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燈明의 오래된 그림자
자유를 묻는다.
쇠사슬이 먼저 대답한다.
그대의 발목이
그대의 입보다 빠르다고.
빛을 찾는다.
손이 묶여 있다.
눈은 밝으나 뜻은 어둡다.
스승이 말했다.
Dharma의 법을 등불 삼으라고.
우리는, 인간은
그 등불로 족쇄를 닦고 있다.
광이 난다.
아편처럼 고통이 잠든다.
잠이 깊을수록 사슬은 빛난다.
불은 꺼져 있고, 눈은 익숙하다.
익숙함이 곧 無明이다.
묶은 자와 묶인 자,
같은 그림자 아래 있다.
그대가 원한 빛은
그대를 비추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침묵한다.
말 없는 자리에서
법등은 스스로 꺼진다.
2026. 1. 27. 05:57.
일산 향동에서
Le Roi Jones(Amiri Baraka)가 썼다는 '현대의 노예' 경구를 보고 쓰다.
雲靜 초고
★ 르 로이 존스는 마르크스주의와 20세기형의 닫힌 민족주의 사이를 오가면서 자신의 분노를 사유로 밀어붙인 “위험한 지식인”이라는 평가가 있는 모양이다.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보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편안한 진보”를 끝까지 거부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고, 현대인의 노예성을 예리하게 들춰낸 것은 지성이 빛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의 일부를 받아들이되 그 사상적 편협성을 석가모니의 法燈明, 自燈明 사상으로 용해시키려는 시도로 위 시를 썼다. 나는 아무리 인류사에 해가 되는 위험한 언행을 한 자라도 그의 생각 중 일부일지라도 그것이 진리를 함장하고 인류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라면 있는 그대로 가치를 인정하는 게 옳다고 본다. 지난 세기 실용주의 사상을 주창한 존 듀이는 놀랍게도 그 시절 불교사상을 접하지 못했을 텐데도 벌써 젊은 시절에 이러한 불교적 원융의 관점이 생성돼 있었다.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선 인간의 모든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베이컨 사상의 연장선이다.—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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