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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불 : 혁명러시아와 중국공산당의 흥기1917~1923' 저서 경향신문 소개

雲靜, 仰天 2012. 10. 22. 17:16

中 공산당 초기형성사 조명 서상문씨 ‘프로메테우스의 불'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0307181722121

경향신문, |2003-07-19|25면 |45판 |문화 |1547자

 

중국공산당의 정립은 대(大)슬라브족의 러시아팽창주의가 낳은 결과였다. 중국공산당 초기형성사를 1917년 볼셰비키혁명 직후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연계시켜 조명한 연구서가 출간됐다. 서상문 21세기군사연구소 연구원(대만국립정치대학 역사연구소 박사과정 수료)은 ‘프로메테우스의 불’(백산서당)이란 저서에서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부터 1923년 1월 중국의 국공합작에 이르는 시기까지 양국 정치의 상호관계를 상세히 논의했다.

  

서 연구원은 “초기 중국공산당사는 흔히 마르크스 이념과 중국현실의 결합이란 측면에서만 연구됐으나 실제로는 혁명 직후 러시아의 대외정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며 “당시 세력기반이 약했던 레닌정권은 사회주의 수출보다 자국의 국가사회주의 확립에 주력하면서 중국을 미국․영국․일본 등 열강에 대한 방패막이로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중국공산당은 물론 일방적인 영향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같은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자신의 상황에 유리하도록 전유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에 따르면 1917년 10월혁명 직후 신생 레닌정권은 백군을 앞세운 서방열강의 군사간섭, 외교단절, 경제봉쇄로 인해 위기상황에 맞닥뜨린 상태였다. 이 때문에 혁명이념의 전파보다는 국가의 안전과 국익보호를 우선시하는 현실적 대외노선으로 전환하고 코민테른을 통해 이를 실행한다. 러시아 소비에트정권이 존속되지 않고서는 세계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레닌정권은 중국을 서구열강에 맞서는 동맹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공산당은 물론 군벌이 장악하고 있던 중앙정부나 쑨원의 국민당에도 동시에 접근하는 이중정책을 구사했다. 당시 레닌의 대중외교는 단기적으로 볼 때 중앙정부와 교섭해 중․러수교, 외몽골내 적군 계속주둔, 중동철로의 기득권유지 등 국익과 관련된 현안을 해결하고, 장기적으로 차르정권이 누려왔던 중국에 대한 권익을 승계하면서 사회주의 진영으로 편입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국내기반이 취약하고 러시아의 자금지원을 받았던 중국공산당은 레닌정권의 요구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공산당은 초기 당과 국가형태의 선택에서 레닌혁명이론에 입각한 폭력혁명, 국가사회주의 노선 등 ‘러시아모델’을 수용했으며 당 노선의 주요변화, 대부분의 정치활동 역시 볼셰비키의 아시아전략 구도 속에서 진행됐다.

  

레닌정권은 1919년부터 자신의 목표수행을 위해 중국에 공작원을 파견한다. 또 1922년 하반기부터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반제 민주주의 연합전선’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베이징 중앙정부의 실권자 오패부와 중국국민당의 쑨원을 연계시킨 손․오합작을 추진하는데 이것이 바로 국공합작으로 이어져 중국공산당의 영향력 확대의 발판이 된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버리고 현실정치의 역학관계를 이해해야 한다”며 “혁명러시아의 대중국 정책은 그들이 대외적으로 표방한 세계혁명의 확산보다는 현실정치의 안보적 방어와 전통적인 대슬라브민족의 러시아팽창주의가 결합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저자의 석사논문을 근간으로 한 것인데 베이징대 역사학과 대학원 강의교재로 쓰였으며 올가을 중국의 권위있는 학술지(上海中共‘1大’記念館刊)에 서평이 실릴 예정이다.   한윤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