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로 읽는 언어 이야기 20: 중국어 “獻忠事件”의 중국적 의미
이른바 “한자 문화권”이라는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중국 이외의 나라엔 과거 중국에서 받아들인 한자 자체가 뜻이 변한 것도 있고, 어법과 운용이 달라서 한자의 자형은 같아도 뜻이 완전히 다른 것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자세하게 밝힌 바 있다.
한자를 아는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중국의 일부에서 통용되고 있는 “獻忠事件”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어떻게 이해될까? “충성을 바치는 사건”으로 인식되기 싶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이와 정반대되는 사건을 말한다. 오늘은 이 용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근년 들어 중국의 언론매체들에서, 특히 인터넷 (중화권 유투브, 커뮤니티, SNS 등)에서 “獻忠事件”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헌충사건”은 무차별 살인, 보복성 폭력, 사회에 대한 분노 표출 등의 ‘묻지마 공격’(random attack)과 유사한 사건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용어다. 예컨대 “어느 지역에서 또 헌충사건이 발생했다”(某地又發生獻忠事件)라고 하면 “어느 지역에서 또 무차별 살인(혹은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극단적 폭력 사건, 묻지마 살인사건도 똑 같이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獻忠化(헌충화)”란 표현도 최근 중화권 인터넷 상에서 등장한 말로, “獻忠事件”과 같은 맥락에서 쓰이고 있는 용어다. 중군인들 사이에 사회가 점점 “무차별 폭력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방향으로 변해간다”는 인식, 즉 단순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점점 ‘현대판 장헌충화’되고 있다”라는 비관적, 풍자적 표현이다. 맥락은 “最近有點獻忠化了”(“요즘 사회 분위기가 조금 험악해졌다”), “到處都是獻忠”(“어디서든 무차별 사건이 터진다”)라는 식으로 소문이 퍼져서 실제보다 위기감이 과장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중국에서 최근 몇 년간 흉기 난동, 차량 돌진, 개인적 분노로 공격하는 사건들이 자주 보도되거나 퍼지면서 이걸 묶어서 일부 네티즌이 “獻忠事件” 또는 “獻忠化”라고 부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어나 일본어의 '묻지마 범죄'나 '아키하바라 사건'에 해당된다. 한 마디로 인터넷 공간에서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는 일종의 은어이자 인터넷 용어다. 인터넷상에서 형성된 은어라는 건 곧 이 단어가 중공의 검열 회피용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사건들을 두고 사회적 범죄일 것이라고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獻忠'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할까? 여기에는 중국만이 가지는 역사상 특정 인물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것에다, 중공 일당 전제라는 정치 사회 체제의 특성이 숨어 있다. 중국적 배경과 밀접한 용어라는 소리다.
원래 중국역사에서 獻忠사건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명말 혼란기 張獻忠이라는 인물이 중국의 사천(四川)지역에서 벌인 통치, 폭력, 학살, 전쟁을 통틀어 부르는 역사용어다. 그러니까 현재의 “獻忠사건”은 역사의 “張獻忠事件”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장헌충을 빗댄 표현이다.
그런데 수많은 역사 인물들 중에 왜 하필 장헌충이 사건명으로 인용될까? 이유는 현 중국인들에게 장헌충이 “대량 학살의 상징적 인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장헌충사건이란 明末 농민 반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혼란기에 반란을 일으킨 장헌충이 사천으로 들어가 1644년 전후 대서국(大西國)을 세우고 사천 일대를 지배하면서 폭력, 대규모 주민 학살, 도시파괴를 일삼은 사건들의 총칭이다. 이로 인해 “사천에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기록까지 존재할 정도로 인구 급감이 일어났다. 이와 관련해서 “屠蜀”(촉을 도륙함), “殺人如麻”(사람을 삼베처럼 베었다)이라는 과장된 말들이 남아 있다.
이처럼 지금까지 중국 역사학계에서 평가된 장헌충은 사천 인구가 감소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인 극단적인 학살자다. 물론, 최근 대두된 역사수정주의의 관점으로는 장헌충이 극단적인 살인자까지는 아닐 수도 있다. 수정주의 학자들이 장헌충의 민간인 학살 규모가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당시 청나라 정권이 정당성을 위해 장헌충을 “악인”으로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천 지역의 인구 감소 원인은 전쟁, 기근, 전염병, 청군(淸軍)의 진입과 전투였다고 새로운 학설을 내놓고 있다.
