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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은 우연인가? 지도자의 기본이 안 돼 있는 중국과 한국

雲靜, 仰天 2025. 9. 26. 07:19

닮은꼴은 우연인가? 지도자의 기본이 안 돼 있는 중국과 한국

최근 십 수 년 전부터 줄곧 나의 의식을 잡아끄는 게 있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지도자복”이 왜 이렇게 없을까 하는 점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아니다. 구체적으로 톺아보면 누구나 바로 알 수 있고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공통적으로 거짓말을 너무 잘한다. 책임전가와 둘러대기도 정말 고수 중의 상고수들이다. 거짓말했다가 들통나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 아예 수치라는 게 없다. 염치는 기대할 바도 없다. 가히 인면수심이다. 마음속에 예의염치가 더 이상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의염치도 나이가 있다. 그것도 사회적 연령에 따라서 자라나야 하는데 태생적으로 없거나 중간에 성장이 멈췄다.

한국과 중국은 자고이래 도덕과 윤리적 가르침을 고갱이로 하는 유학과 유교가 성행한 나라였다. 그걸로 세상을 다스리고 바깥 나라들도 자기 밑에 두고 통치하는 서열화의 기제로 삼았지 않았는가? 공자, 맹자, 주희, 왕양명 등등의 내로다라는 인물들이 예의염치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축의 전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인간 존재의 한계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극심하다는 게 문제다! 역설적으로 어쩌면 인간들이 워낙 예의 염치없이 더러운 짓거리로 사니까 유학이 많이 장려가 되고 이론적으로 발달했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얼마 전, 시진핑이 아래 발언을 했다고 중국의 매체들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베이징대학과 민족초등학교에서 중앙정치국에서 집단 학습하고 상하이에서 시찰하며, 시진핑 동지는 여러 차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육성하고 실천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국가에 덕이 없으면 흥하지 않고, 사람이 덕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덕성(品德)이 필요하며, 정치에 종사하려면 관덕(官德)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사람마다 마음속에 내재하고 행동으로 드러내는 핵심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각 시대에는 각 시대의 정신이 있고, 각 시대에는 각 시대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핵심 가치관은 한 민족, 한 국가의 정신적 추구를 담고 있으며, 한 사회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 기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동지가 인용한 『管子』「牧民篇」의 이 두 문장은 바로 당시의 핵심 가치관에 대한 중국 선조들의 인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 사회, 개인의 세 가지 측면에서 '세 가지 창도'(三个倡导)를 제시하여 한 국가의 핵심적 가치, 한 사회의 공동 이상, 수억 국민들의 정신적 고향을 그려내고, 개혁 발전을 위한 가치의 항로 표지를 획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대 중국의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는 근본(기둥)'(立国之维)이며, 수억 인민의 '가치 공약수'입니다.” (중공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웹사이트의 '习近平用典'에서 필자가 발췌, 번역) 인용문 중 立国之维는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라고 봐도 된다.

위 글 내용을 일별하면 시진핑이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 그의 동기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정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이 말은 자기가 알고서 한 말일까? 공산 중국의 역대 최고 지도자들 중 마오쩌둥을 제외하고는 덩샤오핑(鄧小平), 화궈펑(華國鋒)은 물론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은 모두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정견은 본인이 쓴게 아니고 참모들이 써준 게 십중구구 이상인데, 시진핑의 이 발언 내용도 참모들이 정리 작성해준 것일 터다. 칭화(淸華)대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中国农村市场化研究, 중국 농촌시장화 연구, 2001년 12월 제출)도 그가 쓴 게 아니라는 설이 파다하고, 실제로 푸졘(福建)성에서 성장으로 공직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직접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텐데 시진핑이 管子 목민편(牧民篇)까지 공부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 그리고 대학 시절을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보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시진핑이 위 발언에서 결론격으로 언급했다는 “立国之维”는 그의 독창적 용어가 아니고 후대 중국의 문인이나 정치가들이 『管子』「牧民篇」의 “國有四維” 사상을 일반화하면서 만든 응용 버전이다. 앞서 말했듯이 “立國之本”(나라의 근본), “治國之道”(나라 다스리는 도), “為政之要”(정치의 요체)류의 동일한 맥락의 표현이다.

