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얼룩말 써클의 사회학

雲靜, 仰天 2025. 12. 20. 15:37

얼룩말 써클의 사회학



이 나라는 뭉치는 걸 참 좋아한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자마자
동창회에 들어가고,
동기회는 물론 반창회까지 결성한다.

모임이 많을수록 인맥이 넓어지는 줄 아는데,
실은 몸이 촘촘히 묶이고 얽히는 것이다.

명분은 우정, 표면은 친목, 속뜻은 이익이다.
사회 봉사는 간판이고,
진짜 목적은 서로를 끌어올리며
같이 파이를 나누는 일이다.

그 써클의 안쪽은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노른자 자리를 두고
성골·진골 간 막후 다툼이 치열하다.
얼룩말 무리처럼 머리를 맞대 원을 만들고,
들어오려는 자를 향해 뒷발을 찬다.
그러면, 안팎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갈린다.

밖에 선 자들은
한 온기라도 얻으려 한껏 굽실거린다.
어쩌다 천신만고 끝에 원 안으로 들어가면
이번엔 그가 힘껏 뒷발을 걷어찬다.

그렇게 원은 점점 좁아져 미어터지고,
사람들은 더욱 비좁아진다.
얼룩무늬 속에 숨어 사는 인생들,
배타의 서커스 같은 사회.

끼리끼리 문화가 사회작동법이 된
미친 세상.
나 역시 같이 미친 듯이 어울리고 싶어도
미쳐지지 않아서 정말 미치겠다.

2025. 12. 20. 15:3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1983년 봄에 나 자신을 그린 등신 크기의 연필 소묘 습작. 두 발목 부분이 잘려 있는 건 원작이 그래서 그런 건 아니다. 원작에선 온전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당시 찍은 사진이 20년 이상 습기 찬 골방에 있다 보니 아랫 부분이 부식돼 내가 가위로 잘라버려서 이렇게 된 것이다. 이 습작도 일찍부터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발목도 성치 않은 몸으로 어디로 갔을까? 자화상은 누구든지 간에 자기 스스로는 그릴 수가 없기 때문에 사진을 보고 많이 그린다. 모델이 된 것은 스물 살 때 찍은 아래 사진 속 왼쪽 인물이다. 사진 속의 나머지 네 사람은 아직도 생존하고 있을 것이고 그중에 맨 뒤 키가 제일 크신 분은 이홍원이라는 화가인데 지금도 연락이 된다.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중견 서양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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