그러면 실제로 중국에서 “獻忠事件”, “獻忠化”는 어느 정도로 빈발할까? 헌충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집계된 공식 통계(월 몇 건, 하루 몇 건)는 존재하지 않아서 정확한 발생 횟수를 말하기 어렵다. 앞서 말했듯이 “헌충사건”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범죄를 분류한 게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통용되는 은어다.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언론의 특성상 개별 강력범죄가 전국 단위에서 자세하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무차별 공격, 사회 불만 관련 사건은 거의 보도가 통제되어 보도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월 평균 ○건” 같은 수치는 애초에 산출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국의 유력한 인터넷 포털 싸이트에서 “무차별 살인” 또는 “묻지마 살인”(“无差别杀人”或“随机杀人”)이라는 단어들을 볼 수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헌충사건”과 “헌충화”는 실제 중국정부가 인정하는 용어가 아니라 사회 불안과 분노를 표현하는 용어인데, 중공의 인터넷 검열 환경 때문에 은어 형태일뿐 실제 범죄율과는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다. “獻忠”이라는 단어가 생기면서 여러 사건들이 하나의 범주로 묶이는 경향이 있다. 직접적으로 “무차별 살인”이라 쓰기 어려워서 은어로 우회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체감 빈도(비공식 관찰)라는 측면에서 해외 연구자·언론·SNS 관찰을 종합하면 작은 사건까지 포함해서 전국의 모든 지역마다 거의 “매일 어딘가에서 1건 이상” 일어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넓디 넓의 중국에 전국적으론 얼마나 많은 묻지마 사건들이 일어날까 감이 집힐 것이다. 최근 중공 내부 통신에 전파된 비밀사항은 매일 일어나는 헌충사건은 수백 건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 달 3월 29일 북경시(房山區)에서 발생한 불도저 사회보복사건(鏟車報復社會案)의 경우는 범인이 먼저 50여 곳의 음식 판매 노점에 독극물을 던지고 바로 불도저로 시장을 덮쳐서 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최근 “獻忠”으로 불리는 사건 유형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예컨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격한다는 점, 길거리 흉기 난동, 지하철·학교 주변 공격,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공격한다는 점이다. 즉 특정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분노를 발산시키는 것이다. 또한 조직 범죄도 아니고 테러 조직도 아닌 대부분 개인의 단독 범행(lone actor)이다. 범죄학에선 이걸 무차별 공격(random violence), 보복형 개인 범죄, 사회적 스트레스형 폭력 같은 범주로 분석하지, “헌충 사건”이라는 개념은 쓰지 않는다.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면 중국의 네티즌들은 이를 현대판 “장헌충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알려진 대표적 사례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차량 돌진형인데 학교 앞, 시장, 광장 등지에서 자동차로 군중 돌진하는 사건이다. 둘째는 흉기 난동형인데, 지하철역, 거리 등에서 행인들에게 칼, 둔기로 위해를 가하는 사건이다. 셋째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주변에서 학교를 공격하는 행위다.

사실, 헌충사건은 과거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런 사건들은 과거 대략 2000년대 이후 각지에서 빈번하게 일어 났었어도 전국적으로 동시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최근에는 SNS 때문에 더 많이, 더 널리 알려지고 있다. 2000~2010년대 초반년에 학교 공격 사건들(초등학교, 유치원 대상 흉기 공격)이 특히 많이 언급됐다. 당시 사회적 충격이 매우 컸다. 이 시기에도 이미 개인 좌절, 사회 불만(무차별 공격으로 이어진 사례)이 발생했다. 이러한 유형 자체는 중국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전 세계 공통 현상이다. 예컨대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 일본의 무차별 칼부림(예컨대 아키하바라 사건), 한국의 묻지마 범죄와 유사하다.
이처럼 중국에서 증가되고 있는 “헌충 사건”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사회, 경제적 스트레스와 깊게 연결돼 있다. 구체적인 원인이 뭘까? 개인적 불만 폭발, 실직, 빚, 사회적 좌절 등등 복합적이다.
첫째, 경제적 압박, 청년 실업 증가, 부동산 침체, 자영업 붕괴에 따라 좌절한 나미지 극단적 행동을 한다.
둘째, 사회적 신분 상승이나 이동성의 감소에서 오는 범죄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상승이 어려워서 “막혔다”는 인식에 따른 분노가 특정 대상이 아니라 “불특정 사회”로 향하는 것이다.