國有四維는 『管子』「牧民篇」에 나오는 말이라고 했지만, 『管子』라는 책은 고대 중국의 사상가 管子(?~BC 645)가 직접 쓴 건 아니고 그의 언설들을 후대 사람들이 집대성해놓으면서 하나의 고전으로 형성된 것이다. 四維는 국가가 지켜야 할 네 가지 기둥, 즉 근본을 말한다. 이 구문이 속해 있는 문장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國有四維一維絕則傾二維絕則危三維絕則覆四維絕則滅
傾可正也危可安也覆可起也滅不可復錯也
四維不張國乃滅亡
何謂四維一曰禮二曰義三曰廉四曰恥”
출전『管子』「牧民」.

원전의 위 문장을 한글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나라에는 네 기둥이 있는데 첫째 기둥이 끊어지면 기울고, 둘째 기둥이 끊어지면 위태롭고, 셋째 기둥이 끊어지면 전복되고, 넷째 기둥이 끊어지면 멸망한다. 기우는 것은 바로잡을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수 있으며, 뒤집힌 것도 다시 일으킬 수 있지만,
멸망한 것은 다시는 바로잡을 수 없다. 무엇을 사유라 하는가? 첫째는 예, 둘째는 의로움, 셋째는 맑고 깨끗함, 넷째는 부끄러움이라고 한다.”

“四維不張”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 대목에 대해 북송의 문인 歐陽脩(1007~1072)는 자신이 쓴 『新五代史』 중 인물전의 하나인「馮道傳」에서 “禮義廉恥, 國之四維, 四維不張, 國乃滅亡”이라고 간명하게 요약한 바 있다. “예, 의, 염, 치는 국가를 유지시키는 네 가지 기둥이며, 네 기둥들이 서지 않거나 끊어지면 나라가 멸망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維는 기둥, 근본, 혹은 도덕 준칙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이 시행되지 않거나 서지 않으면 국가가 쉽게 멸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네 기둥 혹은 도덕준칙이 예, 의, 염, 치라는 것이다.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이참에 말이 나온 김에 예의염치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자 한다.

禮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데 위 아래로 절도가 있는 것을 뜻한다. 예를 갖추면 절도를 넘지 않게 됨을 말한다.

義는 스스로 자신을 내세우며 분별없이 나서지 않는 것이다. 즉 적절한 행동 기준을 뜻하는데 의리가 있으면 함부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염(廉)은 자신을 속이는 거짓이 없는 깨끗한 마음과 자세를 말하는데,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은폐하지 않는 것이다.

치(恥)는 부끄러움을 알고 그릇되거나 나쁜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이 뭣인지를 알면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나라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이 네 가지 덕목이 꼭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 내용인데, 관자는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사라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며, 세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네 개 모두 끊어지면 멸망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문맥적으로는 한 나라가 지속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적 근간이며, 이를 어기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정치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이 네 가지는 각 시대의 도덕적 가치를 반영하며 국가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 원칙으로 제시된다.

따라서 이 네 가지 차원에서 나라를 다스리면 국가 통치자의 위치가 안정되고, 백성이 위정자나 관리들에게 교묘하게 속지 않으며, 스스로 행동이 바르게 되고, 惡事가 생기지 않아 능히 나라가 지켜지고 백성이 다스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四維는 국가의 근본을 이루는 덕목들로서 개인과 사회가 공히 지켜야 할 도리이며, 이를 통해 국가가 안정되고 백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음을 뜻한다. 또 사람이 짐승(禽獸)과 다른 이유는 禮義廉恥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시진핑이 도덕군자처럼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에게 禮義廉恥가 있다는 소린가? 중국이 건국되고 난 후 毛澤東, 周恩來 이래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毛澤東이 저질도 보통 저질이 아닌 인간이하의 인물이었다는 건 워낙 많이 알려 져 있으니 논외로 치자.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거의 모두 周恩來를 청렴한 총리로 알고 있지만 그의 감춰진 실제 얼굴을 보면 정말 놀라서 뒤집어 자빠질 것이다.

