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동체대비의 마음을 품기에는

雲靜, 仰天 2026. 1. 5. 14:58

동체대비의 마음을 품기에는



선험적 체험은 성인의 경지다.
우리는 대체로 상처를 겪고서야 배운다.
세상사의 슬픔과 아픔, 그 고통을
마치 내 몸처럼 받아들이는 일,
그런 마음이 있어야 타인의 처지가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그것은 폭력의 논리를 끊으라는
가장 급진적인 명령이었다.
“로마의 폭력 논리에 맞서지 말라,
그 논리 자체를 무력화하라.”
복수는 악을 확장시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지배하던 시대에
그는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고 보았다.

석가모니도 자신을 세 번이나 해치려 한
사촌 데바닷타를 저주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도 자기 업의 과보를 겪을 뿐이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행위를 넘어
그 존재의 고통까지 껴안는 일.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픔을 느낄 만큼 사랑하면,
아픔은 사라지고
오직 더 큰 사랑만이 남는다.”

티베트 수행자들에겐 각인된다.
“모든 존재는 언젠가 네 어머니였다.”
그 기억 한 조각이
원수마저 자기 가슴으로 이끈다.
그러면 자비는 피처럼 돋는다.

나 역시 그 방향을 알고,
그 길을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앎과 삶 사이의 거리는 멀다.
나는 아직 범부의 자리에 서서
예수의 사랑, 부처의 자비를
그저 흉내 낼 뿐이다.

늦었지만 모방하는 가운데 언젠가는,
동체대비의 빛이
내 안에 깃들기를 바라며
오늘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2026. 1. 5. 15:01.
중앙대학 병원에서
雲靜 초고

2014년 8월,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2014년 8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의 국립 역사박물관에서
2014년 8월 초, 불가리아의 흑해 연안 도시 바르나(Варна)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촬영. 바르나는 흑해 연안의 선사 유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도시인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흑해 연안의 아름다운 바르나(Варна) 해변에서. 黑海라는 이름 그대로 정말 바닷빛이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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