셋째, 배출구 부족으로 인한 것인데, 중공의 언론·표현 제한, 통제에 막혀서 집단적 항의가 어려워서 개인 단위의 폭발이 증가하고 있다. 넷째, 사건소식이 퍼지면 “나도 저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고 하는 모방 효과(copycat)도 한 원인이다.
내가 1992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 대략 2008년 전후부터 몇 가지 크게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중국인들도 지역에 따라 약간의 성격상의 특징이 다르긴 해도 그 중에는, 특히 산동(山東)과 동북지역 사람들 중에선 한국인들과 같이 욱하면서 화를 내거나 분을 참지 못해서 사고를 내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2000년대 이전엔 흉악범죄나 묻지마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당시 중국의 전체 살인율은 세계 평균보다 낮은 편이었고 각지를 여행해보면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대략 2008년 북경 올림픽 이후부터는 그러한 헌충사건들이 눈에 띄게 많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한 함의가 있다. 주로 도시와 농촌의 차이 그리고 연해지역과 서부 내륙 지역의 차이, 소수민족과 한족의 차이 등등 “격차사회”가 갖는 요인들이 주요 원인이다. 특히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대부분 빈부격차, 경쟁의 격화, 실업, 무취직 등의 사회적, 그리고 중공 일당 독재에서 비롯된 정치적 소외가 가져다준 불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중공과 중국 정부는 이런 유형의 사건(무차별 공격, 이른바 “獻忠사건”)에 대해 “강력 억제와 정보 통제”를 동시에 활용한다. 대응 방식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즉각적 물리 대응이다. 무장 경찰(武警)과 공안을 신속히 투입해서 사건현장에서 즉시 제압하고, 사건 확산을 방지하는데 주력하는데 그 대응 속도가 빠르다.
둘째 방식은 예방 중심 치안 강화다. 대표적인 것들이 학교·유치원 주변 경비 강화 주요 지역 검문·순찰 증가, CCTV와 안면인식 시스템 활용이다. 특히 중국은 감시 기반 치안 체계가 매우 강한 편이다.
셋째, 정보를 통제한다. 발생한 사건 기사를 삭제하거나 축소하고, 댓글 차단과 함께 반정치적, 반중공적 사건이나 시위, 반중적인 해외소식 등의 검색어도 제한한다. 예컨대 “무차별 살인”을 검색 차단하고, 대신 모호한 표현만 남게 되도록 해놓고 있다.
이처럼 중공의 검색 차단, 통제를 피하기 위해 중국 젊은층들이 직접 사건을 표현하는 대신 “獻忠사건” 같은 은어를 쓰게 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무차별 개인 폭력 사건이 중국 특유의 검열 환경과 인터넷 문화이 결합하면서 “獻忠”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코드로 표현된 것이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직접 표현의 제한으로서 중국에서는 “무차별 살인”, “사회 불만 폭발”,“치안 불안” 같은 표현이 민감하게 취급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검열과의 반복 싸움인데 이 용어들이 퍼지면 중공의 검열이 강화되고 다시 네티즌들이 이에 대응함으로써 새로운 은어들이 등장하고 다시 확산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중공의 검열이 은어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중국만의 특이 현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현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중국식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미국과 유럽이 그렇듯이 전세계적으로 현대화 사회에선 개인고립 심화 현상의 증가, 경제적 압박, 사회 불만이 축적돼 있다. 사회의 공통 현상이기도 한 이것은 중국, 한국, 일본 세 나라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 결과 나라별로 약간의 시차는 존재하지만 “헌충 사건”, “묻지마 범죄”,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 사건” 형태의 범죄들이 등장한 게 그 예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는 이유로 한국과 일본과 다른 중국만의 특징이 있다. 언론의 자유가 있어서 헌충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이 상세하게 보도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한국, 일본과 달리 중국은 언론이 공산당에게 철저하게 감시, 통제되고 있어 사건들이 대부분 축소되고 은밀히 감춰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는 각기 “묻지마 범죄”와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 사건”이라는 일반화된, 사회적 합의나 정부도 인정하는 용어가 존재하지만 중국엔 정부와 일반인들이 다 함께 인정하는 공개적인 통용 용어가 없다.
향후 헌충사건과 헌충화는 더 늘어나면 늘어나지 지금보다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연 이러한 사건들이 중국의 사회적 안전성에 어떤 작용을 하고, 나아가 중공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조금 과장해서 말해서 중국의 미래가 세계인의 삶에도 파장을 일으키는 문제인 만큼 우리도 관심을 기울일 일이다.
2026. 4. 7. 11:17.
일산 향동에서
雲靜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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