감춰진 실제 얼굴을 보면 정말 놀라서 뒤집어 자빠질 인물은 한국에도 있다. 이재명은 어떤가? 禮義廉恥가 없는 것은 “고부고부 ごぶごぶ”, “빠량빤진 八兩半斤”이다. 그는 정치적 술수와 단수는 시진핑보다 뒤떨어지지만 입만 열면 거짓말, 없던 말을 지어내고, 말을 돌려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시진핑보다 훨씬 더 심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대중 강연도 했고 글로도 실증적인 사례를 많이 들었다. 궁금한 사람들은 나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찾아보면 일부를 볼 수 있다.

중국의 정치계에서 시진핑뿐만 아니라 여타 지도자들도 예의염치가 증발되고 없는 양심 불량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듯이 한국도 이재명뿐만 아니라 대부분 양심 불량자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 일일이 거명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 정치인들이 다 그러하니까! 조국은 어떻고, 김진표와 추미애는 어떻고, 이준석은 어떻고, 한동훈은 어떻고, 나경원은 또 어떤가? 주호영과 이정현은 이들과 다른가? 다들 정치인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예의염치가 없다는 면에서는 오십보백보다. 이런 자들이 또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니 다가올 미래도 염려가 된다. 국무총리, 장관 등등의 고위 공직자 청문회나 국회의원 지방 지자체 단체장 선거에 나오는 후보들 중에 기피성 군면제, 부동산투기, 탈세, 학위논문 표절,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위장전입은 기본 경력이고, 심지어 범법자들이 수두룩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 일일이 말할 것 없다. 국가 최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이재명만 보면 알 수 있다. 도대체 전과가 몇 범인가? 평소 예의염치가 있는 삶을 살면 범죄를 저지를 일이 거의 없다. 예의염치가 없는 것은 일반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나을 것도 없다. 좋은 전답에 양질의 곡식이 생산되고 부실한 전답에는 쭉정이가 많듯이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사의식, 책임의식 등이 갖춰진 좋은 국민이 이러한 예의염치 상실자나 전과자를 지도자로 뽑겠는가?

오늘날 한국이나 중국이 이토록 신뢰가 무너지고 양심불량자, 범죄자들이 국민 위에서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 후진국이 된 것은 예의염치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윤리나 도덕으로 학교에서나 가르칠 뿐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겐 바른 사람이 되라고 도덕을 가르치면서 자기가 하는 행위는 완전 딴판이다. 이 자체가 한중 양국 사회가 위선의 극치로서 모순 덩어리다.

중국과 한국 두 나라가 이념과 체제가 판이하게 달라도 정치지도자의 자질 면에서 판박이처럼 일란성 쌍둥이 모습이 지속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역사와 문화적으로는 역사발전 단계에서 마땅히 제거했어야 할 전근대성을 걷어내지 못했기 때문이고, 현실적으로는 돈과 권력과 사회적 지위만 있으면 비리와 부정과 범죄를 일삼아도 잘 걸려들지도 않고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사회적 작동방식과 법이 물러 터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근대성이란 위정자들이 걷어내는 게 아니다. 또한 사회적 작동방식과 법을 공정하고 추상 같이 엄정하게 세우고 운용하는 것도 위정자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도 없다. 국민이나 '인민'들의 힘만으로 걷어내고 개선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중국에선 모두가 '인민'이 아니고 특정 계급만 인민이니 더욱 문제다. 칼자루 쥔 자나 그들을 뽑는 이들이 공히 예의염치가 실종된 자들이니 다람쥐 쳇바퀴 도는 순환모순에 빠져 있다. 중국은 아예 뽑는 행위 자체도 공산당에게 박탈된 상태에 있지만. 그것도 깊이 메스를 가해 대대적인 외과수술을 가하기 전에는 조금도 변화를 추동할 수 없는 중환자 상태다. 두 나라 모두 참으로 갈 길이 멀다.

2025. 9. 26. 07:19.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