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맹신하는 ‘合北派’의 두 가지 대북 신화
서상문(한국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한국 사회에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두 가지 대북 ‘신화’가 있다. 하나는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과 주한미군의 위협 때문에 시작된 ‘자위적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선의로 대하고 경제협력과 지원을 확대하면 북한도 선의로 호응하여 핵을 포기하고 평화의 길로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령처럼 한반도 상공에 떠도는 이 주장과 믿음은 오랫동안 정치권과 일부 지식인 사회에서 반복되어 왔지만, 지난 수십 년의 역사적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허약한 신화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이 있으니 또 다시 '상식'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째, 북한 핵은 단순한 방어용 무기가 아니다. 알다시피 북한의 핵개발은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소련의 지원 아래 영변 핵시설의 기초가 만들어졌고, 1980년대에는 플루토늄 생산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북한이 말끝마다 선전하던 소위 ‘미제의 직접적 핵위협’이 완화된 뒤에도 핵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속화됐다. 반면, 미국은 1991년 한반도에 배치했던 전술핵을 전면 철수했다. 같은 해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만약 북한 핵이 정말 주한미군 핵위협에 대한 방어책이었다면, 이 시점에서 핵개발은 중단되거나 최소한 동결됐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1994년 제네바 합의로 겉으론 잠시 동결하는 듯했으나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결국 북한은 2003년 다시 NPT를 탈퇴했고,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후 2009년, 2013년, 2016년 두 차례, 2017년까지 연속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미국의 전술핵이 철수한 뒤 15년이 지나 첫 핵실험을 한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즉각적 자위 수단’인가? 북한 핵은 외부 위협에 대한 단순 대응이 아니라, 정권 생존과 협상력 강화를 위한 “전략 자산”이라는 해석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둘째, “우리가 잘 대해주면 북한도 변한다”는 신화 역시 이미 역사가 부정한 지 오래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햇볕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남북관계는 전례 없는 화해 국면에 들어섰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 추진됐다. 대규모 식량·비료 지원도 이어졌다. 햇볕정책을 시행한 김대중 정권 때만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한 금액이 무려 8567억 원(약 6억 9102억 달러)에 달했고, 여기에다 현대 아산 등 기업이 북한에 개별적으로 지원한 금액을 더하면 1조원에 육박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이전 김영삼 정부 시절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아진 금액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7년에는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됐다. 남한이 보여줄 수 있는 선의와 인내는 상당 부분 많이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북한은 무엇을 했고 우리에게 돌아온 건 무엇이었던가? 1998년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1호를 발사한 데에 이어, 2002년에는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드러나 ‘제네바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2006년에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첫 핵실험까지 실시하지 않았던가? 남북 대화가 가장 활발했고 경제협력이 가장 빈번했던 시기에 북한은 핵무장을 완성 단계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처럼 선의가 핵포기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현실 앞에서 무너졌다. 한 마디로, 종북 세력이 북한 정권에게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돌려 말하면, “북한이 미군 때문에 핵개발 한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맹목적인 신화일 뿐이고 남한이 북한에게 “잘 대해주면 변할 것”이라는 믿음도 역사적으로 검증이 안 되는 허구적인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북한의 대남 태도 역시 ‘우호에 대한 호응’과 거리가 멀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2010년에는 천안함 폭침으로 우리의 금쪽같은 자식들인 46명의 장병들이 전사했다. 그해 북한은 연평도 포격까지 도발했다. 남한 내부에서 대화와 지원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계속되던 시기에도 북한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군사도발을 주저하지 않았다. 체제와 전략 계산이 선의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것이 북한정권의 생존방식이자 관성인데 과연 북한이 앞으로는 그러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물론 대화와 교류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남북한 간에도 외교는 늘 필요하고, 긴장 완화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외교는, 특히 공산권 국가에 대해선 상대의 속내까지 정확히 볼 때만 의미가 있다. 환상 위에 세운 정책은 오래갈 수 없다. 북한은 도덕적 감화를 받아서 움직이는 체제가 아니라 냉정한 이해관계와 체제유지와 권력 논리로 움직이는 체제다. 핵은 그 체제의 핵심 보험증서다.
이제는 두 가지 신화에서 벗어날 때다. 북한 핵을 미국 탓으로만 돌리는 단순화도, 우리가 웃으며 손 내밀면 상대도 변할 것이라는 낭만적 믿음도 모두 현실과 맞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냉정한 힘의 균형, 철저한 억지력, 그리고 현실 인식 위에서만 지켜질 수 있다. 북한정권은 핵을 단순한 “방어용”이 아니라 정권 생존을 보장하는 전략자산으로 인식한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은 혁명의 보검”, “핵은 절대 포기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말 그대로 대외 협상용 카드 핵보유로 제재 완화와 함께 지원을 보장 받음과 동시에 “선군정치”, “핵무력 완성” 따위의 구호로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이중적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북한 정책의 핵심은 핵개발 보다 체제 유지와 권력 생존이 최우선이다.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은 공산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강경 vs 유화”의 이분법이 아니라 억지력(군사·동맹), 제한적 협력(인도·경제), 조건부 협상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직도 이 신화를 붙들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과거의 명명백백한 사실까지도 애써 눈 감으면서 자신들이 믿는 ‘신화’를 끝까지 고집하는 건 뭔가? 통일엔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 사이에 하나 뿐인 귀한 생명들이 죽어가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그들을 종북파가 아니라, 북한과 합치려는 ‘合北派’나 ‘聯邦制派’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재명의 대북 무인기 사과에 북한 김여정이 긍정적 평가를 하자 정부가 기대감을 표명한 것에 대해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장금철이 “멍청한 바보들의 희망 섞인 해몽”이라고 조롱했는데 이번에도 혼자서만 “멍청한 바보처럼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2026. 4. 23. 12:52.
일산 향동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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