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스리랑카 니곰보의 인심 좋은 게스트 하우스 주인

雲靜, 仰天 2025. 1. 22. 10:35

스리랑카 니곰보의 인심 좋은 게스트 하우스 주인


관광지 인심이 좋지 않다는 건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다. 잘 사는 나라나 못 사는 나라나 큰 차이가 없다.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바가지 씌우는 건 드물지만 의외로 소매치기와 좀도둑이 많으니 후진국들과 오십보백보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면 간혹 친절하고 정감 가는 현지인을 만나는 일도 없지 않다. 스리랑카 여행 8일 째 되던 날, 나는 마지막 코스로 들른 니곰보에서 인심이 후한 사람을 만났다. 어쩐지 마음이 짠한 느낌도 드는 노총각이었다.

니곰보는 구글지도에 “Negombo”로 표기돼 있다. 이곳 현지인들은 대체로 “니곰보”와 “니감보” 두 가지 음으로 발음하고 있다. 지도에 표기된 영어 스펠링의 발음대로 "네곰보"로 발음하니 선뜻 알아듣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즉각 "니곰보"로 발음하니 그제서야 바로 통한다. 니나 네나 다 우리지만!

콜롬보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35Km 쯤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 니곰보는 스리랑카 최대 어항과 수산시장이 있는 항구도시다. 인구는 약 20만 명에 지나지 않은 작은 도시지만 이곳엔 국제공항도 있을 만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옛날 아라비아 상인들이 많이 드나든 시나몬(계피)무역 항구였다가 포루투칼과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16~17세기 서양의 식민지시대엔 어업과 함께 스리랑카의 해외교역 중심지였다. 내가 며칠 후면 가보게 될 인도 서해안의 고아(Goa)처럼 서구 종교 전파의 거점 도시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콤롬보 시내 관광과 볼일을 다 마치고나니 불현듯 니곰보에 가고 싶어졌다. 내가 콜롬보 시내의 쿨럽피티아역(Kullupitiya Railway Station)에서 열차를 타고 니곰보역에 도착한 건 해가 막 바다 너머로 떨어져 가는 시점이었다. 인도 열차가 느리듯이 스리랑카 열차도 많이 느렸다. 내가 오후 2시 반에 출발해서 중간의 콜롬보항역(Fort Railway Station)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 6시 경에 도착했으니 근 3시간 반이나 걸린 셈이다. 불과 40km도 채 안 되는 거리였는데 열차 속도가 느린 데다 매 정거장 마다 정차하면서 승객을 내려주고 태우는 시간도 느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발도 많았다.

스리랑카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기차 노선은 이쪽 서해안 지역의 주민들에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교통수단으로서 그들의 발이기 때문에 이 교통편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게 한국인의 “빨리, 빨리” 습성이 몸에 배어 있어 더 느리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니곰보 기차역에 도착한 후 나는 역앞에서 바로 툭툭이로 해변이 아름답다고 알려진 니곰보해변(Negombo beach)으로 달려갔다. 니곰보역을 나오자 해변을 따라 길게 나 있는 도로를 중심으로 식당과 호텔 그리고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여기서도 바가지를 부르는 기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가격을 후려치는 동행자가 있었다. 오다가 우연히 만난 호주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라고 하면 그녀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60대 후반의 나이였다. 그렇게 치면 나도 할배이긴 하지만! 니곰보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중에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 호주에서 온 여성 여행자였다. 이 여행자는 내가 콜롬보항역에서 30여 년간 콜롬보 세관의 세관원으로 근무하다 퇴임한 70대 후반의 스리랑카인 남성과 벤치에 앉아 재미있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중간에 불쑥 끼어들어 얘기를 주도해간 수다쟁이였다.

그녀는 우리가 행선지가 같아서 동행하게 됐는데 니곰보 행 열차로 갈아타고서도 자리에 앉자마자 연신 나에게 말을 붙였다. 유럽, 인도, 동남아, 중국 등등 자신이 여행 다닌 곳들에 대해서 내가 묻지도 않은 얘길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자신은 2년 전에 호주 육군 중령 출신의 남편과 사별하고 세계 각지를 혼자서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번에도 석 달 단기 체류 계획으로 스리랑카에 와 있다고 한다.

