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썩은 동태 눙까리”

雲靜, 仰天 2026. 1. 18. 04:36

“썩은 동태 눙까리”



포항고 육상 선수 시절,
나는 11초 후반대에 머문 100m보다
숨이 긴 중장거리가 주종목이었다.
초등 시절에도 800m 대표로 뛰었으니까

매일 방과 후 육상 코치를 받으면서
요령 피우지 않고 훈련에 임했다.
강석규 선생님,
그는 작은 체구에 순발력이 돋보인
경북대 체육교육과 출신의 깐깐한 교사였다.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야, 썩은 동태 눙까리!”
같은 팀의 친구 정연대를 가리키고선
“연대처럼 눈이 반짝반짝거려야지!”라고

그 말에 나는 분노하듯 내달렸다.
20km 단축 마라톤 시민체전 고등부 경기
형산강 바람이 폐로 스며든 청춘의 거리

고3 봄날,
전학 간 학교 대표로 시민체전에 섰다.
400m 계주 마지막 주자
세 번째 주자가 바톤을 내밀었을 때
나는 20m쯤 뒤져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달렸고,
결승선 흰 테이프 직전에서
가까스로 선두 포항고 선수를 제쳤다.
와, 우승의 함성이 터졌고,
관중석에서 아버지도 아들 이름을 외쳤다.
동 대표로 나간 일반부 릴레이 경기에서도
연대와 함께 우리 팀은 3위를 했다.

그날 트랙 밖에서
강 교사가 포항고 선수들에게
외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더 뛰어! 인마, 더!”
허공을 향해 내지르던 어퍼컷

‘썩은 동태 눙까리’라던 제자에게
다 잡은 우승을 빼앗겼으니
강 선생님의 속마음은 어떤 결이었을까?

반세기가 지난 지금
선생님은 일흔을 훌쩍 넘기셨을 것이다.
내겐 젊은 날의 활달한 모습만 남아 있다.
문득 뵙고 싶다는 생각이 인다.

선생님, 기억하시나요?
그날의 시합, 그 말 한마디,
“썩은 동태 눙까리”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2026. 1. 18. 04:27.
일산 향동에서
雲靜 초고

1975년 포항고등학교 1학년 첫학기 5월, 교련 행군을 갔을 때 포항 형산강 둑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 가운데는 안타깝게도 벌써 오래 전에 고인이 된 친구도 있다.
고등 1학년 때인 1975년 여름 청송 주왕산으로 캠핑을 갔을 때. 주왕산에서 사흘을 야영한 후 안동으로 가서 그곳에서 있었던 기가 막힌 사건들은 언제쯤 얘길 할 수 있을까? (이젠 묻어두고 갈 나이도 됐다 싶기도 하다만.) 이 중엔 수년 전에 고인이 된 친구도 있고, 어느 친구는 내 은혜를 저버리고 불수의근인 심장이 해파리처럼 움직였을 정도로 가슴 아프게 배신한 친구도 있다. 내게서 가져간 돈도 거금이었지만, 무엇보다 반평생을 도와준 의리와 신의를 저버린 그 뒷통수가 한 동안 분노에 떨게 만들었다. 지금은 다 지난 일이지만.
1976년 고등학교 2학년 10월, 전학 간 학교에서 떠난 설악산 수학여행 때 설악산을 찾은 스위스 관광객 부부와 함께
중고등학교 다닐 때 씨름, 수영, 육상(중거리와 단축마라톤) 선수를 할 때는 장단지에 모래 주머니를 차고 자주 산을 타거나 거의 매일 아침마다 10km 정도를 달리는 식으로 운동을 많이 한 몸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든 운동은 올스톱! 위 사진은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서른 살 때 필리핀의 한 해변에서 사진 속 뒷편의 섬에까지 수영으로 갖다온 직후에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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