본의 華族을 본 따 위촉한 새로운 지배층의 귀족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선 매국노는 거의 예외 없이 모두 지식인층, 부유층, 권력층이다. 이완용은 당대에 가장 똑똑하기로 이름난 촉망 받는 엘리트였는데, 국권을 팔아넘기는 데는 사회 저층의 인물이 아니라 늘 많이 배우고 뭔가 안다는 놈들이 그런다는 걸 유감없이 보여주는 예다. 결국 그는 일제의 대한제국 강점에 주도적으로 나선 대가로 백작 작위를 하사 받았다. 아래 사진은 이완용이 작위를 받고 19101213일 발간된 朝鮮貴族列傳에 실려 있는 모습이다.

 

 

『 朝鮮貴族列傳 』 표지

사진 속 이완용의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훈장들은 모두 조국과 한민족의 피와 목숨을 팔아넘긴 대가로 받은 것이다. 이완용의 후손들은 이 흉장들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흡족하고 자랑스러운듯 광영이로소이다!"?   

 

 

외적이 침략해 국권을 침탈하려 할 때는 통상 전체 자국민 중 2~3할 정도가 외적에게 적극 협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머지 2~3할은 저항하고, 또 나머지 4~6할은 침묵한다. 나의 이 말은 히틀러 시대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1945)가 한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괴벨스가 말한 것은 정확히 이랬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면 그 나라 국민은 자동적으로 세 부류로 나뉜다. 한쪽에는 저항세력(resistance)이, 다른 쪽에는 협력세력(collaborator)들이 있고, 그 사이에는 머뭇거리는 대중(masses)이 있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직후 대한제국에서는 최익현, 황현, 한규설, 이범진, 이상설 등등 많은 지식인들 및 관료층 등 14만여 명이 이 조약이 일방적 압력에 의해 이뤄진 늑약이라며 혈서를 남기고 자진하든가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국내외에서 저항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전체 2000만 명의 대한제국의 인구 중 권력의 최상층에서 국권을 거래한 76명과 그 권속을 포함한 나머지 1할 정도가 고위층과 하급 관료로서 쌍수 들고 일제 강점을 환영하면서 협력했으며, 나머지 대다수의 백성들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선 평소처럼 방관자로 살았다. 숱한 외침을 받은 현대 중국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보였다.

  

아마 오늘날엔 더 많은 협력자들이 나타날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이, 아니 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어떤 강대국이 우리 강역을 짓밟고 나라와 국권을 빼앗으려고 하면 2에서 3할 이상은 그들에게 협력하고 앞잡이가 될 것이다. 지금 국내에 평소 언행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21세기판 매국노들이 득실거리는 걸 보면 이 같이 추론된다. 그들은 이곳이 한국 땅인지 일본 땅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나부댄다. 과거 을사늑약 직전 상황처럼 일본 천황의 생일과 자위대 창설기념식에 참석하질 않나 너무 국민을 우습게 알고 설쳐대고 있다. 그들에 대한 싹쓸이가 언제나 가능할지, 아니면 오히려 그들에게 또 한 번 당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신을 똑 바로 차리고 살아야 할 소이연이다.

    

아무튼 1910년대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이 매국노들은 일제로부터 이런 단기간의 일본관광만 제공 받은 게 아니라 천황으로부터 일제에 협력하는 것에 필요한 각종 귀족의 직위를 하사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로부터 재산까지도 어마어마한 거금을 받았다. (국내에는 일부 친일파들의 재산 정도가 잡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친일파 전체의 총액수는 불비함) 그 근거는 1910822일 대한제국의 內閣總理大臣 이완용과 일본 명치정부의 조선통감(統監)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사이에 체결된 이른바 불법적인 한일병합조약”(한국명칭으로는 韓日倂合條約또는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 일본명칭으로는 韓国併合する条約)이었다. 1910822일에 조인된 이 조약은 829일에 발효 공포돼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친일 매국노들에 대한 일제의 각종 예우 혹은 대우는 총 7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 한일병합조약중 제3, 4, 5조의 3개조에 명기돼 있다. 그 한국어 원문은 아래와 같다.

 

3.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기 지위를 응하여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누리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세비를 공급함을 약속함.

4.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 이외에 한국 황족 및 후손에 대해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누리게 하고, 또 이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함을 약속함.

5. 일본국 황제 폐하는 공로가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는 동시에 은금(恩金)을 줌.

 

상기 조항에 근거해 매국노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선 평생을 부귀영달을 누리면서 살다갔다. 이제 당시의 친일 매국노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사라졌지만 그들은 자기 당대만 아니라 3~4대의 후손들에게까지 대를 이어 호의호식하도록 만들어 놓고 죽었다. 그 뒤 반세기가 넘도록 그들의 아성은 조금도 무너지지 않다가 당사자들이 다 죽고 난 뒤에 우여곡절을 겪고 겨우 친일파들의 재산환수가 이뤄졌다. 그마나 그것도 국민적 합의가 모아져 전체가 아닌 아주 극소수 친일 후손들이 대상이 돼 진행되기도 했지만 생각만큼 만족할 만큼 호쾌하게 성과가 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에 두 달 가까이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경제까지 휘청거리고 국민들의 삶도 엄청나게 위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도 한참 지난 과거사지만 친일파들의 단체 관광사진을 접하게 되니 새삼 세상이 나의 이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또 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솟아오른다. 코로나 바이러스 균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게 내부의 민족적 바이러스인 매국노들이다. 이스라엘 민족처럼 운명공동체적 친연성과 일체성이 높아지지 않으면 바이러스는 일시적이지만 매국노들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2020. 3. 15. 12:59

북한산 淸勝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