그녀가 하는 얘길 들어보니 군 장교 부인답게 교양도 있고 국제정세에도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길래 내가 대만에서 공부한 중국 전공자라고 소개하니까 그녀는 자기도 오래 전에 대만에서 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다면서 엄청 반긴다. 그리고 중국어 얘기를 한참 하다가 다시 중국 얘기가 나오자 약간 톤이 올라간 어조로 중국을 아주 나쁘게 비판한다. 들어보니 미국, 호주, 유럽 등 전형적인 서구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었지만 비판하는 이유가 잘못 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말이 되는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던지 나에게 계속 질문하고, 말하고 대화를 끊임없이 끌고 간다. 그리고 호주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고 하면서 한국에 대해선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는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호주 할머니 덕분에 툭툭의 차비를 적절하게 합의를 보고선 무사히 니곰보 해변 마을에 도착했다. 와서 보니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나는 이곳에 서남아시아 최대의 어시장이 있다는 말만 듣고 왔지 이름난 해변 관광지인 줄은 몰랐다. 이번 여행에서는 특별히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가다가 발길 닿는 데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도 그랬지만 이쪽은 큰 산이 보이지 않고 해변에 이어져 형성된 평야 지대다.

열차 안에서도 호주 할매와 이야기를 하느라 아직 내가 오늘밤 머물 숙소를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내겐 저녁식사를 하는 게 먼저였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잖는가! 또 호텔을 잡지 못하면 날씨도 춥지 않은데 해변 모래사장에서 자도 안 될 게 없다. 해가 긴 듯해도 벌써 어둠이 내려 주변에는 불빛밖에 보이지 않는다.

약 15분 후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툭툭에서 내려 차비는 내가 냈다. 호주 여성은 자신이 예약해 놓은 호텔로 들어가고 나는 마침 맞은 편에 있는 중국인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갔다. 나는 뽁음밥과 야채 뽁음 두 가지를 시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인터넷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오랜만에 밥을 먹게 되자 한국에서 먹는 중국 요리는 아니지만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내가 한창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조금 전의 그 호주 할매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온 모양이다. 그녀가 다시금 내게 앞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물론 나는 웃음 띈 얼굴로 안 될 게 뭐가 있냐고 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자리에 앉으면서 돈을 내게 건네준다. 조금 전 내가 지불한 툭툭 차비의 절반이라고 한다. 내가 사양을 하니까 그녀는 여행을 하면서 더치페이는 지켜야 된다고 한다. 굳이 사양할 필요가 없다 싶어서 나는 받았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녀가 또 수다를 늘어놓을까 은근히 겁이 나서 그녀가 눈치를 못 차리는 가운데 밥 먹는 속도를 더해 빨리 먹어치웠다.

“Enjoy your dinner and good luck in Sriranka!”

식사를 끝내고나서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신사연하면서 한 마디 해주고 바로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나섰다. 식당에서 나오니 거리는 이제 완전히 어두컴컴해진 상태였다. 이곳도 스리랑카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밤엔 가로등에 불이 없다. 전기공급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대충 1km 이내에 예약해놓은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서 어두워도 많이 헤매지 않고 잘 찾았다.

Estro Guest House! 컴컴한 도로가에 붙어있는 아담한 2층 양옥집이었다. 대문은 열려 있었지만 현관엔 불이 꺼져 있었다. 집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는지 전등만 덩그러니 켜져 있고 인기척이 없었다.

내가 하룻밤을 묵게 된 에스트로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가니 방이 서너 개가 있고 부엌과 거실, 테라스가 딸린 구조였다. 호텔 주인이라는 사람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인 남성이었다. 자기 방에서 나오면서 잔잔히 웃음을 띠며 말하는 모습이 성품이 좋아 보였다. 내가 방을 예약한 사람이라고 했더니만 그는 오늘밤엔 예약한 손님이 없다고 하면서 예약 증서를 보자고 한다. 별 생각 없이 내가 예약 바우처를 보여줬더니 그가 내일 예약돼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나도 서류를 다시 자세히 보니 아뿔싸, 정말 내일로 예약돼 있는 게 아닌가? 예약을 할 때 날짜를 오늘밤으로 한다고 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내일 밤에 투숙하는 것으로 예약한 것이다. 해외여행을 제법 다녔지만 호텔 예약을 잘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히 내탓이지만 이런 정신으로 무슨 낯선 해외 여행을 하는지 모르겠다. 낭패라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한다.

나에겐 수중에 가지고 있는 달러를 거의 다 쓰고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가서 쓸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또 현지 스리랑카 화폐도 조금밖에 없었다. 내일이 인도로 가는 날이고 스리랑카스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기 때문에 스리랑카 돈은 필수적으로 꼭 써야 할 돈만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밤도 깊어가고 현금도 넉넉하지 않은 상태이니 호텔 주인에게 사정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 콜롬보에서 바로 한국으로 귀국하는 게 아니라 내일 인도로 가서 열흘 후 인도네시아에도 가야 돼서 달러 현금이 빠듯해서 그러니 내일 예약을 오늘로 당겨서 묵도록 해줄 수 없냐고 사정했다. 숙박비야 3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현재로선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인은 안 된다거나 곤란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선선히 허락해주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인심이 후하고 너그러운 주인 덕분에 고생을 덜게 됐다.

