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오래된 병 1

雲靜, 仰天 2025. 11. 22. 07:20

오래된 병 1



1988년 1월 4일이었으니
꽤 오래 전 일일쎄.

홍콩 침사초이의 한적한 부둣가를 걷고 있는데,
양지 쪽 공중전화 부스에서
말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는가—
사람 말이 진주알 구르는 소리로 들린 건
그때가 처음이야.

난생 처음 맡은 보랏빛 향수 냄새에,
연분홍 실크 시마르(Shayla)를 두른 아랍 아가씨.
햇살에 탱글한 회갈색 피부, 결까지 또렷했지.
먹물이 한 방울 퍼진 듯한 눈동자가
내눈과 마주쳤을 때,
심장이 덜컥 멎는 줄 알았네.

뒤에 서서 차례 기다리는 척하며
그 여인의 향을 몰래 들이쉬었어.
통화 끝나길 반시간이나 기다렸지만
끝도 없는 수다가 어찌나 야속하던지.

세월이 흘러, 까아만 눈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아.
백발 스민 뇌리엔 단 하나의 단어만 맴돌지—
'뇌쇄'!

그 여인을 떠올리면 지금도
숨이 가빠와.
나원 참, 오늘 또 심부전증 증세가 도졌네.

2025. 11. 22. 07:29.
북한산 淸勝齋에서 초고
2025. 12. 12. 08:10. 퇴고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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