니곰보를 떠나기 전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함께 기념촬영. 그는 이곳 니곰보에서 이 도시를 홍보하는 일에도 관여하고 있는 심성 좋은 노총각이었다.

주인이 안내해준 방에 들어가보니 넓진 않지만 침대와 세면장도 모두 깔끔했다. 샤워 후 쉬고 있는데 주인이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나와 대화를 좀 나누고 싶다고 해서 주인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날 밤 그 집에는 공교롭게도 손님이 나 이외에는 없었다. 거실에 앉아 찻잔을 앞에 두고 대화가 시작되자 그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쉰이 조금 넘었지만 아직 결혼을 못한 노총각이고, 얼마 전까지 스리랑카의 대기업에 다닌 건축 설계사였다고 한다. 대학은 이곳 스리랑카가 아닌 인도의 첸나이(Chennai) 공대를 나왔다고 했다. 작년에 퇴임하고 모아놓은 돈으로 이 민박집을 인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리랑카 관광 홍보일에도 관여하고 있다면서 지금 한창 이 호텔과 니곰보 홍보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내가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 혼자 사느냐,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했더니만 그는 웃음 띈 얼굴로 없다고 답한다. 그래서 노총각 혼자서 어떻게 호텔 청소도 하고 관리까지 하느냐고 했더니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을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어떤 직업의 사람이냐고 묻기도 하고 한국에 대해서 호감을 많이 표시했다. 나도 스리랑카 상황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대화를 하면서 그는 심성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대화를 건성으로 하지 않고 그를 진지하게 대하자 사람이 좋아 보였던지 주인이 부탁 한 가지 해도 되냐고 묻는다. 부탁인즉슨 다짜고짜 한국하고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건축에 대해서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고 현재 독일의 건축 회사와도 프로젝트를 하나 추진하고 있다면서 한국과도 합작으로 비지니스를 하고 싶은데 한국 기업에 자신과 자기의 사업계획을 소개해 줄 수 없느냐고 한다. 그때서야 이 친구가 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내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꼭 그런 것 때문에 나에게 편의를 제공해준 건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스리랑카인들이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건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다 한국엔 내가 아는 건축회사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또 내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줬다. 그게 그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그리고 그가 갖고 있는 건축 기술이 어떤 특별한 것인지 나에게 조금 설명해 줄 수 있냐고 했더니만 그는 준비가 되는 대로 나에게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좋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난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게 순서이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건축에 대해선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내가 몰라서 하는 말일진 몰라도 현대 건축술은 한국이 스리랑카보다 수준이 높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할지 현재로선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상당히 풀이 죽은 눈초리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태양이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 전 나는 일찍 일어나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3분 거리에 있는 해변을 걸었다. 막 동이 트려는 자주빛 구름이 환상적이었다. 말로만 듣던 인도양을 가까이서 보고 처음으로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무슨 고체 덩어라도 되는 듯이 물결을 어루만져보기도 했다. 바닷물은 연한 쑥색이었다. 태평양 바다와 같은 푸른 물은 아니다. 그러나 흰 포말은 어느 바닷가나 똑같다. 멀리 푸른 하늘에 갈매기들이 날고, 개들이 어슬렁거리는 해변 여기저기에는 그물로 잡아 올린 물고기들을 거두고 장만하고 있는 어부들이 보였다.


산책을 마치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가니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나에게 웃으며 아침인사를 한다. “하이 굿모닝!” 그리고 나에게 오늘 점심을 준비해서 대접하려고 하는데 다른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 마음 씀씀이가 고마운 사람이다. 나는 사양하고 싶었지만 주인의 제의를 거절하는 것도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자기를 무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또 스리랑카 가정의 식사는 어떤지도 궁금해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러면 내가 어시장에 가서 싱싱한 생선을 조금 사 오겠다고 했다.

나는 어젯밤 흔쾌히 날짜를 당겨서 묵게 해준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또 말로만 듣던 니곰보의 새벽 어시장도 볼 겸해서 해변 끝쪽에 넓게 형성된 사구에 위치한 수산시장으로 가서 싱싱한 왕새우를 스무 마리 정도 샀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만 원 정도 했다. 2년 전인가 베트남 하노이 새벽시장에서 크기가 같고 양도 비슷한 새우를 한국돈 5만원을 주고 산 적이 있다.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베트남에 비하면 스리랑카는 물가가, 아니 최소한 생선 가격은 대략 3분의 1이나 4분의 1 수준으로 싸다는 소리다. 여긴 직판장이고 그긴 동네 골목시장이었으니까!

수산시장에 갖다 오면서 귀갓길에 옛날 독일인들이 주둔했다는 군사 기지라든가 성당, 어촌의 항구, 교도소, 힌두교 사원 등을 둘러 봤다. 니곰보는 카톨릭 성당이 거리에 많고 간혹 그 사이사이에 힌두교 사원도 보였다. 콤롬보와 그 인근 지역엔 불교사원이 거의 전부인 듯이 보였던 것과 달리 니곰보에는 성당이 대세이고 천주교인이 다수로 보인다. 아마도 포루투칼 식민시대에 시작된 천주교 전도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곳의 광경들과 콜롬보 시내에 산재해 있는 성당들과 힌두교 사원들을 본 감상은 나중에 스리랑카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따로 할 생각이다.

야자열매즙이야 뭐 대만 생활하면서 많이 먹어 본 것이지만 스리랑카에서 색깔이 노란 것을 먹으니까 또 기분이 달랐다.
옛날 독일군이 주둔했던 기지
우리와 달리 일본처럼 스리랑카에도 묘지가 마을이나 주택가에 있다. 생사일여라, 죽음이 삶속에 있나니 따로 멀리에 둘 필요가 있을까?


나는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걸으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천천히 왔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니 대략 11시 반경이었다. 왕새우들이 든 묵직한 비닐봉지를 건네주니까 주인이 반색을 한다. 새우요리 조리는 그의 몫이었다.

주인이 잠시 부엌에서 뭔가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새우구이를 해서 내놨다. 식탁에 올려놓은 새우를 보니 각자 서너 마리씩 뿐이었다. 나머지 반은 내가 가고 나면 그가 혼자서 먹을 심산에 따로 보관해놓은 모양이었다. 하기사 왕새우 한 마리가 너무 커서 두세 마리만 먹어도 충분히 식사가 될 정도이니 굳이 내가 내색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반찬은 카레와 내가 사온 새우구이가 전부였다. 흔한 채소 한 잎도 없고 밑반찬도 없었다. 이 반찬으로 한 그릇 가득 담긴 알랑미 밥을 다 먹는다고 한다. 이를 보면 스리랑카인들의 식생활이 어떤지 대략 가늠할 수 있지만 나이가 쉰이 넘은 노총각이 매일 이런 식사를 한다고 하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는 즐겁게, 맛있게 먹었다. 식사 중에 주인은 어제 나에게 부탁한 건축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냈다. 나는 여건이 맞으면 검토를 해보겠지만 어젯밤에 얘기했던 대로 다시 한 번 한국과의 기술 격차가 있어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강조했다.

식사 후, 나는 바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늘 그렇지만 짐을 싸는 건 5분이면 끝난다. 그리고 주인과 다시 한 번 차를 한 잔 하고서 주인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콜롬보 반다라나이케(Bandaranaike) 공항으로 향했다. 오후 2시 반이었다. 다음 행선지인 인도 첸나이는 앞으로 5시간 후 오늘이 가기 전에 도착할 것이다. 첸나이도 방글라데시로 갈까, 아니면 파키스탄으로 갈까 고심하다가 이번엔 인도 서해안 도시들을 답사하면서 북상해보기로 하고 인도의 첫 행선지로 정한 곳이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제 언제 또다시 스리랑카에 올 수 있을까? 내가 4일간 머물렀던 이곳 사찰의 젊은 비구 스님들은 다음에 꼭 다시 방문해 주기를 신신당부했는데 그들의 웃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열흘 정도에 지나지 않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적지 않은 것들을 보았다. 기분좋은 기억도 있지만 불쾌한 경험도 내 머릿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동시에 잊히지 않을 인연들도 만났다. 스리랑카가 생각날 때는 나를 환대해준 이곳의 큰 스님과 그의 제자들, 콜럼보 시내 해안선 열차를 타고 통학하는 흰 교복 차림의 소녀들의 먹물 같은 검은 눈동자가 떠오를 것이다. 니곰보 게스트 하우스의 노총각 주인도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보자 인도양이여! 굿바이 스리랑카여!

2025. 1. 21. 14:14.(현지 시각)
스리랑카 니곰보의 에스트로 게스트 하우스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